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한 생각바구니 : https://arca.live/b/tsfiction/103014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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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푹. 찌직.
고깃덩어리는 내려치고 찢어내는 소리. 중간중간 섞이던 비명과 신음도 멎고 나니 비교적 단조로운 소음만 울렸다.
“그만 하라고 했지!”
소리와 걸맞게 살풍경한 광경이었다. 사지가 너덜너덜한 시신. 목뼈가 드러나 덜렁거리는 주검. 날이 깨끗한 검과 손잡이를 꽉쥔 손목 조각 따위가 즐비했다.
그 참상 속에 홀로 서있는, 백색 앞치마와 붉은 얼룩이 흥건한 메이드.
“계속 그러면 명령 불복종이야!”
어린 남자의 목소리가 외쳤다. 칭얼거리거나 겁에 질려 어머니를 찾는 게 더욱 어울리는 앳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명령 불복종을 운운하니, 그제야 메이드가 고개를 돌렸다.
“하, 도련님. 왜, 뭔데.”
메이드로서는 당장 내쫓겨도 할 말 없는 말본새.
말투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치켜뜬 눈 속 사나운 세로 동공이 ‘도련님’을 똑바로 응시했다.
“왜. 배고파? 저녁은 아까 차려줬잖아.”
무례도 정도껏 해야 꾸짖고 교정할 생각이 드는 법이다. 이처럼 실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메이드라면, 더군다나 피칠갑을 한 얼굴로 시신들을 밟고 서있는 메이드라면 겁부터 먹는 게 정상이었다.
“장난 치지 말고!”
하지만, ‘도련님’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저번에도 말했잖아! 그런 짓 하지 않겠다고!”
“……허.”
메이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손에 쥐고 있던 걸 신경질적으로 패대기쳤다. 부서진 뼈가 얼핏 드러난, 주인 잃은 손목이 철퍼덕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왜요. 그럼 어떻게 했어야 했는데.”
터벅, 터벅. 공손이라곤 전혀 없는 메이드가 도련님을 향해 걸음을 성큼 내딛었다.
“뭐, 얘네들한테 정식으로 손님맞이라도 했어야 했나?”
도련님은 남자치고도 키가 작았고 메이드는 여자치고 키가 컸다.
둘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도련님은 메이드를 올려다봐야했다.
“얘네 도련님 죽이러 왔다고. 그래서 다 죽였는데, 뭐 잘못됐어?”
메이드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그러면서 결코 사람의 것이라 보기 어려운, 비정상적으로 뾰족한 이가 드러났다.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해야하는 게 맞지 않아, 도련님?”
내려다보는 시선은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나를 지켜준 건 고마워. 하지만.”
도련님은 솔직했다. 여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그만큼 굳건하기도 했다.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할 건 없었잖아!”
“……그럼?”
“모두 붙잡은 다음에 신고했어야지!”
메이드는 눈밑살을 꿈틀거렸다. 그럼에도 도련님의 질책은 그치지 않았다.
“죽이는 거 금지라고 했잖아! 왜 말을 안들어? 내가 네 주인이잖아!”
“도련님.”
나직한 부름. 이죽거림도 없고, 비아냥도 없고, 장난기도 없고.
대신 서늘할 정도의 한기가 베어있는 부름.
“아직도 그런 걸 믿어?”
답을 듣고자 한 의문이 아니었기에, 메이드는 거듭 질문을 던졌다.
“도련님 멍청해? 도련님 엄마아빠 왜 죽었는지 몰라?”
메이드의 도리를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할 소리를 지껄이는 입은 멈출 줄 몰랐다.
“그런데도 법이니, 종교니. 그런 거 아직도 믿고 있는 거야?”
도련님의 입술이 바르르 떨었다. 메이드는 으르렁거림에 가까운 목소리로 연신 물었다.
“재산도 잃고, 부모도 잃은 도련님을 옆에서 지켜주는 게 누구야? 신이야? 치안유지대야? 진짜 궁금해서 그래, 대답 해봐.”
도련님은 어리석진 않았다. 답은 하나뿐이었다.
“……네가 나를 지켜줬지.”
“그래. 내가 지금까지 도련님을 지켜주고 있다고.”
메이드가 무릎을 꿇었다. 눈높이를 도련님과 맞춰주는 모양새가 됐다.
“말 나온 김에, 도련님.”
메이드는 이제 차가움을 덜어내고, 대신 좀 더 은근한 어투로 물었다.
“복수하고 싶지 않아?”
메이드는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부모님을 그렇게 죽게 만든 것들. 귀족가들이며, 종교계 그 새끼들. 싹 다 죽여버리고 싶잖아. 안 그래?”
메이드는 도련님의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쥐었다. 피가 굳어 검붉은 손이 하얗고 여린 손을 붙잡았다.
“나, 도련님 생각보다도 훠어얼씬 세거든? 내가 다 죽여줄게.”
섬뜩한 발언이지만, 보다 더 무서운 건 그게 허풍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팔다리 한짝씩 떼서 도련님 앞에 던져놓을 게. 버러지만 못한 새끼들이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걸 보여줄게.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는 새끼들이 잘못했다고 사죄하게 만들어줄게.”
이젠 두 손으로 도련님의 손을 끌어당기는 메이드였다.
“명령만 해. 일주일 안으로, 아니. 내일 중으로 그렇게 할 테니까.”
흰 앞치마는 검붉게 얼룩졌다. 검은 원피스라고 피가 안튀지 않았다. 메이드는 도련님의 손을 제 가슴팍으로 끌어당겼다. 피가 굳어 퍼석거리는 원피스. 그 너머로 뭉큰한 젖가슴이 느껴졌다.
“어때?”
저택 속의 피비린내를 잊게 만들 정도로 달콤한 제안이었다.
적어도 메이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안 돼.”
하지만 도련님은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가 말씀했어.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하게 될 거라고.”
도련님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분명히 말했다.
“지켜줘서 고마워. 방금의 말도, 나를 생각해서 그런 거라고 알고 있을께.”
가슴팍에 묻어진 손을 자기쪽으로 끌어오는 도련님이었다.
“하지만, 우리 가문,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것들은 분명 어떻게든 벌 받을 거야.”
도련님의 하얀 손에는 검붉은 가루가 조금 묻었을 뿐, 피가 얼룩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너도 함부로 해치지 말고. 내 말을 따라 줘. 응?”
어린 아이 특유의 온기와 물기가 어린 두 눈이 메이드를 바라봤다.
“……물러터져 가지고는.”
메이드는 그 시선을 외면했다.
방금까지의 열의가 어디갔냐는 듯, 차갑게 식은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키 더 크려면 들어가서 잠이나 자.”
“……내 말 들은 거 맞지? 너 앞으로도 막 죽이면 안 돼? 어? 너는 내 메이드니까!”
“어린 애가 쫑알쫑알. 청소할거니까 들어가라고!”
예의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대꾸지만, 도련님은 어딘가 안심한 얼굴이었다.
메이드는 한숨처럼 여지를 남겼다.
“……후회하면 늦을 테니까. 일찍 말하는 게 나을 거야.”
“말할 일을 없을 거야. 그래도, 고마워.”
***
“……고맙기는, 지랄.”
“어? 야! 늑대! 너 또 내 욕했지?”
옛적 기억을 곱씹어보는 와중에, 앵앵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와 슬그머니 눈을 떴다.
자신의 지금 주인, 사춘기를 막 겪는 여자애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서있었다.
“너, 내가 고용한 메이드인데 왜 자꾸 내 욕해? 어?”
“내가 언제. 왜, 찔렸어?”
차분한 비아냥에 여자아이는 발을 동동 굴렀다.
“이이익! 존댓말도 안하고, 자꾸 말대꾸, 말대꾸!”
한 대 칠 기세였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확신하는 메이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너 나 싫어하지? 그치? 다른 집 용인 경호원은 그렇게 착하다던데, 너는 왜 그래?! 자꾸 그럴 거면 그냥 옛 주인한테 가!”
메이드는 입꼬리를 올렸다.
어이가 없어서, 그래서 귀엽고 또 발칙해서.
그리고 한편으로 씁쓸해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섭섭하다. 내가 언제 싫어했다고?”
“……그럼, 나 좋아?”
사춘기라 그런지, 여자애들은 다 이러는 건지. 금세 달라지는 태도에 메이드는 웃음을 실실 흘렸다.
“그럼. 좋아하지. 안그러면 내가 왜 메이드로 있겠어.”
“……흐, 흥! 그럼 뭐가 좋은데? 역시 내가 좀 강해서? 아니면 얼굴이 예뻐서? 아카데미에선 다 나보고 예쁘다고 하긴 하는데…….”
메이드는 진심과 농담을 정확히 반씩 섞어서 대답했다.
“그 지랄맞은 성격이 좋아.”
“……야! 야! 너 진짜! 엄마! 엄마! 메이드 좀 혼내줘! 엄마!”
몸도 나름 크고 아카데미 학생이라면 나이도 좀 있을 텐데, 어린 애마냥 엄마를 찾는 모습을 보며 메이드는 두 손을 깍지끼고 머리 뒤에 댔다.
다시금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속에는 자연스레 어느 인물의 모습이 떠올랐다.
“……흐음.”
메이드로서 결코 권장되지 않는 일이지만, 자연스레 다른 차원에서 모셨던 도련님과 지금 주인님을 비교하는 늑대 수인 메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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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쎔 + 살육광 + 버릇 없음 + 아픔도 많은 귀환자 늑대수인 메이드 틋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