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유딱지 치는 틋은영 선생님의 금쪽이 갱생 프로젝트


유희왕.


세계적인 카드게임의 이름이자, 해당 카드게임을 소재로 한 카드배틀물 미디어믹스의 이름이기도 하다.


 매우 긴 역사를 자랑하는 이 미디어믹스 프랜차이즈는 애니메이션과 코믹스, 소설 등의 매체를 통해 오랜 시간동안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당장 애니메이션만 하더라도 듀얼몬스터즈부터 시작해 GX, 5D's 등등 제각기 매력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들을 내세워 다양한 팬층을 확립하는데 성공했고, 이렇게 생긴 팬들 중 대부분은 유희왕의 근간인 카드게임의 매력에 이끌려 유입되기도 했다.


 물론 나 또한 유희왕을 좋아하는 한 명의 팬이자 카드게임의 유저였다.


 게임을 잘하는건 아니었지만, 게임을 즐기는 수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크고 작은 인연을 쌓아왔었지.


 어린 시절부터 즐겨왔던 조그마한 취미는 어느샌가 내 인생을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이 되어있었다.


 그 기둥을 향해 고장난 자율주행 트럭이 앰부쉬를 걸어오기 전까진 말이다.

 그 날 짬내서 겨우 나간 대회도 광탈해가지고 서러웠는데 인생 진짜...


 그래도 선천적인 피지컬 덕분에 치여 죽진 않았다.

 산시타같은 트럭 따윈 힘으로 밀어붙여 멈춰세웠지만 힘을 너무 쓰다못해 목숨까지 하얗게 불태우는 바람에 그대로 골로 가버렸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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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를 좀 해보자.

지금 떠오른 기억은 분명히 ‘나'의 기억이다.


 ‘나’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 이 상황은 ‘죽은 줄 알았는데 눈 떠보니 여자아이의 몸으로 변해버렸더라~’ 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볼 수만은 없는 문제다.

 지금의 나, ‘후카미야 호마레'로서의 자아정체성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 듀얼킹 양반처럼 이중인격이 된 것은 아니다. 그 양반은 하나의 몸에 서로 다른 두 개의 영혼이 들어있던 케이스고, 내 경우엔…


 굳이 설명하자면 ‘나'는 심층의식에 잠들어있던 전생의 기억이고,

‘후카미야 호마레'의 정신이 파괴된 여파로 깨어나게 되었으며,

자아의 연속성은 끊어지지 않았지만 그 중심이 ‘후카미야 호마레’ 에서 ‘나'로 바뀌어버린 느낌이다.


 전생의 기억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지만 어째서 이런 거대한 기억이 내 심층의식 속에 잠들어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전생을 떠올림으로써 그 형태가 변질되어버린 심상은…

 두 번 다신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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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계는 유희왕 애니메이션 시리즈 중 하나인 ‘유희왕 Daybreak’라는 작품에 기반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정황을 따져봤을 때, 해당 작품과 겹치는 요소가 가장 많아서 그렇기도 했지만 이 추측에 쐐기를 박는 것은 ‘아사쿠라 아카네’의 존재 그 자체였다.


 주인공이 여캐인 세번째 작품이자, 학원물의 탈을 쓴 미스테리 호러물이었던 Daybreak의 얼굴마담.


 첫 등장부터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악역단체의 간부라는 설정에 걸맞게 치밀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시즌1 막바지에 자신이 따르던 조직이 괴멸해버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리는 캐릭터.


 혼자가 되어버린 이후로도 주인공 일행을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사사건건 방해를 걸어오지만 묘하게 허당스러운 면모는 그 아이를 마냥 미워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아사쿠라의 첫 등장 장면에서 그 아이에게 당하는 역할로 나온 엑스트라가 바로 나, 후카미야 호마레였던 모양.


 그래. 엑스트라다.

 화면 구석에서 어두운 실루엣 형태로 묘사되는 그거.


 나중가선 그런게 있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그런 역할 말이다.


 후카미야 호마레가 애니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걸 생각해보면 정황상 원작의 아사쿠라는 식물인간이 된 호마레를 아카데미 외부로 빼돌려 증거를 인멸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누군가 눈치채서 119에 신고하기 전까지 보건실에 방치되어 있었을지도 모르지.

 지금 보건실 불이 꺼진 상태인걸 보면 아무래도 이쪽일 확률이 높아보이는데.


 음. 이거 좀 소름돋네.


 뭐, 그건 일단 제쳐두고 앞으로의 방침을 고민해봐야겠지.


“그럼 이제 어쩌면 좋을ㄲ... 어우 목소리 위화감 쩔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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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의 뒤를 캐는 추적자가 존재하며, 그는 아카데미에 숨어있다.’



 학원 데이터베이스 내의 학생명부의 조작까지 끝마친 아사쿠라는 서버실에서 나와 곧장 보건실로 향했다.


 조직을 추적하는 자를 찾아 처리해 버리라는 리더의 명령을 위해서라지만 처음으로 누군가를 해쳤다는 죄책감이 그녀를 점점 옮아매고 있었다.


 아무런 죄 없는, 그저 자신에게 속았을 뿐인 무고한 소녀.


 아카데미 정문에서 서성이던 자신에게 선뜻 다가와서는 예비 입학생 취급하며 아카데미 내부를 견학시켜주고는 응원과 격려의 말까지 해줬다.


그랬던 소녀를 속이고 이용한 아사쿠라는 여러모로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조용하지만 초조한 발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지르던 아사쿠라.

 문득, 복도의 게시판에 붙어있는 벽보 하나가 눈에 띄였다.


 입학 시험 관람에 대한 홍보물.

 현재 아카데미에서는 한창 입학 원서를 받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아사쿠라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그냥 입학 원서를 제출하고, 시험을 치러서 당당히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방법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버린 행동은 돌이킬 수 없다.

 그것을 잘 알고있는 아사쿠라는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나름의 책임을 지기 위해 불 꺼진 보건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잠입을 위한 밑작업은 전부 끝내놓은 상황. 남은 것은 후카미야 호마레를 숨겨두는 것.

 후카미야의 기숙사나 병원 같은 곳은 들킬 위험성이 존재하니 당분간은 아사쿠라 자신이 거주중인 간부용 은신처에 숨겨두고 돌봐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후카미야가 잠들어있을 침대에 다가간 아사쿠라는 이불이 가지런히 개켜져 있는 침대들을 보았다.


침대.

그 자리엔 침대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에?”


 예상치 못한 상황에 크게 당황하여 저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낸 아사쿠라 아카네.


 철컥


 상황파악을 할 겨를도 없이 그녀의 뒤에서 들려온 것은 쇠로 된 잠금쇠가 걸리는 소리.


 그리고…


 “좋은 아침이야~ 예비 후배님.”


 지금 들려서는 안 될, 들릴 리가 없어야만 할 목소리가 해맑게 인사를 건네왔다.


 “우리 잠시 대화 좀 할까?”


 아사쿠라는 떨려오는 몸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 자리에 있던 것은 문을 지키고 서 있는 한 소녀의 인영.


 서서히 창 밖에서 드리우는 여명이 어두운 보건실을 밝게 비추었고, 어둠에 가려진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냈다.


“Solid vision system. Ready to utilize." |


 그 나이 또래의 소녀들에 비해 상당히 큰 키, 짧은 길이의 밤색 머리카락, 이채가 서려있는 잿빛 눈동자.

 팔에 착용한 아카데미 학생용 듀얼디스크는 방금 막 기동하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게임이라도 한 판 하면서 말이야. 마침 어제 하다 말았던게 하나 있었지?”


 분명 마인드 크러시로 인해 뇌사상태에 빠졌을 터인 후카미야 호마레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멀쩡히 서 있었다.


 평범한 민간인이 자력으로 마인드 크러시를 버텨냈다는, 상식을 한참 벗어난 이 상황 속에서...


 “결판도 못냈는데 그냥 넘어가기는 좀 아깝잖아? 디스크 꺼내. 붙어보자고.”


 공포가 턱 끝까지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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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크러시 전



마인드크러시 후



솔직히 전생 기억만 못했다 뿐이지 애초부터 틋녀였음 수구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