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브릭 고빈스는 기사였다.

레스타 왕국의 은사자 기사단 소속 기사였다.

그는 어젯밤 기사단 동기이자 절친이라 할 수 있는 로일이 큰 벽을 넘는 성취를 이뤄낸 걸 축하하기 위해 다른 동기들과 억지로 그를 끌고 나가 술을 진탕 마시고는 오랜만에 거하게 인사불성이 되어 숙소에서 곯아떨어졌다.

지난 수년간의 기사 생활 덕에 그는 매일 아침 듣지만 들을 때마다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저 뭣 같은 기상나팔 소리를 듣고 숙취와 힘겹게 싸우는 뇌를 깨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집합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는 복도로 나섰다.

그는 자기 바로 옆 방인 로일의 방을 지나며 술도 약한 로일이 혹시나 일어나지 못 했을까 싶어 그를 깨워줘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깨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닌데 이런 걸 왜 고민하지? 얼른 깨워주고 난 먼저 나가자’

라고 마음먹고 문을 열려던 휴브릭은

“이, 이게 무슨 일이야!!”

하는 소리에 동작을 멈췄다.

‘에이 뭐야 일어났네’

휴브릭은 마음 편히 발길을 돌렸다.

그러다 다시 방문을 두드렸다.

로일의 숙소에서 여자의 소리가 들렸으니까! 로일이 숙소에 여자를 데려오다니! 이런 진귀한 장면을 놓칠 순 없지 않은가?

그는 방에 노크했다. 로일뿐인 방이라면 마음껏 출입해도 문제가 없겠지만 기사로서 숙녀가 계시는 방을 마음대로 들어갈 순 없으니까.

“로일? 들어가도 되나?”

방안에 여자가 있는데 들여보내 줄리 없긴 하지만 그거야말로 로일이 여자를 데려와 일을 벌였다는 결정적 증거 아니겠는가?

그 숙맥 로일이! 이번주 기사단이 고된 훈련을 버티며 씹을 안줏거리는 이 일이 되리라 확신하는 휴브릭이였다.

“휴브릭? 들어와.”

놀랍게도 허락이 떨어졌다. 심지어 로일이 아닌 여자 본인에게서. 그래서 휴브릭은 당황했다. 여자가 목소리만 듣고도 자기가 누군지 알고 있었으니까!

‘이 녀석 설마 여기사 중에 한 명을?’

세상에! 로일과 일을 벌인 대담한 여기사가 누굴까! 어젯밤 함께 마신 미네르바나 카밀라는 저 정도로 고운 미성도 아니고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로일과 일을 벌일 인물들도 아니었다. 다른 기사들을 떠올려봤지만, 최소한 은사자 기사단 내에서 그의 기억에 저런 고음의 미성을 가진 여기사는 없었다. 애초에 숨 쉴 때마다 모래 먼지를 들이마시고 항상 악을 질러가며 훈련을 하는 기사라는 직업 특성상 기사가 되기 전에 저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고 그 후에도 저런 음색을 유지 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어쨌든 허락이 떨어진 건 분명하니 휴브릭은 편안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방 안에 있던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와...”

휴브릭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냈다. 또렷하고 큰 눈망울에 오뚝한 콧날과 작고 고운 입술을 가진 은빛 머리카락의 소녀는 단언컨대 그가 살면서 봐왔던 사람 중에선 가장 아름다웠다. 그는 그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른 것이었다. 그 후 남자의 본능에 따라 밑으로 시선을 내리던 휴브릭은 목 언저리까지 시선을 내렸다가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소녀는 헐렁한 민소매 티를 입고 훈련용 셔츠를 단추를 가슴 근처에서 잠그다 말았기에 헐렁한 티의 라운드넥 사이로 소녀의 가슴이 노출되고 있었으니까. 아담하지도 크지도 않은 적당한...

“흠! 흠! 레이디? 로일을 좀 깨워주시겠습니까? 곧 점호시간인데...”

휴브릭은 고개를 돌려 벽을 바라보고는 소녀에게 말했다. 어쩌다 정말 ‘우연히’ 봐버리긴 했어도 저런 차림의 레이디를 계속 바라보는 건 옳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내, 내가 로일이야. 휴브!”

휴브릭은 최소한 이 소녀가 레스타 왕국의 기사가 아니란 그것만은 확실히 알았다. 10대 중후반의 여기사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이런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면 최소한 소문이 안 날 리 없었으니까. 그럼 대체 그녀는 나를 어떻게 아는 것인가?

‘로일 녀석 대체 내 얘기를 얼마나 하고 다녔길래 목소리만 듣고 나를 알아보는 거야?’

그래도 숙맥이던 절친한 친구가 자기 몰래 이렇게 남자다운 일을 해낸 걸 생각하니 휴브릭은 가슴이 뿌듯해졌다가 배가 아파졌다. 어디서 저런 미녀를! 아니 그런데 너무 어리지 않나? 어린 건 아닌가? 이 도둑놈!

남녀를 불문하고 15세면 성인으로 인정받기 충분한 나이이고 소녀는 처녀라 불리기엔 어릴지언정 키로보나 피치 못하게 보았던 가슴으로 보나 15세는 충분히 넘어 보였다. 그러니 문제는 없을 테지만 같은 남자로서 분노가 끓어 오르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래서 그는 소녀의 말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네? 뭐라고 하셨죠. 레이디?”

“나 로일이라고!”

휴브릭은 또 이건 무슨 재미없는 장난인가 싶었다. 장난이면 좀 재밌고 그럴듯하게 쳐야지. 이러니까 그가 기사단 내에서 친한 사람들이 거의 없는 거다.

더구나 바쁜 점호시간에 무슨 짓인가? 더 시간을 지체했다간 선배들의 얼차려를 받을지도 몰랐다.

“로일한테 장난 그만하고 일어났으면 집합하라 전해주세요. 방안에 없는 거 보면 이미 나갔나?”

연병장에서 만나면 이 배 아픔을 힘으로 바꿔 뒤통수를 한 대 후려갈겨 주리라. 휴브릭은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갔다. 아니 나가려 했다.

“잠깐!”

소녀가 그녀의 옷깃을 붙잡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평소 점호시간에 누군가 옷깃을 붙잡았다면 당장 뿌리치고 연병장으로 달려나갈 휴브릭이었지만 그때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소녀가 아름다웠으니까! 더구나 소녀의 가녀린 팔은 그가 힘을 줘서 뿌리쳤다간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다.

예쁜 여자와 대화하고 싶어 하는 남자의 본능이 점호에 늦어 얼차려를 받으면 안 된다는 이성을 가볍게 이겨버렸기에 휴브릭은 소녀와 조금 더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나 정말 로일이라고! 진짜! 부모님 걸고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야!”

“아니, 그렇게 말해도 그걸 어떻게 믿으라는 겁니까. 레이디. 이거 저 여기 잡아둬서 얼차려 받게 만들려는 로일의 장난이죠? 그죠? 술 좀 먹였다고 이렇게 치사하게 나오다니...”

“좀! 시발! 닥치고 내 말 좀 들어봐!”

소녀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런 외모로 말하면 욕설도 들어줄 만하구나. 신선한 경험을 했다고 느끼는 휴브릭이었다. 그래서 그는 즐겁게 소녀의 말을 경청해주기로 했다.

“어젯밤 술 마시면서 무슨 일 없었어? 어젯밤에 그렇게 마시고 필름이 끊겼어.”

“흠....사실대로 말하면 저도 어제는 너무 마셔서 필름이 끊겼죠. 로일 녀석이 뭘 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이겁니다.”

“어쨌든!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 모습이 되어있었단 말이야!”

“흠흠! 레이디. 일단은 단추를 다 잠그는 게….”

시선을 아래로 내린 소녀는 그제야 자기 모습이 남에게 어떻게 비칠지 깨달음과 동시에 더이상 시선을 내려도 발끝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신체에 좌절했다.

“아니, 지금 옷차림 같은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하루아침에 여자가 됐다고!”

“어젯밤 어디 마법사에게 저주라도 받았다는 겁니까. 레이디? 아니, 로일?”

계속 본인이 로일이라고 주장하는 소녀. 휴브릭은 일단 소녀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이게 질 나쁜 장난이라면 자기가 받을 얼차려의 두 배로 갚아주리라 생각하면서.

“그래. 너, 레이디 엠마와 교제 시작했을 때 나한테 뭐라 했냐? 솔직히 내 스타일은 아닌데 그냥 외로워서 만나보는 거라고 했잖아. 근데 그렇게 시작한 연애가 2년째잖아!”

“그, 그런 말을 로일한테 하긴 했는데...로일 이 자식 입이 아주 싸구먼!”

그가 로일을 만나면 두들겨줄 이유가 하나 늘었다.

“그리고 너 관물함 두 번째 서랍에 비밀바닥 만들어 둔 거! 거기에 비상금 모아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윽? 그걸 알아?”

 

그 후로도 소녀의 입에선 로일과 휴브릭만이 알만한 비밀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이런 비밀을 말하고 다니는 로일에게 화가 나던 휴브릭도 그쯤 돼서는 자기가 틀린 게 아닌가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좋아! 레이디가 로일이라고 칩니다. 이제 한 반 정도는 믿어드립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아직도 안 믿는 거야?”

“믿습니다. 믿어요. 아니, 믿는다고. 로일!”

“그래! 난 로일이야! 은사자기사단의 평기사 28세 로일 스테리아스! 근데 왜 내가 이런 모습이 된 거냐고!”

“그걸 나한테 따져도 오히려 내가 묻고 싶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반 정도 눈앞의 소녀가 로일이라는걸 믿게 된 휴브릭은 이제 똑바로 소녀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옷차림을 다듬지 않아 살 색이 많이 보였지만, 눈앞의 소녀가 소녀가 아니라 로일이라면 무슨 문제겠는가? 하고 자기합리화를 해버린 휴브릭의 시선은 거칠 것이 없었다. 남성용 트렁크 팬티만을 입고 그 밑으론 아무것도 입지 않은 허벅지에도 휴브릭은 꼼꼼하게 시선을 줬다.

“아까도 말했지만, 어제 너희랑 진탕 마신 후론 기억이 없어. 그냥 일어나보니 이 꼴이었다고.”

이제 서로 눈을 마주 보고 있으니 휴브릭의 시선이 어디에 닿는지 소녀도 충분히 알 수 있을 텐데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소녀를 보며 휴브릭은 눈앞의 소녀가 로일이라는 믿음을 50%에서 75%까지 끌어 올렸다. 나름 여자들을 많이 겪어본 휴브릭이기에 눈앞의 소녀가 자신의 몸을 훑는 눈길에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느끼긴커녕 그런 눈길에 익숙해진 그것조차 아니고, 그저 남자가 남자의 몸을 본 것 마냥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 꼴로 연병장에 나갈 거야? 하긴 지금 나가봤자 아침 점호는 끝났겠구먼.”

소녀가 로일이라는 증거로 내미는 비밀들을 듣다 보니 어느덧 점호가 끝날 시간이 되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면 아마 선배들께서 몸소 찾아와 무서운 맛을 보여줄 것이다. 그 전에 선수를 쳐야 하지 않겠는가?

“일단 궁정 마법사님이라도 뵙고 상담받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분이 우리 같은 말단 평기사들을 함부로 만나주겠냐…. 일단 기사단장님께 보고나 하러 가자고. 그분을 통하면 마법사님을 뵐 수 있을지도 모르지. 선배들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얼른 가자고. 같이 가줄 테니까.”

“하아…. 고맙다. 솔직히 너무 패닉상태라 사고가 전혀 안 됐거든. 너랑 이야기하니 조금 괜찮아졌어.”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방문을 나섰다.

“야! 잠깐!”

그리고 그런 소녀를 휴브릭은 황급히 멈춰 세웠다.

“옷은 제대로 입고 다녀!”

아무리 소녀가 로일이라 본인의 노출에 대한 자각이 없어도 남들을 위해서라도 저 차림으로 기사단 숙소를 활보하게 내버려 두는 건 옳지 못 한 일 아니겠는가? 절대 소녀의 몸을 휴브릭 혼자 보겠다는 욕심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이즈가 다른걸?”

“일단 입고 나서 얘기하자.”

단추가 다 잠기지도 않은 헐렁한 셔츠와 나시티, 남성용 사각팬티를 제외하면 입은 게 없는 은빛의 미소녀. 자기가 남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전혀 자각 없는 이 친구를 어찌 해야 하나 조금 걱정되는 휴브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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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시점으로 서술되고있어서 별로 재미는 없는 부분이야

역시 ts의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나라고 증명하는 일 같다 뭐 딱히 좋은 아이디어가 없어서 대충 넘겨버려서 재미가없넹

19금이 아니라 미안해...

주인공의 이미지는




이런느낌인듯....?그냥 가지고 있는 짤중에 골랐는데 상상중인 이미지랑 비슷한거같다


아 소설의 제목은 나는 다시 기사가 될 수 있을까 로 정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