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집


“한 잔 받으시죠. 여러분 덕분에 제주도의 미래가 밝아졌습니다.”


시장이 우리에게 기꺼운 마음으로 술을 따라주었다.


거절할까도 했지만 적어도 인간관계에서 얼굴을 트고 지내면 나쁘지 않기에 자리에 참가했다.


호텔 로비를 통째로 빌린 자리지만 먹을 것은 로비에 비해 조금 검소한 감이 있었다.


물론, 이 기준은 멀쩡한 대한민국의 기준이며 지금은 이마저도 사치라면 사치라고 부를만한 수준이다.


“하하, 그런데 제가 이 잔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장보라가 떨떠름하게 웃으며 주저했다. 아무래도 일의 양이 적으니 스스로 찔리는 듯했지만.


“그런 말씀 마시죠. 장보라 씨 덕분에 제가 그 껍질을 부쉈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버프가 없었다면 조금 쫄렸습니다.”


고감찬은 그를 북돋아 주었고 장보라는 조심스럽게 술을 받아 기울였다.


“···그리고 아이들에 관해서는.”


시장의 입에서 좋지 않은 주제가 나오려고 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그 아이들은 이름만 올리고 얌전히 대기하고 있었지 않았습니까?”


“쓰으읍, 확실히 다른 사람은 안 보였죠.”


“···전 애초에 늦게 와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고감찬과 장보라가 나에게 맞춰 말했고 그것을 가만히 듣던 시장은 잠시 말 없이 술잔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예, 그렇지요. 전날에 ‘훈련’하다 다친 김유성 군을 제외하면 모두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지요. 뭐, 그마저도 벌써 나았지만 말입니다.”


훈련, 훈련이라.


나쁘지 않은 발음이다. 그렇게 술자리가 무르익고 마무리 될 때쯤 시장이 우리에게 넌지시 물었다.


“혹시 이후 일정이 어떻게 되십니까?”


뭐랄까.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노골적이라면 노골적이다.


“내일 바로 경북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요즘 ‘전선’이 얌전하다고는 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입니다.”


하긴. 대구는 광역시이니 보호해야 하고 옆에 딸려있는 구미나 경주, 포항 같은 국가산업단지 같은 곳은 현시점에서 나라의 목숨줄 중 하나이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이 너무 빨리 끝나서 시간이 비네요. 그래도 이틀 내로는 떠날 것 같습니다.”


하긴 원래라면 최소한 합을 맞추고 작전을 시작해야 하지만 내가 있기에 이것저것 생략해서 빠르게 진행되어 버렸다.


“죄송하지만 배편은 오늘을 기준으로 사흘 후입니다.”


시장은 진실을 말했다. 사흘 후라면 잉여물자를 본토로 전달하는 배일 것이다.


“저는, 최소 2주 정도 머무르다 갈 생각입니다.”


“···네?”


도리어 놀란 시장.


본인이 바라는 상황이건만 그 기간에 조금 의외였던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최소한은 가르칠 생각입니다.”


사실 온천이 목적이다. 도화에게 저 온천은 약이 되겠지만 아주, 아주 일시적이기에 한계가 명확했다.


그렇다고 그냥 있기에는 뭣하니, 내가 아는 걸 가르쳐 줄 생각이다.


“그 전에··· 혹시 책 몇 종류랑 준비물을 구해 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약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장보라를 보았다.



***



“뭐, 여차저차 해서 너희에게 최소한을 가르쳐 줄 하도현이라고 한다.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좋아.”


“아, 넵.”


아이들의 반응이 떨떠름하다. 이걸 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외형 자체는 성숙한 녀석도 있다) 이상한 감이 있지만 아무렴 상관이 없었다.


그나저나 옛날에도, 관장을 대신해 후배들에게 조금 지도를 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우선 내가 이틀 전에 너희에게 말했었지. 상점표 무기로 싸우고 있다고. 하지만 상황이 더 안 좋아. 스킬은 대부분 소실했고 숙련도는 초보단계에 몇 개는 스킬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경우도 많아. 대표적으로 힐링이 그 예지.”


힐링을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외상을 치료하는 기적의 빛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지만 역시 사용자의 역량의 따라 그 효과는 천차만별이다.


“···제 힐링에 문제가 있다는 말씀인가요?”


김보훈이라고 했던가? 녀석은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힐링이란 스킬의 사용 방법을 아느냐 모르냐는 거지. 비유하면··· 요리할 때 칼질하는 방법을 모르고 요리를 하는 것과 같아. 솔직히 말해서, 고등학생이 인체 구조를 알고 적절하게 힐링을 분배할 수 없잖아, 안 그래?”


내 말에 김보훈은 아까보다는 고분고분해졌다.


“이런 회복계열의 기술을 다루는 데는 3가지 타입이 있어.”


1. 자신의 신체 내부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상처와 비교해 치료.


“이 방법은 뇌에 부담이 높고 마력에 대한 제어력이 상당한, 아니 상위권 수준으로 높아야 해. 사실상 편법 그 자체에 정식으로 배우기 전까지 야매로 하는 식이지.”


참고로 내가 ‘주장’하는 내 치료 방법이다. 비상시가 아니면 꺼리는 방법이다.


2. 인체 내부의 구조를 지식적으로 알고 있으며 올바른 처치 방법을 숙지.


“이게 정배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사실 하는 일은 외과수술과 다름없어. 단지 시전자 자신이 mri와 수술도구 되어 현대 수술 과정을 혼자 힘으로 하는 거지.”


그렇기에 일반인 출신의 종결 사제보다 의사 출신의 중급 사제가 회복 실력이 더 좋은 이유이기도 했다.


“김보훈, 이게 네가 배워야 하는 과정이고 이걸 가르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뒤에 계신 장보라 선생님이야.”


나는 뒤에서 마취시킨 다음 뼈를 단계별로 부러뜨린 동물들과 함께 의학 서적들을 들고 있는 장보라를 가리켰다.


적어도 응급처치에는 문제없는 수준의 지식을 줄 수 있다니 다행이었다.


“저기, 그럼 3번째는요?”


김보훈은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은 마지막 방법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솔직히, 이걸 알려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만약 알려준다면 신뢰도가 깎일 것 같았다.


“···마지막은, 신에게 비는 거야. 신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호의적인 정체불명의 존재라고 해도 되고.”


““네?””


아이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동시에 ‘네?’ 라고 물어보며 의문을 제기했다.


“게임에서 성직자가 왜 기도해서 사람을 치료하겠니? 그거 다 신이라는 편리한 대리자가 있어서 그런 거야. 지금이야 뭐··· 기도해도 소용없지. 그래서 이건 가르칠 가치가 ‘현재’까지는 없어.”


마치 컴퓨터에게 계산을 맡기듯이 편했다. 하지만 언제나 경계해야 했다. 당장 나와 함께하는 녀석은 거래 상대로서도 위태했고 믿을 만한 존재조차 아닌 걸 생각하면 불안하다.


가치가 없다고 말하자 아이들의 관심은 크게 식었다. 정확히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게 옳았다.


그 이후 나는 전사 아이들에는 칼 쥐는 법과 자세를 마법사에게는 식물 촉매의 재배와 관리를 기본적으로 가르치고 광석 촉매를 포함한 대략적인 종류를 가르쳤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김유성에게 다가갔다.


“궁수라면 기본적으로 양궁선수를 초빙해서 가르치는 게 맞겠지. 양궁선수를 섭외할 때까지 단검술이라도 가르쳐줄게.”


“···네.”


선수 출신의 각성자가 있지만 아쉽게도 만나기 쉽지 않다.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도중 그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다 김유성과 다른 아이들의 차이점을 발견해 버렸다.


엘프.


종족의 차이.

인간보다 장수하고 아름다우며 무엇보다 자연, 정령에 대한 친화력이 높다.


이스트와 웨스트의 체계가 다르지만··· 가능성은 있다.


나는 김유성의 자세를 고쳐주며 조용히 속삭였다.


“오늘 자정에 내가 묵는 호텔로 오렴. 혼자서, 몰래.”



***



“하아아.”


몸이 포근해진다. 마치 겨울 날씨에 내놓은 맨살에 관절을 움직이는 것 같은 육체가 조금씩 제 기능을 유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의 감동에 비하면 아주 조금씩 감소하는 게 느껴진다.


“길어야 3주인가?”


아마 이 끔찍한 병은 이 온천마저 정복해 자신을 괴롭힐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그나저나. 세상이 이렇게 됐는데 형편은 더 나아졌다고 봐야 하나?”


도화는 호텔 욕조에 인테리어와 여기까지 별개로 온천물을 따로 준비한 직원의 수고를 생각했다.


음식도 혼란한 시기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고급품이다.


가정은 잘 산다! 정도는 아니지만 어디 가서 어깨가 굽혀지지 않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누가 봐도 부자의 삶을 간접체험하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생활이 나아졌지만 건강을 잃었다. 그것도 몇 년 후 죽는 병이다.


수치타산에 맞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가 바라지도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신세가 되어버린 걸까.

아빠는 자신의 탓이라며 거의 나흘(만날 때마다) 간격으로 말한다.


그리고 미안하다면서 정작 미안하게 하는 행동. 목숨을 걸고 싸우는 행위를 계속한다.


안다. 아빠는 강하다는 것.


하지만 그만큼 걱정이 된다. 걱정이 되어 미칠 것 같았다.


“불속성인데, 만렙에 준종결인데 음기가 꽉 찼다니. 어이가 없네.”


대체 이 병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기를 돌리려고 해 봐도 중간중간 막혀있는 부분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런 몸뚱이로는 싸움은 커녕 살아갈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


아마, 지금 내가 멀쩡하게 걷기라도 하는 것은 신체스펙이 일반인이 아니라서 그럴 확률이 높다.


“그런데, 아빠는 그 몸으로 어떻게 싸우지?”


순간 나의 머릿속에서 그런 의문이 퍼졌지만 이내 아빠는 수속성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좀 더 온천물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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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챌린지 나갈까 생각중인데 여기서 내용을 수정할지 아니면 그대로 갈지 고민임


수정한다고 하면 19금 포함에 능욕 조금있는 왕도물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