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닫고 돌아서자 죽을것만 같은 부끄러움이 몰아친다. 남자일때도 몸을 남에게 보이는것은 부끄러웠지만 미소녀의 몸으로 알몸 와이셔츠를 보여준다는 상황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면 와이셔츠가 살에 스치는 감각에 다시금 얼굴이 빨개져온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 희망적인건 치킨 한마리와 콜라는 있다는 것일까.



 몸이 바뀌어서인걸까, 평소면 혼자 해치웠을 치킨도 다 먹지 못했다. 저녁에 다시 먹을 생각으로 냉장고에 넣어두고나면, 다시금 자신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어깨까지 내려온 마치 눈꽃과도 같은 백색의 머리카락과, 그에 어울리는 뽀얀 피부. 그리고 그 갸날픈 몸을 겨우 가려주고 있는건 옛 자신의 와이셔츠였다. 

 예전의 자신이 이 광경을 보고있었다면 좋아하는걸 넘어 흥분할만한 것이었겠지만, 자신이 그 광경의 주인공이 되어있으니 엄청나게, 위험할정도로 부끄러웠다. 방을 옷으로 뒤덮으며 옷장을 뒤져봤지만, 이제 예전의 자신의 옷가지들은 맞는것이 없었고, 더 이상 걸칠것이 없었다.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아까의 배달원과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질 것이고, 잘못하면 여자의 몸으로 홀로 있는 집에 습격자를 맞이하게 되는 참극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옷을 사야하려나..."


 그렇지만 옷을 사러 나가려해도 입을 옷이 없었다. 옷을 사려면 옷이 필요한 세상이라니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인터넷이 있었고 택배로 집앞까지 배달까지 해준다. 물론 아는 여자옷이 있는건 아니었지만.


 "교복이라도 입어야하려나..?"


 교복이라면 지금의 어려보이는 몸과 딱 맞을 것 같았다. 평소에 자기가 입던 사무원 느낌의 옷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것도 같았다. 교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소녀를 보고 수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바로 컴퓨터의 전원을 키고 교복을 파는 곳을 찾아보았다. 분명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입는 옷이지만, 어째서인지 학생이 아니더라도 살 수 있는 곳이 꽤나 많았다. 모니터 옆에 거울을 두고 모니터 속의 옷과 거울 속의 자신을 번갈아 보고있으면, 어쩌면, 예전의 자신이 화보집에서나 봤던 옷들도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세라복도 어울리지 않을까..?"


 컴퓨터 앞에서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빠르게 옷을 찾아나가는 소녀는, 마치 옷입히기 게임을 하듯이 거울 속의 그녀에게 모니터 속의 옷을 입혀보았다. 소녀의 눈에 거울 속의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포즈를 취해주는 완벽한 이상형의 캐릭터와도 같았고, 누군가가 이 상황을 봤다면 나르시시즘에 빠졌다고 했겠지만, 소녀는 깨닫지 못하고 변해버린 자신의 외모에 취해나갈 뿐이었다.


 밤이 지날동안 끝나지 못한 소녀의 폭주는 다음 날, 현관문 앞에 무더기로 쌓인 택배 상자들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