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대학을 갓 졸업하고 막 취업전선에 뛰어든, 남들과 특별히 다를것 없는 평범한 젊은 청년이었다.


평소에는 자취하며 파트타임으로 피시방 알바와 편의점 알바를 병행하고 남는 시간에는 자신의 스펙업을 위한 공부를 하며 지내고 있었다.


앞날을 알 수 없어 어둡긴 해도 이런 어두움은 아니었을텐데... 어느날 자고 일어나니 눈앞이 깜깜했다.


"끄응... 뭐야... 왜이렇게 어두워..."


"목소리는 또 왜이래... 목 쉬었나...?"


얼굴이 간질간질 한게 뭔가 얼굴위에 있는거 같아서 손을 가져가보니 그건 머리카락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머리카락.


뭐야 나 야한생각 그렇게 많이 안하는데 왜이렇게 머리가 길었지.


생각해보면 애초에 아무리 야한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도 하룻밤만에 사람 머리카락이 이렇게나 많이 자란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어난지 얼마 안돼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생각이 겨우 여기까지 굴러가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뭔가 이상하다. 나는 바로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평소 습관대로 엉덩이를 기점으로 몸을 돌려 오금을 침대 모서리에 걸치고 일어나서 침대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아...?"


짧았다.


내 다리는 겨우 발목만이 모서리에 걸쳐져 있었다. 내 키가 원래 초중고 시절에 출석번호 한자리수를 벗어난적 없는 단신이긴 했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다. 이 어이없는 광경을 보고있자니 내 시야에 점점 내 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고 앙증맞은 손, 찰랑이는 긴 머리카락, 짧아진 다리, 부드러운 메조소프라노톤의 목소리. 이거 설마?


나는 허겁지겁 침대를 내려오다 늘어진 이불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쿠당탕!


"으갹!"


놀란 감정이 커서인지 몸이 가벼워져서 인지 성대하게 넘어진것 치고는 그닥 아프지 않았다. 그보다는 빨리 거울을 확인해야겠다는 마음이 급했다.

빠르게 다시 일어나서 욕실로 향하려는데 이번엔 속옷이 다리에 걸렸다. 남성용 트렁크 팬티가 자꾸 허리에서 흘러내려서 발치에 걸려대서 그냥 흘러내린 팬티를 발로 구석에 차버리고 욕실로 달려갔다.


"와아... 이게 나야...? 말도안돼!"


실 거울을 확인하니 거기에는 굉장히 귀여운 소녀가 크고 반짝이는 눈망울로 거울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거울속의 소녀를 찬찬히 관찰해봤다. 예전의 짧은 반곱슬머리와는 다른 윤기있는 흑진주같은 긴 생머리와 백옥같이 하얗고 투명한 피부가 잘 어우러져 아름다우면서도 작고 앙증맞은 입술과 통통한 볼이 귀여움을 주장했다.


키는 130 후반 정도일까. 몸매랑 그곳을 마저 확인하고 싶어진 나는 어짜피 이미 하의가 나체인 김에 말그대로 상체에 걸쳐져만 있는 헐렁한 셔츠도 마저 벗어버렸다.


뭐 기대는 안했지만 외모에 어울리는 일자형 밋밋한 몸매에 털하나 없는 매끈한 모습이다. 그나마 가슴과 골반만이 귀엽게 살짝씩 자기주장을 하고있는게 위안이랄까. 그곳은 역시 말할것도 없이 내 아들은 사라지고 1자 균열의 민둥민둥한 허전함만이 나를 반겼다.


"하하, 시발 이거 어쩌냐..."


나는 격렬하게 머리가 아파지는것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 * *


그 후 한참을 멍하니 서있던 나는 정신도 차릴겸 찬물로 샤워를 하고 욕실 밖으로 나왔다. 씻을 때 내 몸이라고 생각하니 딱히 별다른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니면 그런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걸지도 모르고.


나오고 나니 입을 옷이 없다는게 그제서야 생각나서 배스타월로 대충 몸을 감았다.


왜 내가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사람으로서 살아가려면 의식주는 필수였다. 나는 지금 그중에 의가 결여된 상태다. 나중에 원래대로 돌아갈지 어떨지는 몰라도 지금 당장에 입을 옷이 필요했다. 옷이 없으면 밖에 나갈수도 없고 누굴 만날수도 없었다.


애초에 밖에 나간다는 선택지가 막혀있으니 직접 쇼핑은 불가능했다. 남은 선택지는 다른사람에게 대신 사와달라고 부탁하거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는것. 나는 침대위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집어들고 잠금을 풀려고 했다.


"내 스마트폰이 이렇게 크고 무거웠던가? 아니 그것보다 왜 지문인식이 안되는데."


아무래도 몸이 바뀌면서 지문도 바뀐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PIN을 입력해서 잠금을 풀고 카톡을 열었다...못믿을 새끼들 천지네.


내 비좁은 인간관계 덕에 부탁할만한 사람은 가족인 엄마아빠와 남자인 친구들밖에 없었는데 자취중인 곳이랑 부모님이 사는 곳이 멀어서 부모님이 사는곳이 멀어서 부탁하기엔 무리가 좀 있었고 외동이라서 형제자매도 없기 때문에 가족은 기각, 친구들은 얘네들한테 부탁하면 어떤 놀림감이 될지 상상이 돼서 싫었다.


그리고 이런 몸이 됐다는걸 말하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됐고. 아직 나조차도 진정이 안됐는데 남을 끌어들이기엔 시기상조였다.


결국 인터넷쇼핑으로 옷을 구매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