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싶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하얀 천장. 심장박동을 알리는 섬뜩한 기계음. 똑, 똑, 한 방울씩 떨어지는 수액, 그리고 몸을 붕 뜨게 만드는 진통제. 병명조차 없이 단지 김정한이라고만 쓰여있는 명패.


 1년간 눈에 들어온 풍경이라곤 이것 뿐이다. 인원이 조금씩 바뀔 뿐인 삭막한 풍경. 이따금 하얀 천을 덮은 채 교체되는 이들을 바라보다 보면, 나도 곧 저렇게 되리라는 기묘한 확신을 얻곤 한다.


 ······아, 죽을 것 같아.


 진통제와 연결되어있는 버튼을 누르며 자조한다. 죽을 것 같다니. 죽어가고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새 몸이 붕 뜨기 시작한다. 의식은 몽롱해지고 감각은 멀어진다. 영혼이 몸에서 떨어져나가는 듯 한 해방감.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고 이내 다시 육체에 속박되고 마는 것이 일상이다.


 두 달.


 내가 이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병실엔 다양한 사람이 찾아오곤 하지만, 그들 중에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한 명 뿐이다.


 "왔어?"

 "응."


 단조로운 물음과 건조한 대답. 반 년간 이어진 인사는 이제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이혜진이다.


 "앨범을 가져왔어."


 혜진이 부스럭거리며 가방에서 꺼낸 것은 두꺼운 겉표지를 지닌 앨범이다. 태선 고등학교. 그녀와 내가 함께 보냈던 마지막 시간의 기록.

 나는 물끄러미 그 표지를 쓰다듬는다. 양장의 부드러움이 전해져온다. 말라붙은 채 갈라져버린 내 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다.


 넘겨줄래?


 눈으로 묻는다. 그러자 혜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앞표지를 넘긴다. 한 장, 두 장.


 혜진의 손길이 멈춘 건, 우리 반이었다.


 운동회 때 찍은 단체사진 한 장, 그리고 개인사진 두 장. 하나는 반신, 하나는 전신이 드러나있는 사진이다.


 "나네."

 

 멍하니 그 사진을 바라본다. 내가 그 곳에 있다. 기타를 든 채 폼이란 폼은 다 잡고있는 나. 반짝이는 눈으로 카메라를 쳐다보는 그는, 아직 메말라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증명사진은 이 때 마지막으로 찍었었나."

 "응?"

 "그러면 이게 내 영정사진이겠네."

 "······."


 별 생각없이 내뱉은 말. 그러나 혜진은 입을 굳게 다문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이내 그것이 실언이었음을 깨달은 나도 입을 닫는다.


 묵묵히 페이지가 넘어간다. 그리고 다시 어느 지점에서 멈춘다. 혜진의 사진이 있는 페이지다.


 "······너네."

 "응."


 혜진의 사진을 가리킨다. 그러자 혜진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변한게 없다. 여전히 혜진은 아름답다. 오히려 더욱 아름다워져 있다. 화사하게 피어난 꽃처럼.


 삭막한 병실엔 어울리지 않아.


 그러나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꽃향기를 조금이라도 더 맡고 싶었던, 죽어가는 이의 미련이었다.




 앨범을 덮은 헤진은 나를 부축해 침대에서 일으켰다. 그리곤 조심스레 이동식 거치대에 수액과 진통제를 옮기더니 나를 휠체어에 태운다. 이미 몸을 지탱할 근육조차 사라져버린 내 몸은 그녀가 들기에도 그닥 무겁지 않으리라.


 "산책?"

 "응."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혜진이 휠체어를 끌고 나온 곳은 병원의 안뜰이었다.


 6월의 햇살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다. 그저 몸을 나른하게 만들 뿐. 안뜰의 벤치에까지 휠체어를 끌고 온 혜진은 이내 가방에서 공책과 작은 우쿨렐레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선 공책에 적혀있는 악보를 따라 연주를 시작한다. 익숙한 멜로디. 그러고 보면 공책도 낯이 익다.


 아마 고등학교 때 악상이 떠오른다며 음표를 마구잡이로 갈겼던 공책일 것이다. 끼적일 땐 재미있었지만, 막상 연주하고 보니 별로여서 집 구석에 쳐박아놨을 텐데······ 어떻게 그걸 알고.


 그녀의 연주를 들으며 눈을 감는다. 내가 작곡한 것이긴 해도,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코드의 진행이 다르고, 반복되는 시점이 다르며, 악센트가 다르다. 그녀가 편곡해서 연주하고 있는 모양.


 정말이지 재능낭비다. 내 곡을 편곡해 연주하는데 소모하기 아까운 재능. 그러나 곡을 연주중인 혜진의 표정은 오늘의 그 어느때보다도 잔잔하고 여유로워 보였기에, 나는 그저 혜진의 연주를 즐거이 감상할 뿐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돌려줄 수 있는 보수는 이것 뿐이었으니까.


 "어때?"

 "재능충 답네."

 "응."


 약간의 시기섞인 칭찬. 그것이 칭찬임을 알아차린 혜진은 얼굴을 붉히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떨군다.


 우쿨렐레 몸통에 물방울이 툭, 떨어진다.


 나는 그저 담담히 그 모습을 지켜볼 뿐.


 입을 열어 혜진에게 부채감을 쥐어주고 싶지 않았다.




 죽기까지 한 달.


 이젠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 혜진의 연주를 듣지 못하게되었다. 설령 병실에서 연주해준다 해도 그것을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진우야, --야······."


 차마 손도 잡지 못하고 이불을 쥐어뜯는 혜진을 그저 바라본다. 목소리도 흐릿하고 얼굴상도 제대로 맺히지 않는다. 


 아프다. 온 몸이 고장난 듯 뒤틀린다. 컥, 크긱, 하고, 기괴한 신음이 새어나간다.


 이미 고통에 절여진 몸은 뇌와 분리라도 되어버린 듯 움직일 수가 없다. 하다못해 팔이라도 들어올려 혜진을 진정시켜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만 억지로 신음을 참을 뿐이다. 혜진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괜찮다고 허세를 부리기 위해서.


 그러나 고통은 점점 더 심해진다. 이성이 고통에 갈기갈기 찢어진다. 고통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 어째서 이 고통을 견뎌내야 하냐는 물음이 끊임없이 내 심장을 조인다.


 그래서 나는 신음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죽고 싶어.


 죽고 싶어, 혜진아.


 제발.


 세 마디.


 앞으로 평생을 후회하게 될, 세 마디.


 내 말에 혜진이는 울었다. 그리곤 몇 분이고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마녀. 마법. 저주.


 뭐라고 하는지를 모르겠어.


 대체, 너는, 내게 무슨 말을.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났을 때.


 삐이이, 하고, 죽음을 알리는 신호가, 의식을 깨웠다.


 침대맡 모니터에 일직선을 긋는 초록색 선. 나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본다.


 다급히 병실로 들어오는 의사와 간호사. 그러나 나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해 있다.


 "비켜요, 학생!"

 "아······."


 밀쳐진다. 그것에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양 발로. 신기하리만치 꼿꼿하다.


 "제세동기 연결해!"


 침대가 덜컹거린다. 의사가 가슴팍을 있는 힘껏 누르고 있다. 그러나 침대에 누워있는 것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본다. 미동도 없는, 이미 죽어있는 몸이다. 뼈조차도 문드러져 있을 몸.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차지! 클리어!"


 덜컥, 덜컥, 덜컥.


 몇 번이고 파르르 떠는 몸. 그러나 생기는 돌아오지 않는다.


 수 분의 혈투. 그것이 10여분을 넘기자, 의사는 땀이 삐질 흐르는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병실에 어두움이 감돈다.


 그리고 이내, 간호사가, 흰 천으로 그것의 얼굴을 덮는다.


 평안하게 잠들어 있는 나의 얼굴에.




 이 날.


 김정한은 죽었다.

 이혜진은 미소지었다.


 김정한은 살았다.

 이혜진은 미친듯이 울었다.



 

 떠밀리듯 도달한 단칸방.


 그곳엔 이혜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무엇보다도 정갈하게 정돈되어있는 책상에 펼쳐져 있는 공책이 눈에 띄었다.


 많은 글씨는 쓰여있지 않았다.


 그저, 쓰여있는 것은. 몇 마디조차 되지 않는 문장.


 「안녕.

  즐거웠어.

  열심히 살아.」


 그리고, 펜으로 몇 번 죽죽 그은 글씨.


 좋아해.


 무뚝뚝한 그녀다운 유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음을 그때서야 자각하고 말았다.




 식은땀에 절여진 채 눈을 떴다.


 햇빛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단칸방. 익숙치 않은 그녀의 몸.


 구역질이 날 정도로 깊은 수렁에 빠진 듯 한 절망감.


 그러나, 그런 나를 조종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강박이었다.


 그녀 대신 살아가야 한다는.

  

 그녀의 몫까지, 살아가야 한다는.


 그런 강박이었다.




 집에 있는 모든 것을 읽었다.


 일기. 메모장. 필기노트. 컴퓨터의 파일까지. 모든 것을 읽었다.


 그리고 그것을 외웠다. 미친듯이 익혔다. 그녀가 되기 위해, 그녀를 연기하기 위해, 그녀의 모든 것을 내 안에 쏟아부었다. 나를 구겨넣어 만들어낸 자리를 그녀로 채웠다.


 말투. 표정. 몸짓. 글씨체. 사고. 버릇. 걸음걸이.


 부족한 부분은 내가 가진 기억으로 채웠다. 그녀가 내게 보여준 모습을, 말투를, 행동을 기억해냈다.


 그러나 그녀의 재능은 어쩔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그녀의 작곡노트를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녀는 내가 범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선율 하나에 감정을 싣고, 박자 하나에 마음을 담는 그녀의 곡은, 내가 뼈를 깎아낼 노력을 해야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뼈를 깎았다.


 필요하다면 그게 무엇이든 갈아내었다.


 내가 그녀를 따라가기 위해선, 모든 것을 바쳐야 했다.




 "씨발, 너. 대체 왜 그러는데?"

 "······."

 "너 나한테 호감있는거 아니었어? 쿨한척 비싼척 온갖 지랄을 하면서도 은근슬쩍 들이댔던 건 대체 뭐야?"


 그저 멍하니 악의를 받아낸다.

 같은 그룹 소속이었던 그가 뱉어내는 신랄한 모욕을 그저 받아들일 뿐.


 "야. 솔직히 말해봐. 너 씨발 나 가지고 논거냐?"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그의 화는 풀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가중된다.


 "아니면 뭔데. 나 안 좋아한다며. 호감같은거 없다며. 씨발 그러면 그 동안은 왜 나를 그렇게 대했던건데?"


 나는 들이대지 않았어. 그저, 나는, 혜진이가 나한테 했던 걸 따라했을 뿐인데. 혜진이가 한 대로 했을 뿐인데.


 "걸레새끼."


 아니야.

 혜진이는 걸레가 아니야. 그런 말을 들어선 안 돼.


 나 때문이야?


 내가, 잘못 행동해서 혜진이를 욕먹인거야?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아, 아.


 혜진아.

 네 몸이 더러워졌어.

 내가 무력해서.

 내가 힘이 없어서.

 내가, 내가, 나 때문에, 네 몸이.


 혜진아.

 구역질 나. 연습실에 널부러져 있는 내가 싫어. 온 몸에 걸쳐있는 이 역겨운 향이 싫어. 찢겨버린 공책이, 질척이는 페이지가, 싫어. 무서워. 토할 것 같아.


 혜진아. 미안해. 네 몸이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해. 네 소중한 공책을 망가뜨려서 미안해.


 내가 더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네 몫까지 했어야 했는데.


 혜진아.

 혜진아.


 아, 윽.


 그래도 살아야겠지?

 네가, 살라고 했으니까.

 어떻게든.

 그래, 어떻게든······.



 혜진아.

 영상이 퍼졌어.

 혜진아.

 내가 어떻게 해야 해?



 살아야 돼.

 그런데 세상이 나를 죽이려 해.



 살게, 해 주세요······.



 ······아.




 한 때 정상에 섰던 아티스트의 말로는 참혹했다.


 충격적인 스캔들을 뒤로하고 은둔한 그녀를, 스토커가 찾아내어 강간한 뒤 살해. 이게 이번 사건의 전모다.


 시신이 실려나간 뒤 현장을 살펴보았다. 단칸방······인가. 아무리 스캔들로 몰락했다고는 해도 상당한 재산이 있었을 텐데. 이런 비좁은 곳을 선택한 이유는 뭐지? 스토커들 때문인가.


 사실 범인도 자수한 사건이니만큼 현장감식은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기묘하리만치 이 사건현장에 마음이 끌렸다. 무언가. 그녀가 남기고싶었던 무언가가 이 곳에 있다.


 "반장님. 서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어어. 조금만."


 책상을 살핀다. 그러던 중 문득 한 공책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홀린것처럼 그 공책을 집어들었다.


 썩은내가 나는 오래된 공책이다. 페이지는 바래있었고, 몇몇 페이지는 뜯겨나간 것을 테이프로 이어붙인 흔적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 테이프엔······.


 정액인가.


 오래됐다. 적어도 이번 범행으로 묻은 것은 아닐 터.


 조금 더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공책의 뒤편에 보이는 건 일기장. 사생활을 엿보고싶은 마음은 없어 페이지를 조금 빠르게 넘겼다.


 글자는 점차 커졌다. 그리곤, 이내 한 페이지에 몇 글자밖에 적혀있지 않았다.


 살고 싶어.


 살려줘.


 살게 해줘.


 혜진아.


 서늘한 감각과 기묘한 위화감이 공존하는 일기다.


 살해협박이 있었나?


 아니야. 그런 증거는 나오지 않았어. 스토커도 우연히 만난 피해자를 따라가 저지른 우발적 범행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럼 대체 뭐지, 이 강박에 가까운 절규는······.


 "이제 가셔야 합니다."

 "······그래."


 찝찝함을 뒤로하고 공책을 다시 집어넣는다.


 상부에서 명령이 떨어진 모양이다. 조용히 처리하라는 뜻이겠지. 일이 이렇게 돌아간다면, 그녀의 죽음은 소리소문없이 묻혀버리고 말 터다. 그녀는 연고조차 없는 사람이었으니. 그렇게 홀연히 세상에서 사라지겠지.


 그렇다면, 나라도 작은 조의를.

 불행한 삶을 살았을 당신에게, 죽은 뒤에라도 안식이 찾아오기를.

 적어도 난 당신 곡을 꽤 좋아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