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백합물을 싫어했어요

왜냐하면, 백합물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작품으로 처음 접했거든요


암타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만약 그런 식으로 시작했다면 암타물도 똑같았겠죠


십삼중수소 작가님은 빌드업을 잘 쌓는 사람이에요


마빡영애가 매력적인 이유이기도 하죠


아멜리아는 빙의자에요

정확히는, 빙의물 소설 속 주인공이에요


엘시는 빙의물 소설에 빙의한 주인공이고요


그래서 두 사람은 똑같은 빙의자이지만, 서로 생각하는 '원작'이 달라요

자신이 아는 원작과 다르게 드루이드 능력을 각성한 엘시에게, 아멜리아는 호기심을 느끼고 다가갑니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돼요


빙의자


비록 현생의 가족들과 더욱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나, 스마트폰, 김치와 같은 마음의 고향은 이세계의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어요

오로지 단 한 사람을 빼면

절대로 대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거죠


허나 현생은 달라요

엘시와 아멜리아는 신분의 격차가 있습니다

아멜리아는 엘시와 더욱 편한 관계가 되고 싶지만, 이따금씩 신분이라는 걸림돌이 발목을 잡아요


반대로 엘시는 백합물에 본인이 끼어들어도 되는가, 라는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죠


이 모든 과정이 간질거리고, 때로는 답답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성을 더욱 두텁게 만들어요


서로 결핍을 채워주고,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

얼마나 매력적인가요



저는 백합물의 재미가 이런 고뇌와 관계성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다른 백합물을 잘 못 보는 이유가 이거에요


왜 좋아하게 되는 걸까?

어째서 주인공을 좋아하는 걸까? 주인공에게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마빡영애는 이러한 의문이 떠오르질 않아요


단순히 백합이라는 태그가 달려있어서 두 사람이 사귀는 게 아니라, '너'이기에 좋아한다는 느낌

남자라서, 여자라서, 가 아니라 '너'라서 좋아한다는 느낌


이런 느낌이 드는 작품은 처음이었어요

분명 백합물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빡영애를 재미있게 보았다면, '마법소녀물의 신전사가 되었다.'도 추천해요

이건 마빡영애보다 빌드업이 덜 지루할 뿐더라, 흑백논리로 갈리지 않는 입체적인 등장인물이 많아요


그만큼 더욱 현실적이고, 그런 걸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무리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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