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너희들이 말하는 대재앙이라는 게 시작할 쯤에 나는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어.


잔인한 영화나 아니면 공포 영화에서 나오는 게임같은 게 아니라 컴퓨터를 써서 즐기는 게임.

 

솔직히 말하자면, 너희들이 왜 그렇게 미안해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너희들이 잘못한 게 하나도 없을텐데 말이지.


내가 대재앙이라는 것에 휘말릴 쯤에도 그게 시작되는 느낌도 없었고, 주변에서도 평화로웠으니 오늘도 다른 날과 비슷한 날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휘말리고나서는 운이 없었네, 같은 생각이 끝이었지.


휘말린 이후의 이야기는… 그렇게 듣고 싶을 만한 이야기는 아닐 지도 모르겠네.


흔히 창작물속에서 나오는 드래곤이라는 생물은 최강이라고 불리잖아?


대재앙이라는 게 내 몸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 지는 지금도 모르지만, 그게 내 몸을 드래곤의 몸으로 바꿔버린 것 같아.


거기, 내가 할 수 있는 목록에 적어놓은 것들을 봤다면 알듯이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마법이 써진다거나, 아니면 검이 아니라 썩은 나뭇가지로도 철판정도는 가볍게 갈라버린다거나 하는 것들.


그런 행동들이 아무렇지 않게 가능해졌거든.


처음에는 그런 신체능력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온갖 사건사고들이 발생했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는 않을게.


큰 사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하기 부끄러운 일들밖에 없으니까.


…굳이 듣고 싶다면야, 하나만 이야기해줄게.


내 신체능력에 절반쯤 적응했을 무렵의 일이야.


내가 떨어진 세상은 역사책에서나 볼 법한 근세의 세계였던 모양이야. 그것도, 내가 드래곤이라는 생물의 몸이 되었다는 것처럼 창작물에서나 보던 마법이라는 불가사의한 무언가가 존재하는 세계.


거기서도 나는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어.


인간의 몸에서 드래곤의 몸이 되었다지만, 정신은 여전히 인간의 것이었던 탓에 몸과 정신의 괴리감이 엄청났거든.


지금은 그럭저럭 견딜만 해. 적응했다는 것보다는 포기했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왜냐하면, 드래곤의 몸이라는 게 생각보다 튼튼한데다가 오래 사는 종족이다 보니 평범한 인간의 기준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가능했거든.


그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니까 넘길게.


판타지적인 물질이 존재하니 당연하겠지만 몬스터도 존재했어.


마왕이라는 것도 존재했지만, 그건 이미 수 세기전에 토벌당해서 세상에 위협이 될 만한 무언가는 진작에 사라진 세계였지.


다만, 그런 세상이 평화롭다고 하기에는 크나큰 문제가 존재했다고 해야할 까.


수 세기가 지났음에도 세상은 여전히 피폐하고, 폭력과 불안, 불신만이 가득한 세상이었거든.


왜 그런가 하고 그걸 찾아보기 위해 나는 세상을 떠돌아다닐 때였어.


다른 세상의 음식은 생각보다 맛있었고, 마법이라는 것에 의존한 기계들은 생각보다 흥미로웠지.


겸사겸사 몬스터나 다른 위협적인 존재들에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기도 했고.


내가 말하는 부끄러웠던 일은 몬스터와 관련된 이야기야.


드래곤의 몸이다 보니 육체를 움직이는 일들은 어지간해서는 쉽게 익숙해지지만, 무기들은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단련하려고 무기를 들고 다녔거든.


그게 맨 첫번째로 들고 다녔던 대검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고블린이라고 해야 하나.


키 작고 온 몸이 초록색에 귀가 엘프, 그러니까 창작물 속에서 보던 엘프들의 귀처럼 뾰족한 느낌은 아니고 뭉툭한 느낌으로 긴 귀를 가진 녀석들인데, 그런 녀석들은 원래 마법으로 처리하는 게 편하단 말이지.


근데 그 날은 유독, 이상하게도 대검으로 처리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단말야.


그래서 아무런 생각없이 대검을 들고 전력으로 휘두르려는 순간, 깨달았어.


내가 왜 고블린을 마법으로 처리했는 지.


전력으로 대검을 휘두르는 순간, 내가 입던 옷가지들은 넝마가 되어 하늘을 날아다녔고, 그걸 지켜보던 행상인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눈을 가리더라.


…안타깝게도 너가 상상하는 일은 없었을거야. 여성이었으니까.


그런 세상에서는 여성도 마나를 이용할 수 있으니까 생각보다는 남성과 크게 신체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나지를 않거든.


…그래. 내가 말하는 부끄러운 일들은 대부분 그런 것들이야.


이해했다면 넘어가줄래?


고마워.


여하튼, 그렇게 세상을 떠돌면서 느낀 건 이 세상에는 사람들, 다른 종족들이 하나로 모일만한 구심점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


세상에는 여전히 마왕이 남긴 잔재인 몬스터들과 온갖 이상현상들이 넘쳐났지만, 구심점이 없다보니 제각각 흩어져서 살거나 아니면 같은 종족끼리 모여살기 바빴거든.


그것도 도시나 그런 규모는 아니라 마을에 가까운 규모였고. 마을에 가까운 규모도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적은 편이었지. 어지간해서는 부족인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렇다보니 내가 떠올렸던 건, 뭐라도 좋으니 한 명을 구심점으로 삼아 몬스터와 이상현상의 위협을 막아내자는 결론이었지.


하지만, 나는 머리쓰는 건 좋아하지 않아.


드래곤은 신체능력만큼이나 머리가 좋은 편이기는 하지만, 그건 드래곤의 경우고.


나는 인간의 기억과 정신이 섞여버린 경우라 신체능력만 좋은 편이었어.


굳이 말하자면, 반인반룡이라고 해야겠지.


아무튼, 도움을 받기위해 나는 내가 아는 종족중에 가장 똑똑한 종족을 찾아갔어.


사람의 모습을 하고있지만, 그 능력은 사람을 벗어난 탓에 마녀라는 종족으로 불리게 된 유일한 사람을.


…마법사와 마녀는 다르지.


마법사는 마법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면, 마녀는 마법이라는 개념을 해체하고 분석해서 자신만의 고유한 무언가로 바꾸지.


그렇기에 그녀가 사람이 아닌 마녀라는 종족으로 불린 이유였고.


그 탓에 수명도 일반적인 사람을 벗어나게 됐지만….


그녀의 도움을 받아 구심점이 될 사람을 찾았지. 그게 나였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참 좋은 일이였어.


어쩌다가 종족이라는 개념을 넘어 하나의 나라를 세웠는 지는 지금도 생각할 때마다 참 어지러워.


그리고, 나라를 운영한다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깨닫고 있어.


마녀와 다른 종족들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해도, 두번 다시는 왕이니 뭐니 하는 건 하고 싶지도 않아.


그들이 나보고 제발, 오랫동안 나라를 통치해달라고 사정을 해도 나는 거부하고 잠적했어.


이백년이면 오래하지 않았냐고 답하면서.


근데, 마녀의 도움을 받아서 잠적한 나를 찾아오더라. 정확히 한달 만에.


한달이라는 시간 동안 마녀의 눈 밑으로 시꺼먼 기운이 흐르는 걸 보고는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생각했지.


그렇게 오십 년이라는 시간을 버티고 버티다가, 더는 못 하겠는거야.


그쯤되서야 마녀도 포기했는 지 알아서 하라고 놔주더라.


오랜만에 잠이나 푹 자보게 아무도 안 오는 산에 있는 동굴에 자리잡고 잠을 자려고 몸을 뉘였지.


…근데, 짜잔.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였네?


그게 내 이야기의 끝이야. 어떻게 생각해, 공무원씨?


"…서류 상으로 적혀있는 이야기와 똑같다는 것은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다행이고. 솔직히, 나도 말하면서 가끔 헷갈리거든. 아무래도 인간의 정신이다보니 신체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까먹더라."


"그렇습니까. 아무튼, 반 사회적이고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위험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확인했습니다. 이 상태라면 여태 봐왔던 그들처럼 정상적인 귀환자로 등록될 것 같군요."


"그래. 아, 하나 부탁이있는데."


"…저희들이 들어줄 수 있는 범위내라면."


"혹시, 놀고 먹을 방법이 있을까?"


"…예?"


"그게 말야. 내가 일반적인 사람의 기준으로 봐도 이백 오십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을 해왔잖아? 그렇다보니, 신체는 멀쩡해도 정신은 지쳐있는 상태란 말이지."


"그건 아까 확인한 부분이군요."


"그렇다보니 내가 뭘 하고 싶은 일이 생기더라도, 의욕이 안 생긴단 말야.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할 수가 없어. 집에서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하단 말이지."


"그, 렇군요?"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그래. 시간은 많으니까. 아, 사람은 다르겠구나. 아무튼, 기다리고 있을게."


나름의 기대를 품고, 공무원이 떠나는 것을 보며 어떻게 쉬어야 남들이 참 잘 쉬었구나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쉬어야 할 까 하는 고민이 30분쯤 됐을 무렵, 떠났던 공무원이 허겁지겁 돌아왔다.


"혹, 혹시. 요인 경호도 괜찮으십니까?"


"…집에서 머무르는 경우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 그렇다면…."


공무원이 소중하게 제 품에 안은 서류를 내게 내민다.


그 서류를 받아 안의 내용을 보니 '시아'라는 이름의 아가씨를 보호해달라는 내용의 일이었다.


"…가능, 하십니까?"


"…그랭. 뭐어, 밖에 잘 안 돌아다닌다니까, 괜찮겠지."


…나는 그 일을 받지 말아야했다.


아니, 사람이 밖에 잘 안 돌아다닌다면서. 왜 이렇게 자주 돌아다니는 건데.


"언니! 저쪽, 저쪽도 가보자!"


…집에 가서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