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tsfiction/102047777 플롯


내게는 인생을 갈아 넣은 게임이 하나 있다. 이름하야 프로젝트 좀비. 벌써 플레이타임이 1만 시간을 넘겼다.


게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좀비 게임이다. 그러나 단순한 좀비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면역자 주인공이 좀비를 때려잡고 세계의 마지막 희망이 되는 게임도 아니고, 전직 경찰 주인공이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린 악덕 기업의 비밀을 파헤치는 게임도 아니다.


주인공은 그저 아무 능력 없는 평범한 사람이고, 문명이 썩어 부스러지기 시작한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어떻게 살아남을 지는 플레이어의 몫. 


프로젝트 좀비는 극악한 난이도와 현실성으로 유명하다. 초보자들이 멋모르고 도전했다간 10초도 안되어 사망하는 자신의 캐릭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초보자들이 몇 번 해보고는 2시간이 넘기 전에 환불을 하기 마련이지만, 프로젝트 좀비는 현실성 높은 생존 게임을 사랑하는 내 취향에 딱 맞았다. 3일 연속 잠도 안 자고 플레이한 적도 있었으니까.


캐릭터를 처음 생성하면 기본으로 주어진 특성 포인트 30을 사용해 원하는 긍정 특성들을 선택한다. 효과가 좋은 특성일 수록 소모되는 특성 포인트가 많다. 


예를 들면 [강한 힘] 특성은 잠긴 문이나 창문을 힘으로 열 수 있게 되고, 좀비를 밀쳐서 넘어뜨릴 확률이 증가한다. 그러나 이 특성의 소모 포인트는 무려 20. [강한 힘] 특성을 선택하면 다른 특성은 거의 못 고르게 되는 것이다.


주어진 특성 포인트를 전부 사용했을 경우, 부정 특성을 캐릭터에 부여해 페널티를 가하는 대신, 특성 포인트를 추가로 획득한다. [장님], [귀머거리], [폭식], [오줌싸개] 등 온갖 골 때리는 특성들이 가득하다. 


이외에 좀비가 창궐하기 전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도 설정할 수 있는데, 전직 경찰이라면 총기 관련 스킬에 보너스가 부여되는 식이다. 처음 가지고 시작하는 아이템에도 차이가 있고.


이러한 점들이 프로젝트 좀비를 매번 새롭고 짜릿하게 만들어 준다. 나는 프로젝트 좀비의 세계에서 수많은 나 자신을 만들었다. 퇴직금으로 식당을 차렸더니 좀비 창궐로 인해 망해버린 분노의 요리사라던가, 세계가 멸망한 후 내면에 잠들어 있던 음험함을 깨운 퇴직 경찰이라던가. 


"이제 이 캐릭터도 슬 질리네."


게임 자체가 질린다는 말이 아니다. 생존 게임이 가장 재밌게 느껴지는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생존 자체가 보장받지 못하는 초반부다. 캐릭터가 강해지고 생존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지는 후반이 되면 재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온갖 총기와 방어구로 무장하고, 바리케이드를 친 숲 속 오두막에 식량을 가득 쌓아둔 내 캐릭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