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위에서 눈을 뜬 나는 화장실로 걸어갔다.

챱챱챱챱.

이게 무슨 소리지?
멈췄네.
다시 발을 내디뎠다.

챱챱챱챱.

발바닥이 말랑해졌을 뿐인데.
이런 소리가 나다니.
좀 귀여운데?

챱챱챱챱.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거울을 바라봤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볼을 깨물고 싶다.

"왜 손님들이 날 보고 부모님 미소를 지었는지 알 거 같네."

샤워를 할까 고민하다.
위험한 취향에 눈을 뜨게 될 거 같아서 생각했다.


샤워를 하고 드라이까지 한 몸으로 만들어줘.

눈을 감고 뜨자.
부스스했던 머리카락이 윤기가 났다.
건조했던 몸은 뽀송뽀송하게 바뀌었다.

입은 옷을 세탁하고 건조까지 해줘.

내가 늘 쓰던 섬유 유연제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부드러운 감촉이 전신을 감쌌다.

시간이 들지만 꼭 해야 하는 샤워랑 세탁을.
깜빡 한 번으로 해치울 수 있다는 건 편안함 그 자체다.

"벌써 7시 30분이구나, 나갈 준비해야..."

시간당 만 원?
생각만 하면 복권 번호 알 수 있는데?

다음 회차 복권 번호.
01, 07, 15, 22, 39, 41.

그냥 돈을 만들어 내면 되지 않냐고?
복권 당첨되는 게 꿈이었거든.

일단 점장님께 문자 날리자.

[나: 개인 사정 때문에 일 그만둬야 할 거 같아요.]

[점장님 : 갑자기 그러면 곤란해, 오늘은 나와.]

알바를 3번 해봤지만.
일 그만두는 게 가장 스트레스란 말이지.
당장 그만두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남자였던 인생을 없애 버리고 싶진 않으니까.
나 대신 일할 사람을 찾아주자.

[나 : 공고 대신 올려드릴 테니 20분 안에 경험자라고 연락 오면 바로 채용하세요.]

알바 공고를 올린다, 편의점 알바를 찾던 경험자가 공고를 본 순간 일하고 싶어진다.

3분 뒤 문자가 날아왔다.

[점장님 : 일 그만두어도 될 거 같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퇴직금에 30만 원 더 줄 테니까 힘내라, 지금까지 열심히 해줘서 고마웠다, 나중에 술이나 한잔하자.]

로또 당첨 예정인 내게 보너스 30만 원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내 별 볼일 없던 인생이 조금은 인정받는 거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편의점 근처 쓰레기들을 청소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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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다니면서 담배 피우는 사람을 찾아줘.

바닥에 선이 생겨났다.
따라가니 길빵을 하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출근을 하다가 간접흡연을 당하면서 늘 생각해왔다.
길빵하는 사람들에게 물을 뿌리고 싶다고.

하지만 나는 신이다.
단순히 물을 뿌리는 건 참교육이 되지 못한다.

물총을 소환해 줘.
탄창은 몸에 묻으면, 1시간 뒤에 자기만 맡을 수 있는 똥 냄새가 1시간 동안 나는 액체로 채워줘.

말랑한 손바닥에 작은 물총이 쥐어졌다.

싸우는 상황 자체가 싫어서.
방아쇠를 조심스럽게 당기며 노인의 등짝에 물을 찍찍 뿌렸다.

다행히 들키진 않았는지.
노인이 제 갈 길을 갔다.

그 뒤 10명에게 소심한 복수를 했다.
벌을 줬으니 상을 줄 차례다.

남에게 최대한 피해를 안 주면서 담배 피우는 사람을 찾아줘.

바닥에 선을 따라갔다.
건물 옥상까지 이어져있었다.

정장 차림의 한 여자가.
담배를 손에 든 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불이 꺼지자.
꽁초를 휴대용 재떨이에 넣고.
한 개비를 더 꺼내 불을 붙인 뒤 손에 들고 만 있는 여자.

슬퍼 보인다.

저 여자의 상황을 분석해 줘.

[이름은 최현섭, 약혼자가 자동차 사고를 당해 1년 동안 식물인간 상태.]

[손에 든 담배는 연인이 피던 거.]

1년이나 기다리고 있다니.
순애단으로서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냥 깜빡하고 도와주는 건 싫다.
나라는 존재를 어필하고 싶으니까.

현서한테 다가갔다.
내 발소리에 뒤돌아 본 여자는.
황급히 담배를 벽에 비벼 불을 끈 뒤, 휴대용 재떨이에 넣었다.

"다가오면 안 돼."

내가 간접흡연 당할까 봐 걱정하는 저 착한 마음씨를 보라.
구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괜찮아요, 돌아가신 저희 아빠가 담배 피우셨거든요."

아버지 팔아먹어서 죄송합니다.

귀농하셔서 농작물 심어두신 밭에 벌레 안 꼬이는 비료 뿌려드릴게요.

내 자연스러운 아빠는 없어 선언에.
말이 없어진 현서.

"제가 건물 옥상에 올라온 건, 하늘에 계신 아버지한테 기도를 드리려고 왔거든요."

현서의 생각을 읽었다.

(유치원 생정도로 보이는데 벌써 철이 들어버렸다니, 나는 살아있는 것만으로 다행이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더 가까워지고 싶었구나."

본인도 힘든 상황에서 처음 보는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시는 건가요?
천사입니까? 천사군요? 신인 제가 선물을 하나 드리죠.

"같이 기도드릴래요?"

"그래."

두 손바닥을 합쳤다.
말랑했다.

현서가 눈을 감았다.

(아이가 슬픔을 이겨내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길.)

나도 눈을 감았다.
나 자신한테 진심으로 기도했다.

천사같이 착한 여성분의 약혼자가 깨어나길.

함께 눈을 떴다.

"아버지랑 이야기 많이 했니?"

"네, 유치원 생활은 즐겁냐고 해서 그렇다고 대답했어요!"

"씩씩하네,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언니는 일하러 가봐야 돼, 나중에 또 만나자."

현서가 내게 등을 보이며 멀어졌다.

"언니!"

뒤돌아본 그녀에게 활짝 웃음꽃을 피우며 외쳤다.

"제 아버지가 말하길 언니한테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거래요!"

현서가 어딘가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랬으면 좋겠다."

모두 이루어져라!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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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기던 현서는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환자분이 깨어나셨어요."

"그게 정말인가요?"

믿을 수가 없었다.
의사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이다.
하지만 간호사가 거짓말을 할리 없다.

"네."

현서의 무릎이 젖어들어갔다.
그녀의 목에서 끄윽 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사무실의 모두가 현서를 쳐다봤다.
약혼자가 사고를 당한 뒤 시체처럼 일만 하던 그녀가 울고 있다.
죽었거나 깨어났거나 둘 중 하나.

"깨어났대?"

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잘 됐다!"

사장이 다가와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현서 씨 병가로 처리할 테니까 어서 가봐요."

현서가 벌떡 일어난 뒤 90도 인사를 3번 하고서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엘리베이터조차 기다릴 수 없어서 비상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마음이 급했던 현서가 크게 넘어지며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

30초 전으로 되돌린다.
그녀가 오늘은 넘어지지 않게 한다.

현서가 발을 동동거리면서 택시를 기다렸다.

큰 길가를 지나던 택시 기사분이 저 골목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현서는 택시비로 5만 원 지폐를 내고 거스름돈도 받지 않은 채 병원 안으로 달려갔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절대 뛰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뛸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게 1년이다, 1년이나 기다려 왔다.

1분 1초라도 빨리 보고 싶은 게 당연하다.

현서가 숨을 헉 헉 대면서도.
달리고 달려 병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현서와 그녀의 약혼자가 서로를 쳐다봤다.

먼저 입을 연건 약혼자였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현서가 약혼자의 손을 붙잡고 침상에 엎드려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약혼자는 그런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현서가 생각했다.

(천국이 있고, 거기에 계신 그 아이의 아버지가 내게 선물을 주었구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니, 전혀 아쉽지 않네요.
남에게 피해 갈까 봐, 약혼자가 피던 담배 냄새를 옥상에서 맡던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니까요.

이대로 보내기엔 아쉬우니까.
한 가지 더 선물을 드릴게요.

연인을 기다리기 위해 한 간접흡연 때문에.
니코틴과 타르로 더럽혀진 폐를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행복해지네."

세드엔딩이나, 배드 엔딩 소설을 싫어해서 그런가 보다.

"음... 뭘 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았는데, 이제 알겠다."

신으로서 하고 싶은 일을 두 가지 찾았다.

행복한 사람은 내버려둔다.
불행한 사람은 도와준다.
나쁜 사람은 벌을 준다.

선과 악이 항상 뚜렷하지는 않겠지만.
뭐 어쩌라는 건가.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다.

두 번째 하고 싶은 일은.
신으로서 인 반하는 거다.

정체를 밝히는 게 아니다.

나가는 사람은 내가 신인걸 바로 까먹는 인방을 할 거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나데 나데는 받고 싶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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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방을 시작했다.

제목 : 농신의 야외 방송

어그로가 끌렸는지 한 명 들어왔다.

- 농신이 뭐임?

"어린 신이라는 뜻이에요."

-본인을 신이라고 자칭하다니 그러다 벼락 맞음;

"지금 계신 곳에 창문이 있나요?"

-있네

시청자가 보고 있는 곳에 벼락을 떨어트린다.

멀리서 벼락 소리가 들려왔다.
근처에 살고 있구나.

-????????

"안녕하세요, 신이에요."

-ㄹㅇ?

아직도 못 믿네.
하긴 나라도 못 믿겠다.

저 사람의 오른손 손가락을 6개로 늘린다.

"본인 오른손 보세요."

채팅이 없다.

"다시 줄여드렸어요."

-ㅁㅊ; 님 로또 1등 번호 좀

"그런 거 요구하시면 현실 밴 1시간 먹일 거예요."

1억 년 버튼 같은 거다.

-죄송합니다, 오늘 하실 건 무엇이신가요 신 님

"공유 킥보드를 제대로 주차하지 않는 사람들을 괴롭힐 거예요."

-진짜요? 저도 그거 때문에 진짜 짜증 났었는데 기대가 되는 부분입니다

자 첫 방송을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