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인 생각만은 아니었다. 여자가 되고 나서는 하루에 두 세번씩. 근원을 따지자면 훨씬 그 전에서부터 들었던 생각.


아마도 유년 시절이었을 테다. 어머니께 혼나고 나서 책상에 머리를 몇 차례 박았다. 그리고 가출을 생각했다. 그 아이에게 집이란 삶의 전부였으니. 그 어린 시절부터 나는 자살을 꿈꿔온 셈이다.


이룰 수 없는 소망을 품는 일은 아름다운 걸까. 미련한 걸까. 


물론 실현 가능성은 다른 불가능에 가까운 소망들 - 한 순간의 억만장자라거나, 이런저런 초능력이라거나. 그런 것보다는 훨씬 높다. 당장 적당한 높이를 찾아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거나. 야밤에 가로등 비추지 않는 도로에 두 손 모아 조용히 누워있으면 되겠지.


그러니 그게 소망이라면 당장 가서 하라거나. 혹은 그것조차 생각지 못하는 지능을 조롱하거나.


그런 새끼들은 아가리를 찢어주고만 싶다. 씨발것들. 생명에 지장 없도록. 하지만 생활은 심히 불편하도록. 한 손도, 구성하고 있는 뼈의 개수를 두 배쯤으로 늘리도록 으스러뜨려도 좋겠다.


살짝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바라봤다. 해가 기울고 있다. 푸른 하늘은 없다. 


저녁과 밤 그 사이의 보랏빛 하늘을 좋아했다. 낙조를 좋아했다. 여명은 본 적이 드물다. 


지금 하늘은 누르끼리하다. 잘 싼 똥 같은 색깔. 지저분한 금빛. 좆같다.


".....너, 방금....."


느닷없는 소리에 고개를 그대로 돌렸다. 원래 같은 눈높이였는데. 올려다 봐야한다는 게 기분이 안좋다. 


뭐라고 웅얼거리는 지 모르지만, 대답은 해야겠지.


"왜."


"아니, 방금. 뭐.... 하고 싶다고?"


"갑자기 지ㄹ..... 아."


짜증스레 뒷머리를 긁었다. 속으로만 한다는 게 밖으로 새어나왔나보다. 씨발, 진짜.


다들 소원 하나씩은 품고 다니잖아. 복권 당첨이라던지, '올해는 결혼' 막 괴상망측한 거. 근데 왜 내 소망은 허용받지 못하는 건데.


"지, 집에 갈까? 택시 불러줄까? 그, 자, 잠시만 기다려봐!"


자살이라는 말에 벌벌 떠는 건 진부하고 고전적이라서 오히려 신기했다. 고전적이라는 표현도 깊게 생각해보면 어폐가 있다. 중세 서구에서는 건장한 남자가 길가에서 울부짖는 게 보편적인 광경이랬다. 요새는 다 묻고 넘기는 것 같다. 웃음과 즐거움으로. 모두 그래. 다들 좋은 것만 사진찍어 올리고 우울도 패션에서만 허용되지.


자살을 소망하는 청년, 아니, 이젠 소녀. 

자신을 규정하는데 혼동을 느끼는 여자.


잠깐 눈을 감았다. 


모르겠다. 이 내 삶조차 누군가의 유희가 아닐까. 건장한 20대 청년이 여리여리한 미소녀가 되어버린 것도. 그런 관찰자들은 여리고 어여쁘게 생긴 소녀에 '정신병에 준하는 지랄발광과 자해흉터나 낙태마크가 가득한'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를 바라지 않을까. 좆까라 그래. 그 전에 죽을 생각이다. 


"태, 택시 불렀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취소 해."


"어, 어? 뭐?"


한 번에 못 알아듣는 게 짜증난다. 앞서 그나마 좋게 봐주려했던 호의마저도 싸그리 잡아 욕하고 싶어져.


"취소하라고."


"그, 그렇지만."


"씨발, 돈 때문에 그래? 내가 내 줄게. 취소 하라면 취소 하라고. 이 병신같은 새끼야."


머뭇거리는 꼴이 같잖다. 핸드폰을 들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역겹다. 나는 일부러 지나서 걸었다. 


"자, 잠깐만. 어디 가려고! 같이 가!"


"그냥 걷다가 들어가게, 병신아."


길을 걷다가 아는 척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다. 


원치도 않은 친절의 결과로 택시 타는 것도 싫다. 


죽고 싶다. 


"취, 취소했으니까. 혼자 가지 말고 같이 가!"


죽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모두가 모르게. 편안하고 고요한 방식으로 죽고 싶다.


생의 마지막 소원이라면 그 정도 호사는 바랄 수 있지 않을까. 지옥? 별반 다를 것 없겠는데요. 그걸 강조하려면 이 좆같은 세상을 바꿔주시기나 하시던가.


"내 말 안들려? 같이ㅡ"


"손대지마! 씨발새끼야."


".....미안."


열 오르면 내친 김에 대거리 한 판 할랬더만, 바로 꼬리내리는 게 싫다. 사내새끼면서. 꼬추 떨어진 새끼보다 못하고. 


"......씨발."


욕은 새삼스레 는 게 아니었다. 원래도 입은 더러운 편이었다. 


괜히 바닥에 있던 돌맹이를 걷어찼다. 힘 없이 멀리 가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