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끝나지 않는 조별 과제이자 마라톤이다. 혼자서 뛰기에도 버거운 긴 트랙에서 남들까지 챙기기엔 나는 초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계속 기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떼어냈다. 한결 다리가 가벼워졌다.


그 다음에는 자기 편할 때만 도움을 받고 힘들 때는 핑계를 대는 사람들을 떼어냈다.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그렇게 계속 떼어내다 보니 더 이상 내게 기대오는 사람이 없어졌다. 몸과 마음이 무척이나 편해졌다.


그러나 이내 깨달았다. 내게 기대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나 또한 기댈 사람이 없다는 것을.


나는 그토록 싫어하던 독선과 아집에 가득찬 늙고 살찐 틀딱아저씨가 되어버렸다.


늙고 병든 몸으로 혼자서 달리다 보니 우숩게도 트랙을 이탈해버렸다. 다른 세계라는... 새로운 트랙으로.


"...역시 게임은 질병이야."


요즘 MZ세대들이 즐겨한다길래 뭐 얼마나 재밌길래 하는 건지 궁금해서 깐 것이 화근이었다.


다행히 나이에 맞지 않게 오덕 게임을 재밌게 한 바람에 스토리는 다 알지만, 너무 자세히 보지 말걸 그랬다.


내가 아무리 독선적이라고 해도 사람이 반갈죽 나서 죽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는가.


"아아..."

"학생, 고개 숙여."


여학생은 패닉에 빠졌어도 구조자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여학생이 몸을 웅크리자 거대한 대검이 여학생의 머리 위를 스쳐지나가며 사마귀 몬스터의 목을 갈랐다.


"...곤충형은 머리가 잘려도 움직일 수 있어."


사마귀의 머리를 날린 대검은 방향을 틀어 낫처럼 생긴 앞발을 가르고, 몸통을 토막쳤다. 


바닥을 적시는 노란색 체액에 정신을 차린 여학생이 갓 태어난 사슴처럼 떨리는 다리로 일어나 내게 꾸벅 고개를 숙인다.


"감, 감사합니다!"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 얼른 들어가서 쉬렴."

"어른이요...? 저희 같은 아카데미 학생 아닌가요?"

"...그런가."


아무래도 내세울게 나이 밖에 없어서 어른 타령이 입에 붙은 것 같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나중에 꼭 사례할게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튼녀는 대검을 어깨에 짊어지고,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생각에 빠졌다.


"...의미 없나."


잡생각 할 시간에 연습이나 하는 게 훨 낫겠지. 앞만 보고 달리는 것, 그건 내가 제일 잘하는 거니까.



어쩌다 보니 주인공네와 친해졌다. 친구라기 보다는 보호자 혹은 결전 병기로서 친해진 것 같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50살 아재가 어린 학생들과 친구 먹는 게 오히려 끔찍한 일이지. 


"저 사람이야? 학생인척 숨어들어서 아카데미를 지킨다는 노괴가?"

"무력이나 말투를 보면 아무래도 잠행 교수인 거 같지?"

"저런 틀딱력을 지니고도 교수가 아닌게 이상한 거야." 


대검을 어깨에 짊어지고 아카데미를 돌아다니고 있자니 어쩐지 주변이 부산스러웠다.


"지금도 봐. 나른한척 아카데미를 순찰하고 있잖아."

"그런가?"

"게다가 몬스터를 칼질 한방에 반으로 갈라버리는 건 교수들도 힘들어하는 기행이잖아?"


학생들, 그런 거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이 몸뚱어리는 노력과 궁합이 잘 맞았다. 소위 천재라는 족속인 것이다.


아프면 청춘이다의 신봉자인 튼녀에게 노력이란 습관이고, 습관은 곧 즐거움이었다.


전생에도 일중독이었기에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고, 힘이 남아돌자 꼰대 특유의 오지랖이 발동하여 사건 사고를 직접 해결하기 시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가 있다면 튼녀가 교수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해결한다는 것과, 떠나기 전에 틀딱스러운 말을 남기고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한 건가? 어쩔 수 없군."

"비켜라, 내가 해결하겠다."

"그건... 아직 알려줄 수 없다."

"모르는 건가..."


어딘가의 초록 단또가 생각나는 화법 때문에 수상해 보인다는 걸 본인만 몰랐다.


*


주책을 부리지 않는 튼녀 소설 누가 써줘 


내 이리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