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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편.



마구잡이로 뱃살과 볼살을 꼬집어진 뒤.


다음부터 어디론가 갈 일이 생기면 미리 말하고 가기로 약속을 한 후에야, 시아의 분노를 겨우 잠재울 수 있었다.


하늘나라를 걸고 새끼손가락 걸고 꼭꼭.


도장도 찍고, 복사까지 했다.


“자, 다음은⋯ 이 옷이네.”


그렇게 극적으로 화해한 우리들은, 시아가 사온 옷들을 확인하고자 하나씩 꺼내 입어보는 중이었다.


옷은 또 엄청 많이 사놔서 그런지, 하나 하나 꺼내볼때마다 있는 힘껏 들어올려야 했다.


너무 무거워.


“어라.”

“⋯”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엄청 큰 문제가.


“왜 사이즈가 하나같이 이렇게 다 큰 거야?”

“하나같은거면 작아야 할 텐데⋯ 아, 미안.”

“⋯”

“⋯진짜 미안⋯.”


옷이 다, 커도 너무 컸다.


시아가 내가 입고 있는, 그러니까 완전 커서 소매가 팔랑거리는 옷의 사이즈대로 주문을 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시아가 사 온 옷들 전부 입을 수가 없다는 뜻.


“입고 있었던 옷은 세탁 중이고, 새로 사온 옷들은 너무 크고⋯ 어쩔 수 없이 그 옷 그대로 생활 할 수 밖에 없겠는걸.”


시아가 정말 아쉽다는 투로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한 쪽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는 건 숨길 생각이 없나보다.


“시아.”

“응.”

“솔직히 노렸지.”

“어머, 벌써 점심먹을 시간이네. 잠깐만 기다려, 빨리 밥 차려줄테니까.”

“어, 어. 어디가! 대답은 해 주고 가야지!”


시아는 그대로 부엌으로 도망쳐버렸다.


⋯하여간, 말 돌리기는 수준급 이라니깐.


-꼬르륵⋯


배고프긴 하네.







보글보글.


지글지글.


듣기만 해도 맛있는 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진다.


슬그머니 부엌쪽을 들여다보자, 요상한 콧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있는 시아가 보인다.


“흐흥, 흐흥~”

“⋯”


바본가.


백덤블링 하면서 버섯을 퐁당.


마이클 잭슨 마냥 백스텝을 하면서 고기를 퐁당.


턱걸이 자세로 둠칫둠칫하면서 피망을⋯


“뭣.”


아무튼, 혼자 신나서 냄비 안에 재료들을 괴상망측하게 넣고있는 시아를 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빨리 밥먹기에는 글렀네.


배고픈데.


“읏챠.”


결국 나는 심심함을 달릴 요량으로 옆에 떨어져있던 뽁뽁이를 주워들곤, 자리로 다시돌아와 폴싹 앉았다.


풀썩도 아니고 폴싹이라니.


내 몸이 엄청 가볍긴 한가보다.


-뽁, 뽁뽁.


뽈롱 튀어나온 공기방울들을 터트리고, 또 터트렸다.


편안하다.


기분좋다.


안정된다.


사람들이 가끔 뽁뽁이를 잡고 노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나, 둘-”


계속 터트리다보니 재미가 붙어서, 이번엔 뽁뽁이를 바닥에 둔 뒤 온몸으로 공기방울들을 깔아뭉겠다.


-뽀보복, 뽀보복.


한 바퀴 구를 때마다 기분 좋은 멜로디와 함께 심신이 안정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오케스트라를 직접 연주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재밌는 걸까.


“어라.”


그렇게 신나게 터뜨리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뽁뽁이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저걸 터뜨리면 이 재밌는 놀이는 끝이다.


하지만 분명 기분 좋겠지.


수 많은 타일 중에 하나만 다른 타일을 빼내는 것 처럼.


도미노를 넘어뜨리는 것 처럼.


아껴두고 아껴둔 마지막 스테이크 한 조각을 먹는 것 처럼.


아주 만족스러울 것이다.


“하나야~ 밥 다됐어!”

“헉.”


시아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재빨리 일어나 원래 앉아있던 자리로 슈샥 하고 이동했다.


그야, 시아가 이 광경을 보면 십중팔구 엄청 놀려댈 게 분명했으니까.


“풉, 푸흡⋯ 뽁뽁이라니! 하나도 어쩔 수 없는 어린애였구나~ 이거 완전 응애 신이네!”


⋯라고 말이다.


그런 모습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근데, 왜 뽁뽁이가 저기 있지?”


아무래도 너무 빨리 움직이느라 뽁뽁이를 놓쳤나보다.


녀석은 거실 문 앞에서 팔랑거리며 자유낙하를 하고있었다.


“하나야~!”


하지만, 운도 지지리도 없지.


내가 뽁뽁이를 잡아채려고 움직이는 것 보다, 시아가 밥상을 들고 거실 안으로 들어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러니까.


-뽁.


“아.”


시아가, 마지막 남은 공기방울을 밟아 없애버렸다는 뜻이었다.


“⋯”


마지막이었는데.


아껴둔건데.


허무하게 증발해버린 뽁뽁이를 내려다보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눈앞에서 사탕을 빼앗겨버린 어린아이처럼.


“어머.”

“⋯”


순간, 내면에서 작은 불꽃이 솟아올랐다.


마지막 뽁뽁이를 터뜨려놓고 “어머?” 라니.


“하나야, 괜찮아?”


⋯아니, 아니야.


여기서 화를 낸다면 하수다.


신인 만큼, 그에 맞춰 인자함과 자비로움을 내비쳐야 했다.


“괜찮다. 나는 용서하마.”


최대한 인자한 얼굴을 하고, 시아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괜찮다. 진짜 괜찮아.


이정도는 참을 수 있다.


“⋯”


아니.


내가 왜 참아?


“하지만 내 주먹은 용서할까?!”


한 대만 맞자. 









-또잉.


-또잉또잉.


“⋯배고프지 않니? 밥부터 먹자.”

“⋯”


젠장.


신은 죽었다.






⋯⋯


⋯⋯





“하나야, 너무 우울해 하지 마. 그럴 수도 있지.”

“안 울어⋯⋯.”

“그래, 그래.”


그냥 다 슬펐다.


키 차이가 너무 나서 시아의 허벅지밖에 때릴 수 없다는 것도.


허벅지와 주먹 둘 다 말랑해서 귀여운 소리가 났던 것도.


내 진심을 담은 발버둥이, 고작 시아의 이마 꾹 한번에 제압되어버린 것도.


“으으⋯⋯.”

“자, 하나야. 이거 한 입 먹어봐.”


한참 우울해하고 있는데, 상차림까지 다 마친 시아가 고기 한 점을 건네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뭔가를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에잇!”

“⋯헙.”


내가 한껏 우울함을 표출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하던 사이.


시아는 내 볼살을 꾹 눌러 입을 연 뒤.


쏘옥.


고기를 그 안으로 넣어버렸다.


“맛있지?”

“⋯맛있네.”


따뜻하고 기름지고 바삭한 고기가 입 안을 코팅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노릇노릇하고 육즙이 가득 찬 고기가 서핑을 하며 들어온다.


그렇다.


그냥 다 타버린 고기였다.


⋯어째서 샤브샤브인데도 고기가 타버릴 수가 있는 지는, 무시하기로 했다.


“뭣 때문에 그렇게 울 것 같은 얼굴인진 모르겠지만, 고기 먹고 기분 풀어!”

“⋯”


원인제공자가 저런 말을 하는 게 조금 그렇긴했지만.


시아의 말 대로, 고기를 먹으니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후으⋯ 알았어.”


그래.


이 정도로 포기할거였다면, 시작하지도 않았겠지.


끝까지 한번 잘 해보자.


“⋯뇸.”


그나마 덜 타버린 고기를 왕 깨물며, 속으로 결의를 다졌다.


“오오, 잘먹네! 더 먹어! 많이 먹어!”

“⋯”


고기를 본인 그릇으로 가져가면서 그런말을 하면 신뢰성이 없지 않겠니⋯.


“에잇.”

“어라.”


나는 시아가 집어들려고 했던 고기를, 재빨리 낚아채 내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시아 또한, 내가 먹으려고 했던 고기 완자를 빼앗아 제 그릇에 넣었다.


“⋯하나야.”

“시아⋯.”


우리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먹으라며.’

‘아니, 나도 먹긴 먹어야지.’

‘허, 참. 그래?’


잠시 눈빛만으로, 무언의 대화가 오갔다.


그리고.


“그럼 빨리 가져가는 사람이, 더 많이 먹는걸로.”

“콜.”


저녁밥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만. 그 전쟁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나의 처참한 패배로 막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팔이 짧잖아⋯.”


슬픈 이유였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 없어⋯.”


침울한 기분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자, 시아가 등을 토닥여주었다.


“흐아아암-”

“어머, 졸린가보네. 슬슬 잘 시간이긴 하지. 방으로 들어갈까?”

“아니, 하나도 안 졸려.”


배도 부르고 몸도 따듯하고, 기분좋은 흔들림도 있고.


완전 나른하긴 하지만.


졸리지않아.


왜냐하면⋯


“신은 잠을 자지 않으니까!”


그리고!


“꿈도 꾸지 않!!”


⋯⋯


⋯⋯


시아는 제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잘도 자는 작은 신님을 내려다보았다.


“⋯⋯”


뽈롱 튀어 나온 바보털이 동그랗게.


마치 천사링마냥 머리 위에 떠 있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게다가.


도로롱. 도로롱.


시아가 가까이 귀를 대고 있으면, 이렇게 귀엽고도 하찮은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무해한 어린아이일 뿐 이지만⋯


“역시, 신님이라는 걸까.”


불을 끈 상태였지만, 오히려 주변은 대낮마냥 환했다.


자고있는 하나의 뒤에서 뿜어져나오고 있는 엄청난 후광이, 범상치 않은 존재라는 걸 각인시켜주고 있었다.


이게 문제였다.


“⋯하나야. 나는 어떻게 자라고⋯⋯.”


시아는 너무나도 밝은 빛 때문에, 계속해서 밤잠을 설쳐야 했다.


이불로 포옥 덮어도 태양빛마냥 눈부시게 눈을 콕콕 눌러오는 하나의 후광을보며, 시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굿나잇 인사는 해야지⋯.’


꿈나라에 빠져 행복한 웃음을 짓고있는 하나를 보며.


시아가 입을 열었다.


“잘자. 나의 작은 하나님.”





이런거써오라고옥


틋녀성격시아 & 시아성격틋녀도

좋지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