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그래서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겐가?”

“저도 믿기지가 않았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단장님 믿어주십시오!”

둘은 다행히 선배들의 눈을 무사히 피해 이제 막 사무실로 출근해 모닝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는 은사자 기사단장, 멜버트경과 무사히 만남을 가졌다.

어느덧 40 후반을 바라보는 멜버트경은 자신의 자랑인 팔자 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앞에 소녀와 기사를 쳐다보았다.

20년째 기사 생활을 하고 있는 그로서도 황당한 일이었다. 자기가 하루아침에 소녀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은사자 기사단 단원이라. 아니 이 경우엔 자기가 은사자 기사단 단원이었다 주장하는 소녀가 맞겠지.

너무 황당한 일이다 보니 오히려 이게 장난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지경이었다.

“휴브릭경. 이게 질 나쁜 장난일 경우 각오는 되어있겠지?”

“아, 아니 저도 그냥 이 소녀가 로일이라 주장하길래 믿어주는 거지 진실이 뭔진.... 저도 잘 모르는 일입니다!”

“그럼 로일. 자네가 진짜 로일 경이 아니었을 경우 로일 경은 당장 파면하고 일반병의 신분으로 최전방에 발령내겠네. 지금이라도 장난이라 말하면 없던 일로 해주고 연병장 250바퀴로 용서해주지.”

그의 생각에 장난은 아닌 것 같더라도 단장된 자로서 확인은 확실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제 기사직이 아니라 저희 스테리아스 가문의 명예와 전 재산이라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전 로일입니다!”

“좋아. 믿어주도록 하지. 거짓으로 드러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자신 있습니다! 전 로일입니다!”

눈앞의 이 소녀는 꽤 ‘기사다운’ 말투로 말하고 있는 것도 멜버트 경에게 퍽 신뢰를 주었다. 뭐 세상에 엄연히 마법이란 게 존재하는데 남자를 하루아침에 저렇게 예쁜 미소녀로 탈바꿈시키는 마법도 존재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자세한 건 본인이 마법사가 아니니 모르겠지만.

“그럼 좋네. 내 직권으로 궁정 마법사님과 만날 수 있게 힘써보도록 하겠네.”

판단은 마법사가 하겠지.

로일이라는 기사의 평소 이미지가 단장에게 있어서는 실력이 대단하진 않지만, 매사에 진지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기사였기 때문에 단장은 일단은 믿어주기로 했다.

궁정 마법사에게 보낼 소개장의 내용을 고민하면서 단장은 이게 진실일 경우 생겨날 자신의 귀찮은 업무를 떠올리니 차라리 이게 거짓말이라 그냥 기사 하나 처벌하고 끝낼 수 있는 일이길 기도했다.

이 두 평기사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왕국 수도 한복판, 왕성 내에 머무르고 있는 기사에게 마법을 거는데 성공했다는 의미는 왕궁 내에 다른 주요 인물에게도 그런 짓을 시도해서 성공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니까, 왕궁의 보안이 뚫렸다는 소리다! 왕궁의 경비를 담당하는 기사단은 은사자가 아니지만 이런 사건이 위에 보고된다면 본인에게까지 불똥이 튈 게 뻔했다. 그렇다 해서 보고를 빠뜨리기엔 왕궁의 보안과 관련된 사건이었다. 기사로서 책임감이 똑바로 틀어박혀 있는 멜버트경으로서는 좌시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로일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몸이 저렇게 된 것이 숙소 내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왕궁의 밖에서 벌어진 일이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기사단의 숙소를 나와 왕궁의 거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마법부까지 가는 동안 로일과 휴브릭은 꽤나 곤혹을 치뤘다. 당장에 점호에 참가하지 않은 일로 선배들에게 끌려갈뻔한건 단장님의 직인이 찍힌 문서로 무마했지만.

“어이. 휴브릭! 옆에 그 천사는 대체 누구야!”

“나 로일...읍!”

“아, 길베르트! 인사해~ 로일의 사촌동생. 로...샤야. 하하!”

말을 걸어오는 동료 기사들에게 본인을 로일이라 말하려는 소녀의 입을 틀어막은 휴브릭은 소녀의 귀에 속삭였다.

‘야! 야! 너 그런꼴된거 광고하고 다닐 생각이야? 이제부터 넌 로샤다. 응?’

‘젠장! 구려! 이름 너무 대충 지은거 아니야?’

‘크흠! 내가 작명에 소질이 있었으면 기사가 아니라 문관을 했겠지.’

“로, 로일의 사촌 동생 로...샤...에요...”

로일은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길베르트는 그 손을 잡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손등에 입맞춤을 했다. 그는 기사단 내에서도 가장 큰 체구인 그였기에 무릎을 꿇고서도 로일보다 커 허리를 한참이나 숙여야 했다.

길베르트가 수직인 손을 잡아 손등이 위로 향하게 돌리고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본 로일은 그가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단번에 깨달았지만 그의 덩치만큼이나 큰 손에 비하면 어른과 아이의 손 정도의 차이가 있는 로일은 길베르트에게서 그 손을 빼내지 못하고 그의 입맞춤을 허락했다.

“반갑습니다. 레이디 로샤.”

“윽...”

로일은 입 밖으로 신음소리를 흘릴 정도로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남들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치는지 깨달았다. 누가보아도 여자이고 소녀이다. 휴브릭이나 단장님처럼 오랜시간을 들여 설명하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자신을 로일이라는 남자로 봐줄 것인가?

“이야~ 로일녀석한테 이런 천사같은 사촌동생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전 녀석의 동기인 길베르트입니다. 편하게 길이라 불러주십쇼!”

“아...”

로일은 길베르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문득 이대로 원래 몸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공포가 로일의 발끝에서 자라나 심장을 옥죄었으니까. 눈앞이 까맣게 변하고 귀에 들리는 모든것은 소음으로 대체 되었다. 기사로 살아온 몇년의 세월동안 흉악한 범죄자와도 싸워봤고 흉측한 몬스터들을 토벌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어느 때에도 로일은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다시 남자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게 아니었다. 남자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가 지금까지 ‘로일’이라는 남자로서 쌓아 올린 이 삶은 어디로 가는 거지?

“아! 레이디 로샤가 부끄러움이 많아서 말이 좀 짧아.”

로일은 길베르트가 안보이는 각도에서 등을 살짝 찌르는 휴브릭의 손길을 느끼고서야 겨우 정신을 일깨웠다. 다시금 눈앞의 길베르트가 보였다. 원래의 몸이었을 때도 올려다봐야 할 수준의 키였는데 지금의 작은 체구로는 목이 아플 정도로 꺾어야 눈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로일의 사촌 동생이라더니 왜 네가 에스코트하고 있는 거야? 로일은?”

“아침에 잠깐 급한 일 있다고 나한테 레이디 로샤를 맡겨두고 어디 가버리더라고.”

“허! 검 휘두르는거밖에 안하던 녀석이? 어제 소드에 오러를 생성하는데 성공하더니 조금 여유가 생겼나.”

“그래서 왕궁 구경이나 시켜주고 있었지. 레이디 로샤는 지방에 살다 얼마전에 로일을 보러 수도에 온거라 수도 구경은 처음이래서.”

마침 휴일이라 사촌동생이 기사단 내부에 있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왕궁의 외궁은 기사의 일가친척이라면 면회 형식으로 휴일에 입장이 가능했으니까.

“그런데 옷은 왜 훈련복을 입고 계신거야?”

‘젠장 길 녀석 궁금한것도 많구만’

딱 봐도 로일의 외모때문에 어떻게든 말 하나라도 더 걸어보려는 수작인걸 바로 눈치챈 휴브릭이었지만 친한 친구니 너그러이 용서해 주기로 했다.

“기사 복장도 한번 입어보고 싶다 하셔서 로일이 입히더라고. 뭐 레이디에게 무거운 갑옷을 입힐 순 없잖아?”

“그런 거라면 예복을 입혀드리면 되지 훈련복을 입혀드려?. 역시 로일다운 센스군.”

“내가 ㅁ...읍!”

자신의 센스를 흉보는 친구에게 한마디 해주려 입을 열던 로일의 행동은 곧바로 휴브릭에게 막혔다. 덕분에 로일은 다시 자신의 처지를 자각했다. 로일의 사촌동생 로샤. 최소한 마법부에 도착할때까지는 자신은 로일이 아닌 로샤였다.

“그러게 말이다~ 그래서 내가 이따 예복을 입혀 드릴려고. 그럼 우린 이만 가볼께. 로일 오기전까지 레이디 로샤에게 왕궁 다 보여드리려면 바쁘단말이지.”

“그래.... 아. 너희 왜 점호 안온거야?”

“단장님께 불려갔거든. 자세한건 나중에 얘기해줄께.”

“그래.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레이디 로샤.”

그는 오른손을 배에, 왼손은 등에 붙이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예...안녕히...가세요. 길.”

로일은 마지못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가 아는한, 가장 여성스러운 어투로.

 

이런 일을 몇번 반복하고 나서야 로일과 휴브릭은 왕궁내에 마법사들이 업무를 보는 건물인 마법부에 도착 했다.

뜻하지 않게 레이디인척(?) 해야 했던 덕분에 로일의 멘탈은 모래사장의 조개껍질만큼이나 산산히 부서졌다.

거칠고 질긴 천으로 만들어진 훈련복은 젖어도 비친다거나 하는 일은 없는 소재였지만 그 옷을 몇년동안이나 입고 뒹굴어본 휴브릭은 이 소녀가 입은 기사용 훈련복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는걸 곁눈질로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이 소녀가 정말 로일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로일이 아닌 진짜 소녀였으면 방금 같은 일이 몇번 일어났다고 이렇게 힘들어 하진 않았을테니까. 그래서 휴브릭은 기원했다. 부디 마법부에서 이 일이 무사히 해결되고 자신의 친구 로일과 함께 오늘 아침있었던 일에 대해 웃어 넘길 수 있기를.

소녀의 아름다운 미모를 더 못보는건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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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관심없을 소설 시리즈 한편 더 던지고 갑니당

나는 이 소설을 계속 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