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이랑 하루살이 냄새가 심하게 난다


 
 냉장고의 푸른 빛 아래엔 새파랗게 새어버린 소주 병 몇 개와, 언제 샀는지 모를 치즈, 사이다 몇 캔만 있었다. 오늘따라 빈 공간이 더욱 공허해 보였다. 마치 지금의 나처럼.

 하고픈 것도 없고, 살 의지도 없다. 그저 죽지 못해 시간만 살해하며 살아간다.

 " 어흐, 그만. 그만. "

 이런 생각만 하면 쓸데없이 우울해진다. 친구는 별로 없지만, 한 명 쯤은 부를 필요가 있었다. 이내 꺼내든 휴대폰엔 '진우' 두 글자가 떠올랐고,
 
 띠리릭- 띠리릭-

 " 어, 왜? "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은 전화를 받았다. 주변이 시끄러운 걸 보니 대학로 어딘가에 있는 것 같았다.

 " 지금 일 있어? "

 " 아니 그냥, 별 거 없지. "

 뒤에서 짧게 몇 마디가 흘렀다. " 오빠, 누구야? ", " 별거 아냐. "

 " 나 나가도 괜찮냐? "

 " 여기 그 어디야, 삼겹살집. 유명한 데 있잖아. 알지? "

 " 곧 간다. "

 대충 샤워만 하고 방 구석에 박혀있던 청바지와 흰 티셔츠를 입었다. 마른 편이라 옷은 별 문제가 없었다.

 잠시 시선을 돌린 거울엔 키만 멀대같이 큰 멍청이가 들어서 있는 것 같았다.

 적당히 신경을 돌리고 문을 열고 나갔다. 집이 대학로와 가까워 별로 멀지 않았다.

 ㅡ

 시끄러운 소음이 공간을 가득 매우는 현장에서, 진우는 구석의 한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먼저 주문해놨는지, 삼겹살 몇 첨이 자글자글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 승원! 빨리 왔네 "

 내가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진우는 날 알아보곤 활짝 웃었다. 시원한 얼굴상이 썩 보기 좋았다. 고기를 뒤집는 손길이 바빠 보였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통화할 때 있었던 여친은 돌려보낸 것 같았다.

 반대편 자리에 털석 걸터앉았다. 오랜만에 시끄러운 자리에 앉으니 머리가 아파왔다.

 " 연애는 잘 되가고? 저번에 만들었다는 여친. "

 딱히 꺼낼 말이 없어서 연애 얘기를 먼저 해야 했다. 대학을 다니는 진우는 외모와 쾌활한 성격 덕에 나름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 에이, 별 거 없지. 이번주 내로 헤어지게. 괜찮은 대학인데 돈 많은 년 하나 찾기 왜 이렇게 어렵냐 "

 어디까지나, 바깥으로 보이는 면이 그렇다는 이야기였다. 공부야 나름 잘 해서 장학금 받아가며 대학에 왔지만, 뭔가 배워보려는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항상 돈 많은 여자 하나 잡아서 한탕 하고 버릴 작당만 하고 있었다. 성격에 공부, 옷까지 나름 잘 입고 다니니 모르는 사람들은 의심할 겨를조차 없이 빨려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