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여자아이가 된 후로는 남들 앞에서 말 한마디 한 적 없다.


한숨이나 기침은 커녕 마물과 싸우다 얻어 맞았을 때도 어떻게든 신음을 삼켰다.


왜? 135cm의 흑발금안의 초 - 레어 미소녀가 입만 열면 산전수전 다 겪은 남자 목소리가 튀어 나온다니, 내가 들어도 기분 나쁘다.


그렇기에 내 안의 오타쿠 신념은 차라리 벙어리로 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벙어리 미소녀는 수요가 조금 있거든.


아무튼 말을 안 하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내 새로운 몸은 '헌터'라는 매우 어반 판타지적인 직업에 꽤 재능이 있었으니까.


대충 해도 6급, 진심으로 싸우면 4급 까지도 어찌저찌 단독으로 해치울 수 있었으니 어려 보이는 나이와 벙어리라는 패널티에도 불구하고 제법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돈도 모자라지 않게 받았고.


솔직히 놀랐다. 게이트 붕괴 사건이 벌어져 마물에게 덮쳐졌을 땐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입에서 빔이 쫙 - 하고. 와 씨.


......손가락으로 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멋도 멋이지만 입으로 쏘다 보니 재미로라도 천마 - 데스빔을 같은 걸 못 외친다.


아무튼, 쓰고 나면 목이 간지러워 저도 모르게 기침이 나오는 것만 조심하면 굉장히 강력하고 편한 능력이었다.


그렇게 뜬금없이 TS 이세계 전생을 당했지만, 나는 별 다른 불만 없이 풍족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래, 그 시아라는 여자를 만나기 전까진.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해태 길드의 실세라는 그녀는 나를 쫓아다니며 미친 듯이 괴롭혔다.


찜질방에서 잘 자고 있는데 갑자기 잡아다 고아원에 집어 넣고.

(정신연령 안 맞는 꼬맹이들이랑 노는 척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도망쳤다.)


항상 일감을 주고 돈도 따박따박 지급해주던 길드 사장을 잡아가고.

(진짜 억울해서 눈 딱 감고 덤빌까 하다 상대가 너무 강해서 참았다.)


돈도 없는데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병원에 데려가 며칠 동안 온갖 검사를 시키더니,

(다행히 공짜였다.)


이제는 온갖 괴상망측한 아이템을 쓰면서 억지로 입을 열려고 한다.


안되겠다. 내일은 진짜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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틋녀는 불쌍한 아이였다.


가족도, 친적도, 친구도 없는 무연고자.


여기까지만 봤다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은 꽤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한 사회 보장 제도 또한 마련되어 있었고.


하지만 틋녀는 조금 사정이 달랐다. 조사를 해봐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보통 사망한 부모나 자란 고아원 정도는 나오기 마련인데.


거기다 그녀는 말을 못했다. 단순히 말을 못하는 것이라면 눈에 띄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위선적이지만, 어쩌겠는가.


아무튼, 그녀는 입으로 빔을 쐈다. 특이하지만 강력한 능력이었다.


문제는 그녀가 빔을 쏠 때마다 목을 잡고 켁켁 거린다는 점이었다.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약을 쓰듯이.


마물한테 공격 당했을 때도 비명은 커녕 신음 하나 내지 않는 소녀였기에 확실히 이상했다.


그래서 일단 찜질방, PC방 따위를 전전하며 생활하던 그녀를 데려다 길드가 운영하는 고아원에 맡겼다. 시설도 좋았고 친구들도 많았기에 금방 적응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다 도망쳤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다. 벙어리인 그녀가 겪었을 고통을 먼저 헤아렸어야 했는데.


고아원을 뛰쳐나가 찾아간 곳도 열악했다.


무허가 길드. 불법은 아니지만 사고가 벌어져도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무법지대.


처음에는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가길래 의외로 좋은 곳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조사해보니 인신매매부터 마약 밀수 등 온갖 불법적인 일에 손대고 있는 곳이었다. 틋녀 본인은 모르는 눈치였지만 받는 돈도 일한 것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부족했다.


애초에 일감을 주던 것도 틋녀의 능력을 알아본 뒤 비싸게 팔아먹을 계획이었기에 바로 체포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틋녀가 자기랑 친한 사람을 잡아간다고 생각해서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그 후에는 병원에서 검사 몇 가지 했는데, 이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저번처럼 고아원에 데려간다고 생각한 것인지 요리조리 도망치는데 어찌나 잘 숨어 다니는지.


그렇게 나온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녀의 목에는 사람의 것이 아닌 기관이 있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적 없는 아주 강력한 마물의 것이었다. 거기다 말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 않는 것이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떤 상상하기 힘든 일을 겪었기에 그 작은 아이가 힘들다는 말은 커녕 최소한의 괴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신음 하나 흘리지 않게 된 걸까.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녀에게 목소리를 되찾아 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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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해 속에서 틋녀와 시아의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가 이어지는 그런 소설이 보고 싶구나


생각보다 길어져서 창작으로 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