우당탕, 와장창. 마차 사고에서 일어난 소리를 둘 중 어떤 표현을 써야 할 지에 대해서는 대영제국의 귀족원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부터 이런 논쟁은 무의미해졌다.

  그 마차의 주인이 다른 사람이 아닌 그레고리 락도스였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



  눈을 뜨자 허리가 아팠다. 뭐더라, 이 감각. 땅을 구르고 공수 강하 훈련을 받았을 때도 이 정도로 허리가 아프지는 않았는데.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천천히 팔을 뻗었다. 딱딱한 나무 조각이 손 끝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어디지, 여기.


  몸을 움직이기 위해 땅을 짚자 양 팔에서 우드득, 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가슴팍과 이마를 다시 바닥에 쳐박고 나서야 내가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매연 때문인지, 아니면…

  이 교통 사고에서 눈으로 튄 유리 파편 때문인지, 앞이 깜깜하게 느껴졌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도 살 길은 보여 내 몸보다 작은 틈 사이로 기어나가보려 하자,


  “으, 윽…….”


  허벅지가 차체나 못 따위에 박혀있는지 살을 찢는 고통이 밀려왔다.


  천천히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숨 쉬기가 힘들어지고, 이윽고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걱정하는 것인지, 분노하는 것인지 모를 수 많은 목소리들이.





  ──첫 번째 이야기, 『마차 사고』


  “……….”


  “누님, 누님!”


  영국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남자 하나가 내 몸을 흔들었다. 반즈음 뜬 눈 사이로 그가 보인다. 지금 나를 부르는 건가?


  떨리는 팔을 들어올려 몇 번 휘젓고 나니 그가 손을 치웠다. 허리를 일으켜보려 하자 내게 ‘누님’이라고 불렀던 남자는 아기 다루듯 내가 일어나는 걸 도와주었고.


  고개를 더 주변을 바라보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19세기에나 유행했을 옷을 입은 이들이 가득했다.


  “공작님?”


  게다가 나를 부르는 호칭도 이상했다. 공작? 공작이라고?


  몇 번을 두리번거리자 그들 중 하나가 탄식을 흘렸다. 그를 시작으로 다들 조용히 병실에서 나가는 모습에 얼척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방에 남은 건 처음, 나를 누님이라고 부르던… 어려보이는 남자 뿐. 벙찐 표정으로 지켜보던 그가 짧게 헛기침하며 운을 띄웠다.


  “…누님, 기억 나는 건 없으십니까?”


  양 손을 들자 내 손에 가득했던 흉터가 없었다. 그나마의 상처라고 해봐야 작은 화상이나 생채기 뿐.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창을 향해 다가가고 나자, 그가 나를 ‘누님’으로 칭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여자의 얼굴이 유리창에 비쳤다. 내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내가 여자가 됐다는 걸 알았다.


  푸른 빛이 도는 머리카락을 한 번, 쓸어넘기고 나서야 입술을 떼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어.”


  목소리는 허스키했다. 내 기억 속의 낮은 목소리가 아니라. 목 부근으로 손을 옮기고, 턱과 뺨을 따라 얼굴의 절반을 손으로 덮으며 침대를 향해 다가갔다.


  내 기억이라곤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그래, 교통사고. 교통사고 말이다. 요란한 소리와 불빛이 번쩍이고, 의식을 잃었을 때는…


  “마부의 실수로 마차가 엎어졌고, 마차에 깔리시는 바람에…”


  마차에 깔렸지.


  “잠깐, 마차라고?”


  나는 자동차에 깔린 거 아니었나? 머리가 다시 혼란스러웠다. 19세기에나 유행했을 이상한 복장들, 나를 부르는 공작이라는 호칭… 마차.


  “올해가 몇 년이지?”


  걱정스러운 눈을 한 채 고개를 천천히 돌린 그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1905년입니다.”


  “아… 아!”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눈을 뜨는 주인공과, 그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원작… 그러니까, 역사를 바꾸어가는 이야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런 이야기를 싫어하는 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역사란 그 모습을 띈 이유가 있는 것. 시대의 흐름 속에서 개인은 단지 개인일 뿐이다.


  파도로 태어나 거품으로 죽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한 시대를 호령한 왕과 사상가, 독재자, 지배자들도 결국 한 명의 인간으로서 죽는다.


  그리고 난─ 파도로 살아갈 사람의 몸에서 눈을 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