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한구석 모퉁이쯤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달동네 아래에서 집 구석까지 올라오는 길은 가파르고 힘든길이다. 종종 골목에서 울어대는 고양이 소리와 한여름에 매일 울어대는 매미소리와 함께 주황빛 가로등이 아무도 걷지않은 이 길을 비춰주고만 있었다.


유난히 오늘따라 지친 몸을 이끌고 올라갈때쯤, 한번도 본적없은 어느 소녀가 다꺼져가는듯 한 가로등 불빛아리 홀로 서있는것이 보였다. 긴 머리카락과 긴 드레스 자락이 그림자 처럼 비춰지고 있기에, 확실히 소녀라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내 동생보다는 적어도 4살 정도 어려보이는듯 한 그 어린 소녀는 마치 나를 부르는듯한 기분을 내뿜으며, 그쪽으로 나도 모르게 의문만 품은채로 한걸음 한걸음 계단을 올라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소녀의 얼굴을 마주했을때, 소녀는 웃는것인 슬픈것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위로 쳐다보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그런 소녀의 표정에 빠져들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그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잠시 숨겨주실래요?"


나는 몇초간 그 뜻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다. 집에서 부모님하고 싸워서 가출한 아이인가? 누군가 쫒아오고 있는건가? 그런 온갖 머리속에 다양한 생각이 떠오를때 그런 생각을 할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곤 머리를 절래 흔들고는 대답하곤 손을 내밀었다.


"도와줄게, 문제 될건 없으니까"


소녀는 특별한 대답없이 내 손을 자연스럽게 잡고, 나는 많은 생각에 잠긴채로 그 소녀를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납치를 하는건가? 동생에게는 뭐라고 설명하지? 경찰에 신고해야하나? 그런 여러 생각이 들때쯤 갑자기 소녀는 내손을 당겨 골목 모퉁이로 나를 끌어당겼다.


좁은 골목에 놓여진 텃밭이 채워진 화단이 아슬아슬하게 우리를 숨겨주고는, 그 소녀는 내 가슴팍까지 닿을정도록 가까히 달라붙어서는 아무렇지 않게 바깥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소녀가 바라보는방향에서 어떤 청바지와 가죽자켓을 걸친 두 남성이 이리저리 무언가를 찾고 있는것이 보였고, 순간 직감적으로 소녀와 확실히 관계된 일이라는것울 내 스스로 알아 차렸다.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수도 없이 떠오르며 두 남자가 사라지길 기다렸지만 마치 근처에 확실히 있다는 말을 하며 수색하기 시작하곤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해야하지? 도망가야하나? 여기 있다고 소녀를 보내줘야 하나.. 생각이 들때 소녀는 팔을 당기며 이렇게 속삭였다.


"그럼 숨어도 되겠죠?"


나는 무슨뜻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숨어? 여기서 들킬텐대 숨을곳이 있나? 그런 생각을 하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도.. 하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는 소녀는 마치 흰색의 빛처럼 투명해지더니 나를 감싸며 안아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천사를 보는 느낌이였고 나는 그런 소녀에게 눈을 땔수가 없었다. 그 소녀는 마치 내안으로 들어오는듯 사라져만 갔으며, 완전히 사라질때쯤.. 그 자리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내 어깨를 두번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돌아봤을때 나는 그 남자 둘이 나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음을 알았다. 두사람은 질문이 있다는 표정으로 진지하게 인상을 살짝 구기면서


"혹시 어떤 소녀를 본적 있습니까?"


"아 아뇨, 전혀요"


거짓말 했다, 아니 거짓말인지 잘 모르겠다, 소녀는 사라지고 없었고 나는 소녀를 정말로 본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보지 않았던건 아닌지 모르겠으니 말이다. 두 남자는 나를 의심할것 같아 걱정스러웠지만 다행이도 아무말 없이 뒤돌아서는 다시 아래로 반대방향으로 향해 내려갔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상태에서 나는 급한대로 다시 집으로 향했고,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리며 그대로 쓰러지다 싶이 현관에 주저 앉았다. 

내가 본것은 무엇이었던 걸까? 그런 의문을 품었지만 말도 되지 않는 그런 환상을 본 내가 할수 있는것은 씻고 그대로 쓰러져 잠들어 버리는것이였다. 동생을 살펴볼 틈도 없이 정신없이 돌아온 내가 할수 있는것은 그것 뿐이였으니까 말이다.


다음날 아침, 내가 눈을 떳을때는 어젯밤에 일이 생생하게 꿈이 아닌것 처럼 느껴졌다. 내가 본것 들은것 모든것이 말이다. 그렇게 우선은 침착하게 화장실로 향했을때, 어젯밤 모든 일들이 실감이 날정도록 충격을 받을수 밖에 없었다.


거울속에 내 모습은 한번도 본적이 없는 어느 아름다운 소녀가 놀라 당황하며 거울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