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오랜만에 한 판 해볼까. "


 난 컴퓨터를 켜고 익숙한 게임 하나를 창에 띄웠다. '더 서바이버'. 단순하게 종말로 향하는 세상에서 인류를 보존하면 되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성공이 매우 어렵다고 정평이 난 게임이라, 일반인들은 상당한 시간을 들여도 실패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나같은 경우엔 수십 번 클리어한 경험이 있어 그리 어렵진 않았지만.


 흔히 두세번 엔딩보면 게임의 수명이 다한다고 생각하지만, '더 서바이버' 는 달랐다.


 커스터마이징부터 주어지는 엄청난 자유도, 랜덤으로 닥치는 수많은 재앙의 종류까지, 입문은 어려우나 숙달되기만 하면 무한한 재미가 있었다.


 " 커스터마이징부터.. "


 일단 키는 작고, 귀여운 미소녀로 하자. 나이는 대충 열여덟.


 당연히 근력이나 지구력 등등에 큰 페널티가 붙지만, 특성이나 배경을 괜찮게 붙여준다면 재밋는 플레이가 가능했다.


 키 150, 은발적안의 아담한 미소녀.


 흔히 고인물들이 이런 모습이라고 했었나, 나도 영락없이 같았다.


 외모 커스터마이징을 끝내자 두 번째로 특성 창이 떠올랐다.


 특성은 총 다섯 개를 선택할 수 있었다. 수많은 특성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2점의 포인트를 주었다.


 1점부터 5점까지의 다양한 긍정적 특성과, 점수를 더 받을 수 있는 부정적 특성을 조합해 최적의 효율을 뽑아내는게 관건이었다.


 첫 번째로는, '사격 재능' 2점.


 두 번째로는, '의지박약' -3점.


 세 번째로는, '연약함' -3점.


 네 번째로는, '지능적' 2점.


 다섯 번째로는, '천부적 재능' 4점.


 사격 재능은 극후반에 총을 쥐여줬을 때 재미를 보기 위한 선택이었고, 지능적이나 천부적 재능 역시 후반에 특화된 특성이었다.


 초반엔 기반을 쌓기 위해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일이 잦다 보니 육체에 관련된 것이 중요했다.


 이런 특성만 붙였다가 미소녀 공돌이가 되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특성을 모두 선택하고 완료를 누르자 가계도 창이 떠올랐다. 여기서 캐릭터의 외모나 나이에 따라 대략적인 가족관계가 설정된다.


 플레이어는 여기서 가족들의 생사 여부나, 동거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


 대충 말하자면, 초반부를 함께할 동료를 정하는 것이었다.


 가계도에 잡힌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 한 명이었다.


 가끔씩 몇십 명이 되는 대가족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었으나, 총 세명이라고 해서 나쁜 수준은 아니었다.


 리셋을 돌리긴 귀찮으니 대충,


 전부 드래그해서 사망 처리한다.


 특성에 의지박약을 넣은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원래 의지박약 특성은 무엇을 하던 피로도가 빠르게 올라 굉장한 쓰레기 취급을 받았는데, 가족들이 죽을 경우엔 페널티를 상쇄할 수 있다.


 특수 특성, '악착같음' 덕분이었다.


 가족의 사망 사유를 '재앙에 의한' 으로 설정할 경우 따라붙는 특성이다.


 모든 작업의 효율 상승과 피로도 증가를 경감시키는 특성이었다.


 점수로 치자면 4, 5점짜리 특성과 맞먹는 굉장한 효율.


 혹시나 연약함을 왜 넣었느냐 묻는다면, 은발적안 병약 미소녀를 만들기 위해서다. 세상에 그만큼 완벽한 생물체는 있을 수 없지.


 이제서야 게임의 시작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게임 자체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로딩은 꽤 걸렸다. 그동안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친구로부터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현승 - 지금 한 잔 ㄱㄴ? 너네 집으로 감

 
 지금은 저녁 아홉 시, 괜찮을 법 했다.


 게임 정도는 조금 미뤄도 괜찮고, 이 녀석도 '더 서바이버' 에 푹 빠져서 살았기 때문에 대화할 거리도 충분했다.


 나 - ㅇㅇ 니가 사셈

 
 내 집에서 먹는 거니 이정돈 말해도 괜찮겠지.


 적당히 라면이나 하나 끓여두면 괜찮을 것 같아서, 의자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세상이 흐릿해졌다.


 " 어.. 어? "


 시야가 기울고,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쿠웅!


 눈이 감겼다. 무언가 큰일이라도 난 기분에 저항하고 싶었으나 세상이 눈꺼풀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세상이 암전했다.


 ㅡㅡ몇 시간 후ㅡㅡ


 약간 금이 간 천장. 낯선 천장이다.


 아니, 아니지ㅡ


 내 방 천장이다.


 금이 간?


 -스르륵,


 은색의 부드러운 실이 내 어깨를 스쳤다.


 나는, 미소녀가 되버린 모양이다.

 
 망한 세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