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게 무슨 소리야, 튼녀야. 아직 화가 안 풀려서 그래...? 내가 진짜 잘못했어. 응? 그래서... 잠깐만."


시아는 허겁지겁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한눈에 봐도 귀해보이는 것을 한아름 꺼낸다. 귀한 것들을 품에 안으며 꼼지락거리는 시아의 눈동자에는 약간의 희망이 내비쳤다.


시아의 모습은 언뜻보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어 안달난 사랑스러운 아가씨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죄책감으로 인해 속이 곪아가고 있었다.


정말 저것들로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당사자는 이미 죽고 떠난 상태인데. 여기에 들어있는 건 불의의 사고로 죽은 아저씨의 영혼인걸 왜 몰라주는 걸까.


시아가 얼마나 잘못했건, 이제는 없는 사람에게, 애꿎은 사람에게 사죄하는 모습은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튼녀는 시아을 쓸쓸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 동정심으로 가득찬 눈길을 경멸로 오해한 시아는 절박하게 제 품에 있는 귀중한 것들을 튼녀의 품에 떠넘겼다.


"여기! 영약이랑 보석 같은 선물도 가져왔고... 사과문도 써왔어. 한번 봐줄래...?"


귀중한 것들을 떠넘겨서 손이 자유로워진 시아는 편지 봉투에 들어있던 편지비를 꺼내서 펼친 후 들이밀었다. 얼마나 절박했는지 튼녀의 얼굴에 편지를 비빌 정도로 가까이.


"아... 미안."


"괜찮아.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못 받겠어.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해야 할까. 암튼 그래."


"도대체 왜...? 혹시 내가 너무 일찍 와서 그런거야? 좀 시간이 지난 후에 와도 될까?"


"그게 아니라... 하."


상식적으로 친구의 영혼은 이미 없고, 그 몸을 아저씨가 차지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힘들다는 건 나도 안다. 그리고 내가 그걸 밝혀봤자 좋을 거 없다는 거 안다.


여기서는 이 몸의 원주인 행세를 하며 선물을 받고 적당히 사과를 받아주는 게 최선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세입자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이미 한번 죽은 몸인데 죽음을 무서워해서 쓰겠나. 튼녀는 주머니에서 단안경을 꺼내 시아에게 던졌다. 단안경을 받은 시아는 도도한 얼굴을 얼빵하게 물들였다.


"영혼을 볼 수 있는 아티팩트야."


내가 준 것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자 시아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단안경을 착용했다.

 

"...!"


"말했지. 난 튼녀가 아니라고."


단안경을 통해서 본 내 모습은 튼녀보단 아저씨의 모습일 거다. 그러니 시아의 얼굴이 얼빵함에서 경악으로, 경악에서 분노로 바뀌는 거 아니겠는가?


"튼녀는 이미 죽었어. 정확히 말하자면 목숨을 포기하는 김에 생면부지의 영혼에게 몸을 주고 떠났다고 해야 하나?"


"거짓말...!"


"진짜? 진짜로 거짓말로 생각해? 잘 생각해봐. 튼녀의 성정과 네가 한 짓을 생각해 보라고. 진짜 거짓말 같아?"


"아니야... 그럴리가..."


"이미 저지른 잘못은 돌이킬 수 없는 법이야. 그러니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


* * *


이후 시아는 튼녀의 몸이 살아있으니 튼녀의 영혼더 살아있을 거라고 믿고 튼녀의 뷰지를 빨며 사죄의 봉사를 하게 댑니다 와 데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