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미안해. 너 그렇게 되고 나서도 친구로 생각하고 있는 건 맞는데, 여자로서 본 적은 없었어. 그렇게 안 보이려고 더 노력하기도 했고. 남자였던 네가 블편해 할 거 같았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절대로 듣고 싶지 않던 그 말.


다른 누구보다도, 절대 시우의 입에서만큼은 듣기 싫었던 말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가운데, 내 멘탈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원래 남자였으니까, 널 여자로 본 적 없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까지.


여기까지 오는데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처음 이름모를 병에 걸려 여자가 된 직후엔 상상도 못했던 일.


어릴 적부터 함께해온 절친에게 홀라당 반해서 고백을 한다니, 작년의 내가 봤다면 미쳤다고 뒤통수를 후려갈겼을 거다.


하지만 사람 마음에 절대란 없다는 듯.


반쯤 폐인이 되었던 내게 서슴없이 다가와 함께 해 준 두 친구 덕분에 다시 양지로 나올 수 있었고, 또 이런 간질간질한 감정 역시 품을 수 있었다.


조금 전 그 감정은 쓰레기통에 처박혀버렸지만.


“아, 아아, 응, 그럴 수 있지. 아우, 야, 미안하다. 괜히 분위기만 어색해졌네, 응. 그냥 신경쓰지 마. 내가 해놓고도 좀 이기적인거 같긴 한데, 우리 이 일로 어색해지거나 그러면 좀 슬플거 같다. 오늘 지나면 내일부터는 그냥 원래대로 지내자, 응?”


“...틋녀야.”


“야야, 그런 표정 하지말고. 진짜 미안했다. 나 그럼 가볼게. 약속 있는데 잠깐 시간내서 나온거였거든. 암튼 나 간다? 내일 보자!”


스스로도 뭐라 내뱉는지 모를 말들을 두서없이 내던지며 서둘어 몸을 돌려 달려나갔다.


더 이상 평정을 유지할 자신이 없어서.


이대로라면 시우의 앞에서 꼴사납게 질질 짤게 분명했고, 그 순간 시우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어색해지겠지.


이미 좀 늦은 감은 있지만서도 이런 식으로 얼버무리며 끝내면 아마 머지 않아 예전처럼 친구 사이로 지낼 수 있을 거다.


시우는, 그만큼 착한 아이니까.


“...흑, 크흑.”


그렇게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전력질주를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여자가 된 이후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실패한 첫사랑의 아픔, 그리고 남자였던 내게 앞으로도 사랑이란 감정은 영원히 이룰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좌절감에 휩싸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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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다란 단칸방에 도착해 침대에 몸을 내던진 채로 하염없이 울어대기를 한참.


이젠 목이 쉰 것도 모자라 눈물로 내보낼 수분마저 없다는 듯 멈춰버린 울음을 뒤로한 채, 누군가와의 통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정말 실패했다고? 그게 말이 돼?


“응, 날 그런 눈으로 본 적도 없다더라. 오히려 불편해하는거 같던데. 뭐 당연한거겠지. 원래 남자였으면서 남자한테 고백한건데.”


-뭐?! 아니, 시우 이 새끼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말을 해도 그딴 식으로 해?


“아니야, 시아야. 시우가 그 정도로 말할 정도면 어지간했었나보지. 이 정도로 넘어간게 차라리 다행일지도 몰라. 나 안그래도 친구도 없는데.”


통화 상대의 이름은 시아.


시우와 마찬가지로 어릴 적부터 함께한 절친이자 나락에 빠졌던 날 끌어올려준 은인이다.


- 흥! 난 친구도 아니라 이거야?


“아니! 아니야! 이제 나한텐 너밖에 없단 말이야, 제발 그러지마 시아야, 나 지금 너무 힘들어...”


-아, 응, 미안해...그리고, 진짜 미안해. 괜히 내가 부추겨서.


조금 전까지 화도 내고 삐진 티를 낼 땐 언제고 금세 시무룩해진 시아의 목소리.


그걸 듣고 있자니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며 오히려 내 마음속에 시아를 향한 미안함이 더욱 커져갔다.


사실 오늘의 고백이 있기까지 시아의 도움이 매우 컸다.


처음 시우를 향한 마음을 자각한 후, 연애 상담은 물론이고 시우가 좋아할만 한 여자 스타일에 맞게 옷 스타일링과 화장은 물론 남자같은 행동거지를 고치는 것까지.


지금의 내 모습이 될 때까지 시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


그럼에도 머뭇거리던 내게 이정도면 시우도 함락시킬 수 있을거라면서 용기를 북돋아 준 것 역시 시아였으니 말 다한 셈이었다.


“그런 말 하지마, 시아야. 너 아니었으면 고백도 못 해봤을 거고, 애초에 지금 이렇게 여자로 적응해서 살지도 못했을거야. 나한테 은인인 사람이 나한테 미안해하면 난 어떻게 해...”


-그래도...


“그만, 진짜 그럴 필요 없어. 대신 내일 나 만나면 평소처럼 대해주라. 나 그거면 충분해.”


-하아, 그래, 알겠어. 대신 너도 오늘 그만 울어야 해. 내일 봤는데 눈 퉁퉁 불어있으면 나 엄청 슬플거 같아.


“풋, 알았어. 그럼 이만 끊을게.”


-그래, 잘자~


뚝-


통화 종료음을 마지막으로 다시 고요해진 방 안.


그래도 시아의 위로와 따뜻한 목소리 덕분인지 고백 실패의 아픔도 조금은 가신 것 같았다.


“그래, 내 주제에 연애는 무슨. 그것도 남자 상대로.”


첫 도전을 정말 깔끔하게 실패해서일까.


희망으로 한껏 부풀었던 마음이 푹 꺼지고 난 빈자리엔 차가운 현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자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게, 괜히 어색한 티를 내서 소중한 친구들마저 잃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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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자~“


뚝-


전화가 끊어진 스마트폰의 화면을 바라보면 통화 시간은 어느새 2시간이 넘어있는 상태.


이윽고 화면이 꺼져 검게 변한 액정엔 한 소녀의 얼굴이 비쳐보였다.


그 표정을 그녀의 친구인 틋녀나 시우가 봤다면 정말 본인이 맞느냐고 되물을 정도로 싸늘하게 식은 무표정.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자를 그리던 시아의 입술은 한쪽으로 치우치더니 비릿한 웃음을 자아냈다.


“그래, 실패했단 말이지.”


틋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착장은 물론 메이크업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하고 데이트 코스와 고백 타이밍마저 시아 자신이 계획해준 대로 흘러갔음이 분명한데.


틋녀의 고백은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시아의 계획대로.


“그래, 틋녀야. 네가 시우랑 사귀긴 왜 사귀어. 둘이 그렇게 안 어울리는데.”


사실 시아는 진작부터 이 고백이 실패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시우가 좋아한다는 사람이 바로-


시아 자신이었으니까.


그것도 틋녀가 여자로 변하기 전부터 말이다.


그럼에도 시아가 시우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한 척 했던 것은 오직 단 하나.


시아가 사랑하는게 틋녀였기 때문이었다.


처음 유치원에서 셋이 만난 이후.


이 세 명의 관계는 살얼음판과 같은 불안함을 품은 채 겨우 유지되어 왔다.


시우는 시아를, 시아는 틋녀를 사랑하는, 누구도 보답받지 못할 사랑.


그럼에도 이 관계가 무너지지 않은 것은 틋녀가 연애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 또한 알고 있었던 시아였지만 그래도 다른 여자보단 자신이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으니 언젠가 꼭 틋녀를 함락시킬 거라며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불현듯 찾아온 병으로 틋녀가 여자로 변해버린 그 날을 기점으로, 세 사람의 관계의 균형은 무너져버렸다.


무너지기 직전이었던 틋녀의 마음이, 시우 쪽으로 기울어버렸으니까.


그래, 이해한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시우는 좋은 남자다.


얼굴이면 얼굴, 공부면 공부, 성격이면 성격까지.


시우가 시아를 향한 마음 일편단심이라 그렇지 아니었으면 여자 여럿 울렸을 것이다.


그러니 여자가 되어버린 틋녀가 넘어가는 것도 불가능 한 일은 아니겠지.


틋녀가 여자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걸 가르쳐준 건, 다름아닌 시아 본인이니까.


하지만 기어코 틋녀가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더니 시아 자신에게 연애 상담을 해온 순간.


시아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왜.


왜 날 봐주지 않는건데.


네 곁에 있던 건 시우 뿐만이 아니잖아.


오히려 내가 더 많이 있어줬잖아.


시우한텐 보여주지 못할 모습들도 내겐 다 보여줬잖아.


“그런데 왜!!!!”


콰앙-!


어느새 격앙된 감정에 자신도 모르게 내던진 스마트폰이 바닥에 부딪혀 박살이 난 덕에 겨우 가라앉힌 마음.


다시 주워든 스마트폰의 깨진 액정에 비친 시아의 얼굴은 다소 두려울 정도로 일그러져있었다.


“그래도 괜찮아. 이제 거의 다 왔어.”


틋녀의 외모는 객관적으로 봐도 아름답다.


남자라면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여자조차 꼬셔버릴 미모.


그걸 스타일링의 방향성을 틀어서 시우의 취향에서 벗어나게 했고, 그간 알려준 데이트 코스 역시 시우가 싫어하는 것 위주로만 짜주었다.


물론 틋녀 역시 시우의 친구인만큼 그 내용에 의아해했지만 사랑에 눈이 멀어서인지, 혹은 자신이 없어서인지 조금만 밀어붙여도 금세 납득해준 덕분에 쉽게 넘어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애에 관해선 고지식하기 그지없는 시우의 마음이 시아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무리 틋녀가 고백한다 한들 받아줄리 없다는 확신 하에 계획을 진행했고, 현재까지 아주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틋녀 너한텐 나 뿐이니까. 날 밀어내지 못 할거야. 그렇지?”


가뜩이나 둘 뿐인 친구 중 한 명과 애매한 사이가 되어버렸으니 남은 건 시아 뿐.


현재 한껏 흔들려버린 틋녀의 멘탈을 노리고 파고들면, 시아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같은 여자끼리 아니냐고?


그딴 건 시아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시아가 사랑하는 건 어디까지나 틋녀라는 사람 그 자체니까.


오히려 다른 불여시들이 덤벼들 일이 사라졌으니 더 좋은 일일지도 몰랐다.


시우의 경우는 방심한 탓에 일어난 실수.


이제는 접근하는 남자 모두를 차단하기만 하면 된다.


무엇보다 이미 남자에게 한 고백을 실패한 경험이 생긴 틋녀가 새로운 남자를 찾아가기엔 어려울 터.


시아는 앞으로 펼쳐질 행복한 미래에 조금씩 아래가 젖어가는 것을 느꼈다.


“찾아보니 여자끼리 사랑을 나눌 방법도 무궁무진하더라. 그러니까.”


기대해, 틋녀야.


마지막 말은 마음 속에 되뇌이며.


시아는 조금 전 들었던 틋녀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떠올리며 가랑이 사이에 손을 밀어넣었다.


늘 하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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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크싸레 시아 한접시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