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각성자를 보스로 삼는 범죄조직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절대 좋은 일은 아니다.


협회 집행부나 경찰 특수범죄수사국에서 언제 들이닥칠 지도 모르고, 어쩌면 자는 사이에 그대로 마취가스에 중독당해 수용소로 끌려갈지도 모른다. 어딘가 수상쩍은 정신계 각성자를 데려온 집행부에 의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뇌되어 무언가 행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가면, 정부의 특수수용소로 끌려가서 어떤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사형? 인체실험? 제물? 정부와 협회는 그런 불법적인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며 당당하게 외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시민들은 알고 있다.

특수수용소에서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특수 수용소로 끌려간 사람들 중에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애초에 무기징역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 만이 특수 수용소로 끌려간다고 하지만, 그 이상의 소문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인체실험은 그런 소문들 중 가장 가벼운 소문에 속한다.


외신과 계약을 위한 실험체로 쓰이고 있다

사실 정부와 계약을 맺은 외신의 제물로 소모되고 있다

협회의 능력자를 강화하기 위한 제물로 쓰이고 있다

미치광이 혈마(血魔)의 광증을 해소하기 위한 모르모토로 쓰이고 있다

죽여도 되살려서 끝없는 고통의 굴레 속에 쓰이고 있다...


온갖 무시무시한 소문이 돌아도, 정부와 협회는 언제나 웃으면서 말했다.


[보안 상의 이유로 자세히 설명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지금까지 수용된 인원이 수천명이 넘는데도 단 한명도 풀려나지 않은 이유도

범죄자의 가족이나 친구 등의 면회 요청이 절대로 승인되지 않는 이유도

극소수밖에 남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인권단체의 감사 요구가 거절되는 이유도

관련 보고서나 자료가 모두 1급 기밀로 지정되는 이유도


그리고, 교도소의 간수들 중에서도 심심찮게 자살한 사람들이 나오는 이유도



그 곳에는, 분명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은 지옥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그 사실에 통쾌해하는 사람도,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두려워하는 사람도,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확실한 것은, 모든 범죄자는 특수수용소를 극도로 두려워한다는 것이었다.

특수수용소를 가느니 차라리 정부의 개로 일하겠다며 투항하는 새끼들마저 있을 정도로.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박철은 그 특수수용소에 진심으로 가고 싶었다.


그것은 딱히 속죄나, 각성이 아니었다.

이제 와서 자신이 저지른 죗값을 치루고 싶어진 것도 아니었고,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후회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사죄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박철은.

도망치고 싶었다.



이 지옥에서



"돌아왔, 왔, 네."


"......네."


겉보기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는 광경이지만, 한 순간에 빙그르르ㅡ 한 쪽으로 돌아갔다가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것 처럼 원래대로 눈동자를 보면 그 어떤 남자라 해도 계집애처럼 소리지르리라는 것에 박철은 손에 장을 지질 수 있었다.

사람의 배를 쑤실 수 있고, 흘러나오는 내장을 보며 잔인함보다도 뒷처리의 귀찮음을 떠올릴 수 있는 조직의 간부들 마저 저 모습을 보며 계집애처럼 소리지르며 눈물을 흘렸으니까.


그러나 박철은 계집애처럼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고, 배를 갈라 장을 지질 수 도 없었다.


"무슨 일, 있, 어?"


"......"


박철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박철의 목소리였으되 박철의 목소리가 아니었으니까.


"안, 으로. 회장님이, 기다리신다."


딱, 딱.

불안하게 끊어지는 듯한 목소리는 점점 더 자연스럽고, 정확해져갔다.


순간 빙그르르 불안하게 돌아가던 눈동자는 명확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뚝뚝 끊기던 목소리는 자연스러워졌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을 바라보는 저 새끼의 눈동자에는 '감정'이 담기기 시작했다.


못마땅함과 질투.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을, 자연스러운 감정.

애초에 저 새끼랑은 조직 내에서 서열을 두고 다투던 사이였으니까. '회장님'이 내리는 총애와 돈을 얻기 위해 조직 내에서 경쟁하는 사이. 서로를 꼴통, 샌님이라 욕하며 다투는 그런 정도의 관계. 그런 만큼, 서로에게 감정이 나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죽이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박철은 지금 저 새끼를 죽이고 싶었다.

아니, 죽여주고 싶었다.


저 새끼를 죽이고 싶었던 것은 맞지만. 찢어서 한강에 공구리치고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저 꼴통 새끼가 사고치고 다니는 것만 해도 진짜 찢어서 죽여버리고 싶었던 적은 많지만.

저런 꼴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 누구라 해도 인생 최후의 안식을 맞이하게 해주고 싶을 테니까.


죽음이라는, 인생 최후의 안식을.


그러니까 박철은 지금 저 새끼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회장님의 분노를 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저벅.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발은 가벼웠다.


인천의 작은 한 창고.

평소라면 조직이 인천에서 밀매해 온 각종 물품들이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고, 위장사업체가 들어온 주류 팔레트들이 널부러져 있어야 할 창고에는.


비닐로 칭칭 묶인 채로 배송을 기다리고 있을 술들도, 은밀하게 안에 숨겨져 있을 마약들도. 그런 물건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단지.


"힉, 으힉, 힉, 히긱, 힉, 히익, 힉, 히이, 힉...!"

"자,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 잘못, 잘모해써요, 잘못했어요."

"으아아아!!으아아아악!!으아아아악!!으아아아악!!!"

"흐아아아아앙... 흑, 흐으으으, 흐아아앙, 흐으으윽, 흐아아아, 흐아아아앙...!!"

"히, 히헤, 히, 히힣, 흐헤헤, 흐, 히하, 히히, 히흐하하!"


제멋대로 발광하는 미친 사람이었던 것 들과, 비틀거리는 미친 사람이었던 것들과, 축 늘어진 사람들이었던 것 들과, 사람이었던 것이 될 사람들만이 남았을 뿐.


팔다리가 구속된 채로 발광하며 무엇이든지 물어뜯으려 하는 놈, 미친듯이 울면서 비쩍 마른 놈, 미친듯이 웃으면서 아랫배가 부풀어오른 놈, 공포에 떨려 똥오줌을 지리는 놈, 간질 발작이라도 온 것 처럼 온 몸을 떨면서 게거품을 무는 놈,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오른 채 제자리에서 몇 번이고 공중으로 뛰는 놈, 팔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오른 채 공중의 철봉에 매달려있는 놈, 가슴이 잔뜩 부풀어오른 채 물 속에 들어가있는 놈...


어떤 미친 마법사의 공방이 이럴까.


인간에 대한 존엄이나 윤리 따위는 잔뜩 벗어던진 채로, 인간을 생명이 아니라 장난감으로 여기는 미친 마법사의 공방. 그래, 그 말이 옳았다.

이 공방의 주인은, 사람 알기를 장난감으로 아는 미친 회장님이었으니까.


한 때 이 조직의 회장이었던 놈은, 무릎을 꿇고서 고개를 숙이며 조아리고 있었다.


그리고.

전 회장의 인사를 받으며, 동네 편의점에서나 볼 수 있는 하얀 플라스틱 탁자에 앉아있는 회장님은.


"...아, 왔어?"


밝고 명량하게 인사했다.


질걱, 질걱...


한 손으로는, 정체불명의 민달팽이... 같은 것을 매만지고.

다른 손으로는, 뚜껑이 열린 남자의 뇌를 이리저리 만져보면서.


회장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은 드라마에서 보던, 의사들이 쓰던 메스나 핀셋 같은게 아니었다.

눈에는 현미경이 달려있지도 않았으며, 애초에 깨끗하게 하기 위한 장갑을 끼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회장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조직원의 뇌를 헤집고 있었다.

뒤통수부터 이마. 그 둘을 이은 직선을 그리고, 머리를 뚝ㅡ 하고 잘라내 그 안의 뇌를 보여주면서.


새하얗고 분홍빛의 그것을, 맨손으로 이리저리 만지면서.

민달팽이에서 뻗어나온 촉수를, 이리저리 꾹꾹 눌러보기도 하고, 떼내기도 하고, 연결시켜보기도 하고, 주름을 헤집어도 보면서.


그럴 때 마다 움찔거리며, 신음소리를 내뱉는 조직원에게.


"이제는 보여?"


"보여, 보입니다... 눈, 파란, 하늘... 히히... 맑다... 구름 한점 없는..."


"쯧, 파란색이라 했더니 하늘색이 불러와졌나 보네. 상태창은 파란색이어야하는 법인데. 기억에서 불러오는게 쉬울까, 아니면 값을 직접 지정하는게 쉬울까..."


그 말을 들은 회장님은 딱히 화를 내지는 않았다.

단지 불평했다. 왜냐하면, 저 것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도구였으니까. 도구가 잘못되면 잘못 쓴 사람의 잘못이지, 도구의 잘못이겠는가... 라는 것이, 분명 저 회장님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시 몇 번 뇌를 헤집던 회장님은, 슬슬 싫증이 났는지 몸을 돌려 이 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은색의 향연.


달빛을 받아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은빛의 눈동자와, 그 아래로 색을 맞추듯 쭉 이어지는 백색의 가운과 새하얀 와이셔츠. 그리고 허리를 기점으로 반전된, 검은 반바지와 스타킹.

그리고 아름답고, 폭력적인 몸매.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몸매.


사람을 사람이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 곳에 어울리면서 어울리지 않는, 은발의 미녀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찾으란건 잘 찾았지?"


"......네."


회장님의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학장이나 이사장 둘 중 한명이 미녀일 것, 학생회장이 미녀일 것, 선도부장이 미녀일 것, 동아리 활동이 활발할 것, 동아리 부장들 중 미녀인 사람이 적어도 한명 이상일 것, 해외로부터 미녀 유학생을 받았을 것, 보건실장이 미녀일 것. 유명하거나, 특수하거나, 한 때 뛰어났지만 지금은 쇠락했거나, 특수한 소문이 있는 아카데미일 것. 그리고 그 중에서 반장이 미녀인 반에 남자 본인이나 여동생, 누나가 속해있을 것. 남자 본인은 꼴지나 그에 준하는 등수이거나 아카데미 입학 시험에서 탈락했을 것, 소꿉친구가 아카데미에 들어갔을 것, 남자의 인생은 실패자거나 나름대로 평탄한 인생일 것..."


생각해보면 생각할 수록 미친 이야기다.

대체 이런 미친 조건으로 서울의 아카데미를 뒤져보라 하는, 회장님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박철은 해냈다.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왜냐하면, 죽기 싫었으니까.

아니,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눈을 돌려 옆을 바라보면, 바닥에서 경련을 하며 거품 섞인 침을 흘리는 남자와.

그러 남자의 뇌에 달라붙은, 반투명한 무언가가 있었다.


"읏, 으힛, 힛, 히힛, 히흑, 힛."


저런 꼴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편리하다는 이유로 머리가 닫히지 않은 채로, 반투명한 민달팽이에게 뇌를 빨아먹히는 저 신세가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박철은 나름 똑똑했다.

이 조직에서 대학을 중퇴라도 해본 사람은 박철 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박철은 살아남았다.

박철만은 살아남았다.


'으음... 똑똑한 꼬맹이가 하나 있으면 편하니까.'


그래서, 박철은 살아남았다.

회장님 덕분에.


"...오, 진짜 있었어? 없을 줄 알았는데?"


반색하며 미소 짓는 회장님의 모습은 분명 아름다웠다. 생긋 미소짓자마자 이 창고가 마지 그림 속 한 풍경이 된 것만 같았으며, 침이 저절로 꿀꺽 삼켜지고, 다리 사이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저 외모와 모습을 보고 반해서. 아니, 꼴려서. 분명 자신들이 저 회장님을 데려와서, 팔아먹을 생각으로 납치했지만.


그것은 미친 짓이었다.

조용히 잠자고 있던 드래곤을, 바늘로 콕콕 찔러 깨우는 일이었다.


"네. 서울의 '미래 아카데미'입니다."


"미래 아카데미?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


"...한국 내에서 1, 2위를 다투는 아카데미로, 미래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사장은 미래 가문의 삼녀인 박가윤 이사장이며ㅡ"


그래서 박철은 아카데미의 이력과, 저 회장님이 찾는 남자에 대해 설명하면서.



부디, 기원하며.

두번째 아카데미에 대한 정보를 숨겼다.


제발.

미래 그룹이건, 정부건, 협회건, 국제협회건. 하다못해 군대를 끌고 와서라도.


어느 조직이건. 빌런이건, 히어로건, 헌터건.

제발.


미친 회장님을 죽이고.

아니, 최소한, 어떻게든 무찌르고.


자신을 죽여달라고.



ㅡ꾸르륵.



그래서, 이 뇌 속에서 들리는 '꿈틀거리는 감각'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만들어달라고.


그렇기에.


"그래애...? 음, 입학식은?"


"일주일 뒤 입니다."


"흐음... 아카데미물은 입학식 테러가 상식이지. 테러, 준비할 수 있지?"


"...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박철은 간절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회장님은.

악마는.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마."


미소를 지었다.



"나도 도와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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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 만드는 법 상식:

뇌에 기생충을 심는다


아카데미 입학식에 테러를 일으키는 법 상식:

아카데미 입학식에 테러를 저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