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를 책으로만 배운 ISTP 악질 튼녀 vs 카페 진상 아줌마


몇 회차에 넣을 지는 모르겠숴여 그냥 써봄!!





어제 너무 달렸나. 새로 나온 게임이 너무 재밌어서 밤을 거의 새버렸다. 한 3시간 밖에 못 잤더니 너무 피곤해.


“으으… 죽겠다아.”


그래도 젊음이 좋긴 좋아.


파릇파릇한 20살의 육체라 그런지 마나가 없는 일반인인데도 버틸 만하다… 는 개뿔, 출근하자마자 아메리카노에 샷을 2번 추가해서 들이켰다. 


“잠깐만 앉아 있을까아. 으쌰.”


나는 가게 출입구가 정면으로 보이는 카운터 의자에 앉았다.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는 아니다. 엉덩이만 살짝 붙일 정도로 조그만 의자. 그래도 서 있는 것보다는 한결 나았다.


“음… 엎드리고 싶은데.”


남자였을 때라면 그냥 신경 안쓰고 팔을 베개 삼아 엎드렸을 테지만, 여자가 된 지금은 조금… 아니, 많이 불편했다.


그 원인은 평균을 아득히 넘어서 대한민국 상위 0.1%라고 봐도 무방한 이 가슴 때문이었다. 무려 H컵. 옷장 속에 있던 속옷의 택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가슴을 아래에서 받쳐 들어올렸다. 묵직한 무게감이 손바닥 위에 얹어졌다. 이런 걸 달고 있으니 어깨가 결리지. 


손을 살짝만 움직여도 심하게 출렁거리는 가슴은 흡사 슬라임 같았다. 실제로 감촉도 비슷했다. 말랑말랑 말캉말캉. 이게 남의 가슴이었다면 몰라도, 이제는 내 가슴이어서 딱히 흥분되거나 하진 않았다.


무거운 가슴을 카운터 위에 올려두자, 엄청난 해방감이 느껴졌다. 온종일 모래 주머니를 차고 다니다 떼어냈을 때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으드드드!”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팔을 올려 길게 기지개를 폈다. 그럼에도 잠은 날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턱을 괴고 앉아 멍하니 앞을 바라보다, 몽롱하게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눈꺼풀이 게슴츠레 내려왔다.


딸랑딸랑ㅡ


“네에! 카페 니어 미(Near me)입니다!”


도어벨이 날카롭게 울리며 꿈속을 헤매던 나를 현실로 불러냈다. 반사적으로 카페 이름을 외치며 앞을 바라보니, 저들끼리 재잘대며 들어오는 중년 여성 손님들이 있었다.


“여기서 커피나 마시고 갈까?”


“난 됐어~ 자기나 마셔.”


“카페 이름 웃기다~ 카페 니어 미래. 일부러 이렇게 지었나?”


Caffe Near me. 한글로 발음하면 카페 니어 미.


나름 고심해서 지은 이름이다. 내 근처 카페, 이 얼마나 편안한 느낌인가. 처음엔 ‘내 근처 카페’라고 하려다가 좀 더 있어 보이려고 영어로 지었다.


이름이 재미있다며 깔깔대는 웃는 손님. 내 작명 센스에 감탄한 게 분명하다. 뿌듯.


“여기 아메리카노 따뜻한 걸로 하나 주세요.”


“네, 아메리카노 하나요.”


이제는 포스기 조작도 제법 익숙해졌다. 어렵지 않게 아메리카노 주문을 입력하고, 손님이 내미는 카드를 받아 결제까지 완료. 


“다음 분 주문 도와드릴게요.”


“아, 우리는 괜찮아요. 저 언니만 주세요.”


대답한 손님 말고 다른 손님도 쳐다보았지만, 그녀도 커피를 시킬 생각은 없어보였다. 배가 볼록 튀어나온 걸 보니 임신이라도 한 걸까.


“아유, 자기야! 우리 이 동네 살아! 다음에 자주 와서 많이 팔아줄게. 오늘만 봐줘. 응? 맘카페에 카페 홍보도 해줄게~”


오호호홋, 웃으며 위아래로 손을 내젓는 손님. 통통한 팔목에 낀 진주 팔찌가 터질 듯 위태로웠다.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무튼 같은 동네 주민이라니, 잘 해줘야겠다.


“네, 알겠어요. 아메리카노 한 잔 드릴게요.”


맘카페가 어디 있는 카페인지는 모르겠다. 카페면 내 경쟁자 아닌가? 왜 갑자기 홍보를? 


잠시 고민하던 나는 손님이 했던 말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경쟁자지만 같은 동네 주민이니 홍보 해준다는 거구나! 이게 한국인의 정?


S급 헌터고 나발이고, 은퇴해서 카페 차리길 잘했다. 어쩌다 보니 헌터 은퇴 뿐만 아니라 남성 은퇴도 같이 해버렸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면 잊고 현재에 집중하자, 지난 일에 매달려봐야 이미 떠난 시간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켜온 좌우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이웃을 만났다는 생각에, 나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곤 아메리카노 제조를 시작했다.


위이이잉ㅡ 차카차카ㅡ


그라인더가 커피 원두를 우렁차게 갈아낸다. 상당히 시끄러운 소리라 이걸 켜고 있으면 주변 말이 잘 안들리는 게 정상인데.


“오호호! 진짜? 나는 이번에 새 명품 가방을 하나~”


“남편 용돈 많이 줄 필요 없다니까? 있어봐야 술이나 마시지! 한 달에 30만원이면 충분해~”


중앙 테이블 하나를 전부 차지하고 앉은 세 여자의 대화는 유도 마법이 걸린 매직 애로우처럼 내 귀에 팍팍 꽂혀 들었다. 여자들은 모일수록, 나이가 많아질수록 강해진다더니 사실이었다.


탈탈탈ㅡ


포터 필터에 분쇄된 커피 가루가 산 모양으로 쌓였다.


수북하게 쌓인 짙은 갈색의 커피 가루. 윗 부분을 조금 깎아내고 꾹꾹 눌러 담은 뒤, 커피 머신의 필터 홀더에 끼웠다. 


이제 아래에 샷 글라스를 받치고 에스프레소 추출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끝.


웅웅웅ㅡ 쪼르륵ㅡ


커피 머신이 진동하며 기계음을 냈다. 잠시 후 추출된 에스프레소가 귀여운 물소리를 내며 아래로 떨어진다. 


작은 은색 주전자 같이 생긴 샷 글라스 안에, 진한 커피 향을 가득 내는 검은 액체가 찰랑거렸다.


커피가 추출되는 동안, 나는 미리 매장 내에서 사용하는 머그잔에 따뜻한 물을 받아 놓았다.


추출된 에스프레소를 물이 담긴 머그잔 위로 붓자, 투명했던 물이 순식간에 검게 물들었다. 


음, 이 살짝 탄 듯하면서도 고소한 향기. 너무 좋아.


“커피 나왔습니다.”


카운터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올려두고, 커피를 시킨 손님을 불렀다. 


"아하하! 언니 진짜 너무 웃기다~"


"진짜 그랬다니까~? 내가 뭐라 하니까 아무 말도 못하는 거 있지?"


지치지도 않는지 높은 데시벨로 대화를 이어가는 손님들.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았나?


“커피 나왔습니다아!”


“어머, 언니야. 커피 나왔네. 가서 가지고 와.”


“아이 참, 한창 재밌게 얘기하고 있었는데!”


나를 향해 눈을 흘기며 다가오는 손님. 눈에서 레이저라도 나올 기세였다. 솔직히, S급 게이트에서 만난 보스 몬스터보다 더 무서웠다. 


몬스터는 때려 잡으면 되는데, 인간에게 그럴 순 없잖아. 물론 지금은 고블린 한 마리도 못 잡는 몸이 되어버렸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걸리는 게 없었다.


척척 다가온 손님은 커피를 올려놓은 트레이를 들고는 뭔가를 찾는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귀에 걸린 화려한 귀걸이가 고갯짓을 따라 찰랑거렸다.


“자기야, 여기는 잔 없어?”


“잔이요?”


“응, 그냥 빈 잔~ 저기 언니들이랑 나눠 먹게.”


“으에? 아까는 혼자만 드신다고 하셨잖아요.”


“얘기 하다 보니까 목이 좀 마르다고 하네~ 동네 장사 좋은 게 뭐야~ 이럴 때 융통성도 좀 발휘하고 해야 단골도 많아지고 그러는 거지!”


입을 가리고 오호홋 웃는 손님. 내가 알고 있는 정보와는 달라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주제넘는다고 생각해서 말 안하고 있었는데, 혹시 손님들이 몰랐을 수도 있으니 알려주는 게 좋겠다.


“임산부에게 커피는 좋지 않아요.”


“네?”


큰 맘 먹고 알려준 정보에, 손님이 눈을 크게 떴다. 내 예상이 맞았다. 그녀도 모르고 주문한 것이었다! 임산부는 카페인 엄금이거늘.


“미리 알아채지 못해서 죄송해요. 혹시나 해서 말씀은 안드렸는데… 이 커피는 환불해 드릴게요.”


“뭐, 뭐라는 거야!”


“으에?”


손님이 나를 향해 삿대질하며 소리를 빽 질렀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얼굴이 홍시처럼 벌겋게 물들었다.


역시 너무 늦게 알아챈 게 문제였다. 이미 나온 커피를 안 주고 환불해 주겠다는데, 입장 바꿔 생각해봐도 충분히 화낼 만했다. 고객만족의 길은 어렵구나. 


이럴 때는 어떻게 하더라… 그래, 일단 진정부터 시켜야 한다. 화가 난 사람은 뭐라 말해도 들리지 않으니까.


“진정하세요. 어머님.”


“어, 어머님?!”


어머님이라고 불린 게 그렇게 좋았는지 이제는 뒷목을 부여잡고 뒤로 넘어가려고 한다. 배를 보면 못해도 임신 6개월은 되어 보여서 어머님이라 불러본 건데, 효과가 너무 좋았다.


“아니, 당신 미쳤어!”


“어머, 언니!! 무슨 일이래?”


테이블에 앉아 있던 다른 손님까지 후다닥 달려왔다. 처음부터 고객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 미안함을 담아, 최대한의 고객만족을 실현하자.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손님 세 분 모두 배가 불러 있으니, 임산부일 확률이 높다. 내가 만약 임산부라면 어떤 칭찬에 가장 기뻐할지 생각해본다. 아무래도 뱃속의 아이를 칭찬해주는 게 가장 기쁘지 않을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을 담은 미소를 띠며 고객만족을 위한 멘트를 읊었다.


“세 분 모두 배가 많이 부른 걸 보니 곧 출산이신가요? 아이가 어머님을 닮아서 무척 예쁘겠어요.”


“어머, 어머! 얘 말 하는 거 좀 봐. 우리 임산부 아니야!”


“우리가 임산부처럼 배 나왔다는 말이네. 참나, 기가 막혀서 정말! 그리고, 뭐? 어머님? 우리 30대야! 어딜 봐서 어머님 소리 듣게 생겼는데!”


“가슴만 더럽게 커서는, 얼굴 예쁘면 다야? 손님이 우스워? 너 우리 남편이 누군지 알아?!”


뽀용뽀용ㅡ


손님이 화려한 네일 아트로 장식된 손가락을 세워 내 가슴을 쿡쿡 찔러왔다. 그녀의 손가락을 뿌리까지 먹었다가 뱉어내길 반복하는 풍만한 가슴을 잠시 내려다 본다.


이제 내 몸이지만 내가 보기에도 흉악하게 큰 가슴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예쁜 얼굴이고. 다만 이게 원래 남자였던 내게 칭찬인지 아닌지 조금 애매했다. 내가 남자였다는 건 나 외에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니, 단순히 내 겉모습을 칭찬하는 말이겠지. 


“아, 어머님이라고 부른 건 나이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못해도 임신 6개월 이상으로 보이셔서… 죄송합니다.”


당당하게 지하철 임산부 전용 좌석에 앉아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만큼 볼록 튀어나온 배였다. 누가 봐도 임산부처럼 보이지만, 직접 아니라고 했으니 명백한 내 실수. 


실수를 했으면 사과를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곧장 진심을 담아 죄송하다고 말했건만,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손님은 팔짱을 끼고 매섭게 나를 노려보았다.


“허, 참! 어이가 없어서! 너 지금 우리가 1인 1잔 안시켰다고 일부러 이러는 거지!”


1인 1잔이라는 손님의 말에, 문득 깨달음이 있었다.


그렇구나. 그녀들은 다른 문제를 겪고 있던 거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다니, 나는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실격이야. 은퇴 후 차린 카페라고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마음을 굳게 다잡는다. 중년… 아니, 30대 여성 손님의 반지로 가득한 손을 감싸고, 그녀의 눈을 마주보았다.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 각박한 세상에 아직도 이런 우정이 남아 있다니. 아직 세상은 따뜻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흘러나와 손가락으로 훔쳐냈다.


“돈이 부족해서 한 잔만 시키신 거였군요! 이게 말로만 듣던 콩 한쪽도 나눠먹는 우애! 정말 감동이에요. 진작 말씀하셨으면 동네 주민이시니 이번은 무료로 한 잔씩 드렸을 텐데.”


내 말에 손님들은 입을 떡 벌린 채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사람이 너무 감동받으면 말이 안나오기도 한다고 들었다. 어버버하며 가만히 나를 쳐다보던 손님은, 이내 몸을 홱 돌려 출입구를 향해 척척 걸어나갔다.


“언니, 그냥 가자! 얘 말이 안 통해.”


“너, 두고 봐! 이거 그대로 맘카페에 올려줄게.”


“…? 네, 감사합니다!”


조금 늦긴 했지만, 마지막에라도 손님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짚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다른 카페에서 홍보를 해준다니! 안 그래도 월세가 간당간당해서 고민하던 차에 좋은 소식이었다. 


딸랑딸랑ㅡ


“다음에 또 오세요~”


들어왔을 때처럼 도어벨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손님들. 그녀들의 뒷모습을 향해 공손히 인사한 나는 주인 없이 덩그러니 남겨진 커피를 발견했다.


“그래도 커피는 드시고 가시지.”


버리긴 아까우니, 내가 마셔야지. 


아직 따뜻한 커피잔을 쥐고 홀짝이며 카페를 슥 둘러보았다. 그러다 구석에 앉아 있던 남자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말없이 내게 엄지를 치켜 세웠다.


“…?”


새로운 인사법인가? 


이 몸으로 깨어나기 전에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빴다 보니, 요즘 뭐가 유행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모를 땐 따라하면 되겠지. 그를 따라 엄지를 치켜 올리고,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따봉.




전작이랑 필체 좀 다르게 써보려고 노력해봤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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