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내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남자는 부들부들 떨면서 나에게 손가락을 가리킨다.

덕분에 이미 올라간 눈썹이 이젠 가운데로 모여든다.



"모르겠냐?! 네년이 와봤자 우리가 이겼어! 이미 서울을 향한 핵은 째깍째깍 기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아하하하하!"



꼭 두려움을 조소라는 더 큰 감정으로 가리려는 모양새.

사람의 감정에 굉장히 둔한 나도 알 수 있었다.

겁먹었네.



"우리는 절대 죽지 않을거야. 설령 네년이 이 곳까지 찾아와서 우리의 전부를 찾으려고 해도 어림도 없을거다. 왜냐면 나도 모르거든!"



음. 그런거구나.

점조직이니 뭐니 하던게 거짓말은 아니었나보네.

북한의 부활을 바라는 테러집단을 표방하고 있으니까, 서로를 무한히 의심하는 것도 당연한건가.



"음, 미안한데."


"물론, 나도 아무것도 안 말할-"


"아니, 그게 아니고. 넌 이미 점조직 형태로 흩어져있는 인민재건부의 모든 수장을 만나본 적이 있잖아."



'자연스럽게' 손에 쥐고 있었던 파일철을 들어올렸다.

휘갈긴 글씨로 써있는 네 글자, 조직 위치.



"...뭐?"


"기억 못하는 거야? 그 사람들이 널 너무나도 의심해서, 폭탄에 미리 스위치로 조종 가능한 안전장치를 심어놨거든."



그에게 '내 옆에 있던' 서류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보여줬다.

오. 과연. 핵폭탄은 이렇게 생겼구나.

스위치를 장난스럽게 딸깍거리면서 그의 표정을 본다.

멍청한 저 표정을 보니까, 무언가 생각나려고 하는데... 뭐였더라.



"아, 걱정하지마. 애초에 폭탄은 설치되지도 않았으니까."



'방치되어있는' 트럭의 컨테이너를 열어 그에게 서류가방을 보여줬다.

정확히 스물 세개. 내가 들고 있는 폭탄까지, 스물 넷.



"사실 딱히 작동하는 폭탄도 아니야. 정교한 모조품이지."



폭탄 안에 들어있는 '그저 초록색 색소가 들어간 물' 을 콸콸콸 바닥에 쏟았다.

기묘한 방사능 색으로 빛나는 것 같았던 물은 통에서 쏟아지니 그 색을 잃었고, 통 안에는 초록색 LED가 밝게 빛날 뿐이었다.



"너, 너!"


"아, 그리고, 이 조직이라는거, 전부 네 망상이잖아."



그에게 파일철을 열어서 보여주듯이 들었다.

조직의 풍경이나 기지의 입구 같은건 하나도 없고, 자연풍경을 찍은듯한 사진을 오려붙이고 열심히 설명을 써놓은 종이들이 잔뜩 들어있을 뿐이었다.



"더이상 그 입 놀리지-"


"넌 이런 공간을 찾을만한, 또 찾아올만한 깡도 없었어. 그러니까 집에서 트위터로 테러 예고 똥글이나 썼지."



난 그 파일철을 '방 안에 있는 침대' 에 던져놨다.

죄다 커튼을 쳐둔 채 어두운 공간에서 밝게 빛날 뿐인 모니터, 그리고 책상과 침대 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황량한 공간이 인상적인 방에서, 그는 의자에 앉은 채 나를 쳐다봤다.



"경찰분들? 모의 혐의로 잡아가셔야죠."


"...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어느샌가' 방에 들어온 경찰 두 명이 남자를 포박한 채 집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조금 뒤에 들어온 경찰복을 입은 또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왔다.



"이야, 이번에도 화려하게 해주셨슴다?"


"화려한 인생보단 좆되지 않는 인생. 모르시나요?"



약간 찢어진 듯한 눈매는, 언제 봐도 이능관리부 소장인 이마루의 아이덴티티나 다름없어 보인다.

저런 외모 주제에 가지고 있는 능력이 그 어느 상황에 존재해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능력이라니. 아이러니가 따로 없지.



"아하하.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좆되게 화려한 인생을 사시는 세라 씨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말임다."


"알잖아요? 마음만 먹으면 그 '좆되게 화려한 인생' 을, 전 포기할 수 있다는 거."


"그것만은 참아줍쇼. 저도 위에서 엄청 쪼아댄단 말임다. 평소에 세라 씨 이용하려는 안건들 내려보내는거만 생각해도, 어후."



...그럼 본인도 '자연스럽게' 소장 자리 내려놓으면 되는거 아닌가, 싶지만, 본인이 아니면 일이 안 돌아갈거 같다는데 어쩌겠어.

나라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세상을 지킬 사명감을 부여해준 것 만으로, 그는 충분히 그렇게 자뻑할만한 능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여성의 몸은 포기하지 않으실 생각임까?"


"편하거든. 밥을 얼마 안 먹어도 돼서."


"큭, 그게 진짜 주객전도 아임까?"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치는 그에게, 나도 마주 미소지어줬다.



"'애초에' 난 귀여운 여자아이였다니까?"


"그 정도야 알고 있슴다~ 이야, 덕분에 일이 줄었슴다."


"아카이브의 기록을 하나하나 수정하는 게 고역이라는 것 쯤은 나도 알아."



그나저나, 여전히 비틀린 미소구나. 마루 씨는.

...뭐, 본인이 상관하지 말라고 했고. 알아서 고쳐나가겠지.



"뭐 먹으러 갈래? 파스타는 어때?"


"아니, 입맛까지 아주 계집이 다 되신검까?"


"아니면 국밥 먹던가. 너한테 맞춰줄게."


"...하아. 파스타로 부탁드림다."



그의 자동차에 올라탔다.

자동차는 정말로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경찰 여러명이 주변을 탐색하고 있는 이 집을 자연스럽게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