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 다음은 최근 제일 화제가 되는 인물을 인터뷰하는 시간인데요, 이 분 요즘 너무 유명하죠. 바로 수도 탈환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낸 명장군이자, 최근 인류 연합 정부 최고 위원에 위촉되신 월슨 최고위원님을 모셨습니다! 다들 박수로 맞이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맥 월슨이라고 합니다."

 - 저도 이렇게 인류의 영웅이신 위원님을 볼 수 있어 개인적으로 매우 영광인데오! 위원님. 오늘의 컨디션은 괜찮으신지요?"

 - 물론입니다. 오히려 인류를 위해 수행한 작전일 뿐인데 이런 말씀을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 부담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는 위원님이 받아야 할 당연한 대우일 뿐이니까요! 그럼 인터뷰 시작해보겠습니다. 먼저 첫번째 질문인데요, 아 이거 첫 질문부터 조금 강한데, 혹시 의원님께선 그동안 만났던 기사분들 중에 기억에 남는 분이 있는지 많은 분이 제일 많이 궁금해 하는군요!

 -  음, 확실히 궁금해 하실만한 사항이긴 하군요. 저 역시도 많은 기사를 휘하에 두고 지휘를 한 경험이 있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라면 정이수 기사가 아닐까 합니다.

 - 정이수 기사님 말씀이신가요?

 - 그렇습니다. 수도 탈환을 성공하기 위한 가장 큰 공을 세운 기사기에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사람일겁니다.

 - 오, 그렇게 큰 공을 세운 기사라니 저도 궁금해지는데요?

 - 하지만 그는 그렇게 큰 전적을 올린 전투에서 안타깝게도 전사하고 말았죠. 유망한 친구였는데, 지금 다시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군요.

 - 아, 그런 일이.......

 - 이런, 첫 질문부터 너무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군요. 괜찮습니다. 이제는 제법 오래 지난 일이니까요. 그는 용맹하고 멋진 기사였고, 괴수를 사살함으로써 인류에게 봉사한다는 마음을 가진 친구였기에, 자신의 이야기로 분위기가 침울해지는 걸 원치 않을-


 탕!

 총성과 함께 아침 시사교양코너가 방송중인 텔레비전에 구멍이 생기고 전원이 꺼진다.

 이내 방문이 닫혔고,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사진이 바닥에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정이수라는 이름을 포함 한, 사진 속 인물들의 이름이 수기로 기입되어 있는 채로.



-


 "본부, 응답바람, 응답바람. 지금 전황이 좋지 않아 후속병력 투입 시점을 당겨야 할 것 같다. 회신바람."


 또각, 또각.

 나직히 들려오는 구두의 굽소리 비슷한 발소리는 심장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부서진 건물 속 복도의 서늘함이 온 몸을 덮는 듯 해, 마치 몸이 얼어붙어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같이 투입된 팀원들의 단말마마저 끊긴다.

 통신기로 급히 본부에 지원 요청을 넣지만,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건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지직거리는 잡음 뿐이었다.

 다시 한 번 본부로 작전 계획 변경 요청을 했지만, 내 공허한 외침에 응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왜, 네 친구들을 향한 무전이 안 되니?"


 대신 등 뒤에서 들려 온 여인의 목소리가 심장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여왕.

 괴수들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지금까지 겨우 존재만이 확인 된 그것이 내 뒤에 어느새 다가온 것이었다.


 "귀여운 짓을 하네."


 마치 날 유혹이라도 하는 것 처럼, 아까보다 한뜻 고혹적으로 변한 목소리로 웃으며 말해온다.


 미친 괴수 새끼가.

 여왕에게 속으로 욕지기를 뱉고, 은폐장치를 가동해 몸을 숨기며 그 놈의 앞에서 벗어난다.

 허공에서 총을 들어 그 놈을 조준한다.


 찰칵.

 총구 끝에서 섬광이 뿜어지고, 안에 들어있던 탄환은 이능의 힘을 받아 반응할 수 없는 속도로 가속해 발사된다.


 "자기는 좀 심장 떨리게 하네. 재밌어라."


 하지만 총알은 여왕에게 닿지 못한 채 벽에 구멍을 낼 뿐.

 어디선가 날아 온 가시가 내 양 어깨를 관통해, 십자가에 예수를 매단 못마냥 내 몸을 벽에 매단다.


 "커헉-!"

 "오래 전 부터 널 찾아다녔어. 너라면 날 재밌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야."

 "무, 무슨......"

 "글쎄. 뭔진 나도 잘 모르겠네~."


 여왕의 알 수 없는 말이 들려온다.

 새하얗지만 괴수처럼 울긋불긋한, 결코 인간의 것이라 할 수 없는 피부가 꿈틀댄다.

 처음으로 마주하는 그 얼굴엔 어딘지 모를 일그러짐이, 나를 향해 미소를 보내는 것 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그럼, 잘 지내."


 하지만 여왕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잠시 뿐이다.

 내게 뻗어지는 그 놈의 가시맺힌 손이 가슴을 헤집고, 버틸 수 없게 바닥에 내 피를 흩뿌린 다음 쓰레기를 버리듯 바닥에 내던진다.

 멀어져가는 그녀의 다리를 향해 손을 뻗으려 하지만, 부들부들 떨릴뿐은 손은 여왕에게 닿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툭 떨어졌다.


 수도 탈환을 위한 전초기지는 완성했을까.

 아직 죽여야 할 놈들이 저렇게 많은데.

 팀원들의 시신은 누가 수습하지.

 

 생각의 끈 마저 천천히 끊어져 나간다.

 그리고 그것이, 평생을 괴수를 죽이기 위해 살아 온 기사 정이수의 마지막이었다.


 인간 정이수의 끝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정이수는 다시 의식을 희미하게나마 차렸다는 것이었다.


 금방 다시 잠에 빠져들어갔지만.


 * 


 "정말 큰일 날 뻔 했습니다......만."


 희미한 정신 사이, 누군가의 말끝을 흐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맡아 본 적 자체가 몇 번 없는, 깨끗한 병원의 약냄새가 살짝 맡아졌다.

 다만 일말의 힘 조차 줄 수 없어, 손 끝조차 까딱일 수 없었다.


 입과 코를 막은 마스크 같은 이건 뭘까.

 

 분명 여왕을 만나 죽었어야 했는데, 나 지금 살아있는 걸까.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살아있는 것 자체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 때 입은 부상은, 아무리 발달한 현대의 워프 기술과 의료 기술로도 결코 살려낼 수 없는 중상임을 알고 있어서 그렇겠지.

 허면 난 지금 어떻게 살아있단 말인가.


 "왜, 왜 그러시는 거죠?"

 "아닙니다. 그리고 아셔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처음 듣는 여자의 목소리에 몸이 반응한다.

 꿈틀.

 손에 드디어 조금 힘이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째선진 모르지만, 그냥 그렇다.


 다만 답답한 건, 지금 내 앞에서 대화하는 사람이 누군지 몰라 그게 너무 답답했다.

 무언가 걱정하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는 내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그랬다.

 눈이라도 제대로 뜰 수 있으면 여기가 어딘지, 그리고 내 앞에서 대화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을텐데.


 "환자분 성함이 정이진이라고 했나요?"

 "네."

 "아셔야 될 사실이 있는데......"


 정이진이라 말하는 걸 보니 내 이야긴 아닌 걸까.

 하지만 무언가 풍기는, 약간 다른 냄새가 맡아지는 걸 기점으로 조금씩 회복가던 정신이 다시 멀어져간다.

  팔에 무언가 날카로운게 꽂혀 몸이 살짝 움찔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반응은 오직 그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줄을 놓고 잠에 빠져들어갔다.


 이후로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내가 알 수 있는 건, 날이 어두워졌다는 것과 내가 지금 병원에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입과 코엔 호흡용 마스크가 씌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나름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매어져 있는 듯 했지만, 그래도 기사의 힘에는 비하지 못할 터.

 생각보다 몸이 약해졌는지, 마스크를 떼는 손에는 평소보다 힘이 더 들어간다.

 그래도 약효가 약해져, 몸에 기운이 아까 깨어났을 때 보단 제법 돌아와있어 다행이었다.


 헌데 여긴 어딘지 궁금했다.

 병원인 걸 몰라서 가지는 의문이 아니다.

 기사들의 치료가 필요하면 오는 군병원이 아니어서 가진 의문이었다.

 거기에 몸도 어딘지 모르게 평소와 달라진 듯한 느낌이었고.


 설명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내게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이는 아무도 없다.

 알 수 있는 사실은, 지금 걸친 옷에 적힌 문자로 보아 현재 내 위치가 유년시절을 보낸 국가에 위치한 병원이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연합이라는 통합 인류 제국에 소속되어 사라져버린......


 숨을 쉬는 느낌부터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주변에 거울이 없나 잠시 주위를 두리번 거렸지만, 어둠속에 눈이 익지 않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아침이 될 때 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쓰러진 이후로 시간이 제법 지났다는 것이었다.

 벽 한 켠에 걸린 디지털 시계에 띄워진 날짜는 내가 수도 탈환전의 선봉대로써 먼저 투입되어 죽은 날짜로부터 최소 10년.

 정확하겐 그 이상으로 지났음을 보이고 있어서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간다.

 창 아래에 보이는 야경은, 세상이 마치 평화로워 보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오고 있었다.

 설마 괴수와의 전쟁이 끝난 걸까.


 내일 아침이 되면 대체 내게 무슨일이 생긴건지, 그리고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게 될 터.

 기다림이 필요하다면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행동이기에 다시 자리로 돌아오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유난히도 긴 머리칼이 어깨위로 내려오며,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놀라 손을 머리칼로 가져가니, 어딘지 모르게 가늘고 작은 손이 눈에 들어왔다.

 무기라곤 한 번도 쥐어본 적 없을 고운 손이.


 '이게 뭐지?'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잠시 머릿속을 뒤져, 죽기 직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여왕을 만났던 그 순간을.


 허나 여왕은 내게 특별히 무슨 짓을 한 적이 없을 것이다.

 그저 자기 부하들을 끝없이 죽여대던 내게 부하들의 원한을 갚아줬을 뿐.

 내게 별 다른 짓을 할 이유가 도저히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건 지금 내 몸에는 결코 그냥 넘길 수 없을, 상당한 변화가 생긴 게 분명하단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아까 의식이 희미했을 때 무슨 이름을 들었지?

 정이진이라 했었나?

 ......설마 난 지금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그런 황당무계한 일이 내게 터진 건가.


 멍하니 손을 바라보던 고개를 들어, 화장실이 있나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작은 미닫이 문을 찾으며, 스위치에 손을 가져가 화장실 불을 켜니 세면대 위에 달린 큰 거울이 눈에 들어온다.


 "어......?"


 그리고 거울을 보고선 탄식을 내뱉을는다.

 거울 속에 있는 건 오랜 훈련과 전투로 단련된 기사 정이진이 아닌, 싸움이라곤 일자도 모를 새햐얘보이는 웬 여자가 있었으니까.


 '힘이.......'


 허나 충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혹시나 싶어 몸 안에 내재된 에고를 끌어내보지만, 내 안에 내재된 에고는 미약하기 그지 없었다.

 기사의 능력은 에고에 따라 결정되는 것.

 그리고 평생을 기사로 살아 온 내게 있어, 내가 단련해 갈고닦은 에고를 대부분 상실했단 사실은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덕분에 밤 내내 잠을 이룰 수 없어, 멍하니 앉아 밤을 새우던 와중이었다.


 "뭐야 정이진 너, 일어났네?"


 날 정이진이라 부르는 남자가 어딜 갔었는지, 술냄새를 살짝 풍기며 병실 문을 열었을때도 무어라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힘을 잃었다는 사실에, 머릿 속 사고 회로가 정지했기 때문이었다.


 "정이진?"

 "......."


 때문에 한참을 대답이 없으니, 녀석이 다시 한 번 내게 물어온다.

 나를 정이수가 아닌 정이진이라 부르며.

 

 하지만 아직 힘을 잃은 충격에서 회복이 되지 않아서일까.

 조용히 있고 싶은데 머릿속을 울리는 저 목소리 때문에 순간적으로 감정이 올라와서일까.


 "뭐야 너, 왜 말이 없어?"

 "넌 누구냐."


 무심결에 한 대답엔 짜증이 가득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일까.

 남자의 얼굴에선 잠시 당혹스러움이 스쳐지나간다.


 "누구냐고 물었다만."


 물론 당황한 놈의 얼굴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