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에서 핵폭탄이 터지는 걸 볼 줄은 몰랐다.


바다 깊숙한 곳에 잠수하다가 위쪽이 번쩍거리는 걸 발견했다.

수면 밖으로 나와보니 저 멀리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니, 여긴 이세게인데?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만은 기억났다.


핵폭탄이 옆에서 터졌지만 몸은 멀쩡하다.

저 멀리 솟구치는 버섯구름이 멀고, 먼 화면 밖 세상만 같았다.


뭍 위로 비척거리며 올라온다.

다행히 사정거리 안은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방사능은 맞기 싫으니 대피 해야겠지.


안일한 생각이었다.

마을에 발을 디딘 순간 깨달았다.

느긋하게 걸어온 내가 얼마나 위기감 없는 멍청한 년이었는지.

지식이 있으면 뭐하는가. 그 지식을 써먹지도 못하는 병신에게.


언제나 활기찬 분위기로 가득차 있던 광장.

팔 힘이 강해보이는 남자와 오크 과일장수가 말싸움을 하고 고양이년들이 술 취한 드워프의 지갑을 훔치던 정겨운 장소.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그 자리가 없어진다는 걸 상상이라도 해봤겠는가?


"끄어어어어..."

"살려줘으어으!!!!"

"그륽그르륽...그륽..."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비명이 오래가진 않았다.

모두가 녹아가고 있었다.

몸 말단부부터 서서히, 끔찍하게.

육편으로 이루어진 형편없는 슬라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과정이 상당히 고통스러운지 녹아가는 사람들은 비명을 지른다.

이윽고 성대까지 녹아내리기 전까지.

계속해서.


현실감이 없어서 눈을 여러번 깜빡인다.

눈가가 파르르 떨릴 때까지 깜빡인다.

녹아내리는 것 같은 시야 속,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짐승 같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냄새를 잘 맡는 건 이 빌어먹을 축생의 몸뚱아리의 장점이었다.

공포와 죽음으로 가득 찬 공기 중에서 미약하게 느껴지는 햇살 같은 향기를 쫓았다.


그 애는 이 좆 같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찾은 보물이었다.

솜사탕처럼 푹신푹신한 머리카락을 가진, 달콤하기 짝이 없는 마음씨를 가진 소녀였다.

세상은 언제나 좆같았기에, 그런 소녀를 가만히 두지 못했고, 나는 생을 바쳐 그녀를 지키기로 했었다.

그런데.


폐에서 피가 올라올 정도로 격렬하게 달린다.

길을 막는 반액체 상태로 변한 슬라임을 걷어차며 달렸다.

저 사람은 누구였는지는 알 바가 아니다.

그 아이의 향기가 나지 않았다.

가로막는 건물은 그냥 그대로 몸통 박치기로 뚫었다.

나중이 있으면 갚을 것이다.

향기가 점차 가까워진다.

낡은 교회의 문을 걷어차고 목청을 크게 질렀다.


"솜사탕!!!!!!"


"왜애요... 틋녀씨. 잠에서 깼잖아요."


언제나처럼 느긋한 목소리.

바깥의 참상과 다르게 한없이 여유로운 목소리.

나는 환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내 사랑. 내 주인. 내 삶의 이유.

그녀가 녹아가고 있었다.


"왜, 그렇게 심각해요...흐흣...못생겼어."


"잠깐! 잠깐 기다려!!"


다급히 그녀를 들어올린다.

액체가 된 부분이 흘러내리자 그녀의 얼굴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하지?

어디로 가야.

병원. 병원에 가야해.

병원...?

병원은 교회. 교회는 여기인데.


"힐! 힐 써! 빨리! 뭐해!"


"흐...그렇게 정신이 없을 정도로 저를 걱정했던 거네요. 나 참...진작에 좀 그러지."


"장난치지 말고...!"


"소용 없어요."


"웃기지 마!!!!!"


초조하게 입술을 짓씹으며 그녀를 안고 있는 내 손을 본다.

위화감이 느껴졌다.

모두가 녹고 있다.

예외는 없다.

나만 빼고.


나만 빼고.


나와 그들의 차이가 뭐지?

방금까지 난 뭘 하고 있었나.

바다.


물은 방사능 차폐 효과가 탁월하다.


그녀를 안은 채로 다시 왔던 길로 박차고 나간다.


"저기, 제 말 좀 들어볼래요?"


"이따가 해! 넌 안 죽어. 내가 절대로 살릴 거야."


비가 진하게 내린다.

건물마저도 빗방울이 내린 부분이 움푹 파일 정도로 녹아내렸다.

한때 인간이었던 것들은 얕은 웅덩이가 되어 달릴 때마다 찰팍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 비에 맞지 않도록 더 강하게 감싸 안았다.

그럴수록 절대적인 질량이 줄어들었다는 걸 여지없이 깨달을 수박에 없었다.


"제발...제발...!"


"저기요...?"


"다 왔어!!!! 다 왔다고!!!"


바다가 보인다.

더 늦어서는 안된다.

이미 손에 느껴지는 그녀의 몸은 절반 이상이 사라져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살린다. 살릴 거야. 살아날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걱정하면 안돼. 다 괜찮아."


"저, 당신을..."


나는 소녀를 바다 안에 집어넣었다.






























내가 먼 훗날에 알게 된 것은.

녹아내릴 수 있는 것을 물 안에 넣으면 안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대충 핵?퍽탄을 사용한 상층부를 하나하나 족치러 다니면서

거기에 숨겨져 있던 엄청난 음모(성기털 아님)를 파헤치고

솜사탕이 어째서 죽을 수밖에 없었단 운명이었는지 깨달아버리고...그런 거 업나


...근데 뭐지

솜사탕을 물에 씻는 라쿤에서 왜 이런 게 튀어나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