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


"그분은 어디 가셨습니까."



무당 여인의 질의는 다소 뜬끔없었다.


그분이라니. 누구.



[그분이라니. 누구말이냐.]



황소가 내 속내를 대변해주었다.


무당 여인은 정색했다.



"시치미 떼지 마세요.

동자님 말이에요."


[네가 모시던 신이냐?]



무당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한 걸까.


나와 맞잡은 손에, 무당 여인이 힘을 주었다.


힘을 줬대도 미약하고 귀여운 정도의 힘이었다.



"임신을 하고부터 동자님의 기운이 희미해졌어요.

당신의 짓이죠?"


[이 몸이 남의 무당이나 뺏어먹을 치졸한 신으로 보이느냐?]


"그렇게 보여요.

저주로 애를 배게 하고, 그 애로 하여금 제 어미를 죽이게 하는데. "


[바로 봤군.

이 몸이 신기로 눌러 밀어내버렸다.

소멸했거나, 다른 곳으로 도망쳤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렇군요."



기분 탓일까.


무당 여인의 '까드득' 하는,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더 궁금한 것은 없느냐?]


"없어요. 마저 타세요. 깡그리 타서 사라지세요."


[기껏 대답해줬더니 너무하는군.

인심 썼다. 하나 더 알려주고 가마.]



화력이 강한 것치고 다른 곳으론 옮겨붙지 않는 괴상한 불꽃이었다.


불꽃은 드디어 소의 머리를 태우기 시작했다.



[무얼 원해 그 지팡이를 쥐었느냐.]


[네놈! 발설할 생각이냐!]



지팡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화기가 강해졌다.


소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답하거라. 무얼 원해 쥐었느냐.]


"뱃속의 이 아이가, 평범한 인간의 아이로 태어날 수 있게.

마을 사람들의 뱃속 아이도 평범하게 태어날 수 있게.

당신의 저주를 태워없애준다 하셨습니다."


[내가 바로 보았구나.]


[떠벌리지 마! 떠벌리지 마라 이놈!]



지팡이가 시끄러웠다.


소의 말을 가로막으려 들었다.



[들어라. 저-.]


[네놈 그 입을 다물어라!]


[-는 언제나 변함이 없는-.]


[어찌 천기를 누설하려하느냐!]


[그런 고로, 작금의-.]


[얌전히 소멸하란 말이다!]


"지팡이 당신, 그만 떠드시오.

자꾸만 말이 묻히고 있지 않소."



지팡이를 한대 쥐어박았다.


피식. 소가 코웃음을 쳤다.



[거짓 없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신령도 똑같지.]


"무슨 뜻이오?"



소는 대답하지 않았다.


만족한듯 입을 닫고 있었다.



'화르륵'



이윽고 화염이 소의 모든 걸 집어삼켰다.




*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는 도보를 이용하기로 했다.


뒤늦게 정신이 돌아온 거북과 따개비, 두 신령은 하염없이 사과만 했다.



"미안,,,, 하네. 본래 우리의,,,, 일이거늘,,, 유구무언일세,,,,,."



덕분에 죽을 뻔 했지만 구태여 그 점을 따져대고 싶진 않았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론 문제 없었으니까.


둥글게 넘어갔다.



"괜찮소. 적이 강했잖소."



나리는 모나게 넘어가려했다.



"맨입으로 사과네 뭐네 떠드는 꼬락서니를 보니, 역시 이 동네 '군주' 라는 축생도 별 것 아니로구나."



나리는 저 두 신령이 몹시도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거북 신령은 분한지 부들부들 떨었다.


한 마리 밖에 없던 말에는 무당 여인이 올랐다.


나리와 총잡이 여인이 앞장을 서고, 나는 뒤에서 무당 여인의 말고삐를 잡았다.



"분명히 부어이 잡을 적에는 괜찮았는디... 어쩌서 이란디야.... 어쩌서."



총잡이 여인이 앞에서 한탄했다.


나리는 궁시렁궁시렁 두 신령의 뒷말을 하기 바빴다.


이때다 싶어 무당 여인에게 가까이 몸을 붙였다.



"그, 저기."



무당 여인이 무슨 일이냐며 날 보았다.


무당 여인의 분홍색 눈동자 속에 내가 들어가있었다.


정작 말을 하려니까 입이 안 떨어졌다.


이야기꾼하면서 쌓았던 화술이네, 약팔이하면서 쌓았던 입방정이네 하는 일체는 다 쓸모가 없었나보다.


그렇지, 참! 이야기꾼이라.


책의 한구절을 인용해보았다.



"달이 예쁘구려."


"달은 뜨려면 한참 멀었는데요?"



말마따나 해가 쨍쨍했다.


달타령을 한 내가 잘못이지, 그래.



"그런 게 아니라 비유적 표현이오."


"그래요?"



사람 무안하게 그래요는 또 뭐란 말인가.


하다못해 "무슨 뜻인데요" 했으면 설명이라도 했다.



"풀꽃은 자세히 보아야 예쁜 법이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법인데-."



다른 구절을 읊었지만 이번에도 먹히지 않았다.


무당 여인이 천진한 낯으로 "풀꽃이요? 그래서요?" 라며 되물었다.


하긴, 이 시대면 이걸 알아들을 리도 만무했다.


이 시대에 알아들을 만한 구절이라....



"천산 선관도 나는 싫고, 삼공 육경도 나는 싫소. 나는-."


"싫단 것만 말하는 때에요?

저는 겨울이 싫더라고요. 추워요.

지금도 너무 춥지 않나요?"



아이구 이 화상.


가슴을 두어번 두드렸다.



"어찌 그리 무식하시오! 책 좀 읽으시오 책 좀!"


"깜짝이야,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답답하니까 그렇지, 왜는 무슨 '왜' 요!"



신경전 아닌 신경전을 벌이며 애를 태우고 있으니, 멀찍이서 사람이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카타콤으로 처음 우릴 안내했던 그 아이다.


어쩐지 숨이 가빴다.



"어떻게 된 거에요?

요괴가 보이질 않는데."


"싹 모인 걸 일망타진했소."



사정을 말해주었다.


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이 마을에 오게 된 얘기며 뭐며, 떠들다보니 말이 길어졌다.


얘기가 끝날 즈음엔 지하도 입구까지 와있었다.


아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 지팡이로, 저주를 풀 수 있을 거라고요?"


"예."



못 믿겠는데- 라며 아이가 머리를 기울였다.



"그야 뭐, 직접 보면 알지 않겠소."



지하로 진입했다.


마침 산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머리 보인다. 힘 줘! 힘 빡 줘!"


"힘... 주고 있어요오."


"그럼 더 힘을 줘야지! 젖 빨던 힘까지!"



보통은 '젖 먹던 힘' 이라고 하지 않나.


'젖 빨던 힘' 이라고 하니까 좀 야한데.


무당 여인이 속닥거렸다.



"젖을 빨다니, 어쩜 그렇게 야시시하게 표현 할까요.

보통 '젖 먹던 힘' 이라고 하지 않아요?"



와.


나 지금 이 여자랑 똑같은 생각한 거야?


좀 창피한데.



"부끄러우니 아무 말 마시오."


"야한 이야기는 부끄러우세요?

도사님도 순진한 소녀 같은 점이 있으시네요."


"소녀 같은이 아니고 소녀요.

스물 될랑말랑 하려는 숫총... 숫처녀한테 못하는 말이 없구려."



말실수할 뻔 했네.


방을 들어갔다.


산모는 지쳤는지 누운 채 자고 있었다.


신생아도 산파에게 안겨 자고 있었다.


카타콤을 안내했던 아이는 칼을 빼들었다.


무당 여인이 단언했다.



"그럴 필요 없다니까요."


"그건 두고 봐야 알 일이죠."


'찰싹'



누군가 갓난아기의 발바닥을 때렸다.


아기는 눈을 떴다.


부은 눈으로 멀뚱이 우릴 쳐다보던 아기는, 문득 얼굴을 찌푸렸다.



"콜록!"



흉한 조짐에, 앞장선 이가 무당 여인.


"타올라라" 하니 지팡이 끝에 작은 불꽃이 탄생했다.



"지팡이님, 이 아이의 저주를 태우시면 됩니다."


[....]



과묵한 지팡이는 이번에도 과묵하였다.


아이가 한번 더 기침하였다.



"콜록."



무당 여인이 "어라" 라며 말을 더듬었다.



"지, 지팡이님...?

왜 술법을 안 펼치세요?"


[....]


"지팡이님?

지팡이님, 대답 좀 해보세요."



어... 이거 흐름이 안 좋다.


불안과 동요의 위에 아이의 세번째 기침이 얹어졌다.



"콜록."



무당 여인의 애간장이 타기 시작했다.


그 덕에 무당 여인의 말에는 뜻하지 않던 가속도가 붙게 되었다.



"지팡이님? 지팡이님 왜 그러세요.

풀어주신다면서요.

섭섭하신 점이라도 있으셨던 거에요?"



나도 어찌된 일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했다.


나리는 태연하게 충고했다.



"준비하거라."


"뭘... 말이오?"


"행여라도 폭주하였을 때에 대한 준비지 않겠느냐."



폭주.


저 아기가, 이제 기침 한번이면 요괴로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요괴가 되어서 폭주할 때를 대비.


궁금증이 일었다.



"나리는 어떻게 그렇게... 태연한 거요?"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으니까."


[콜록.]



아기는 이번에도, 네번째 기침과 함께 요괴로 변화했다.


덩치는 신생아 그대로였지만, 소의 머리와 인간의 육신을 겸비한 요괴였다.



[그륵.]


"지팡이... 님."



무당 여인이 요괴를 보고 "아, 아아" 라며, 넋이 나가버렸다.


칼을 들고 있던 아이가 요괴를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요괴는 두손으로 칼날을 잡았다.



[음머어어.]


'뿌드득'



요괴에게 잡힌 단도는, 종잇조각처럼 부러져버렸다.


나리가 다른 검을 치켜들자,

요괴는 어정쩡하게 자신을 들던 산모의 품에서 잽싸게 빠져나왔다.



"잡아라! 놈이 달아난다."



얼이 빠진 무당 여인은 지시를 듣고도 이행하지 못했다.


무당 여인의 뒤에는 총잡이 여인이 있었다.


요괴는 쏜살같이 달려서 둘 모두를 지나쳤다.


미로같이 꼬인 지하도를, 요괴는 우리보다 빠른 다리로, 망설임도 없이 헤쳐나갔다.



"끝이 없겠구나.

자네, 도술 쓸 수 있느냐?"


"무슨 도술 말이오?"


"저 놈을 옭아맬 술법이면 아무거나 꺼내거라."



나리가 댕기를 풀어 들이밀었다.


받아들고 손을 꼬아 그림자를 만들었다.


지하도에 흔들리는 불빛이, 범 그림자를 드리웠다.



"현현해라!"



그림자는 한마리 흑호黑虎로 구현화되었다.



[어흥.]


[음머엇!]



요괴는 경악하여 펄쩍 뛰었다.


재빨리 그림자를 풀고 나리가 준 댕기를 던졌다.



"변해라!"



댕기는 밧줄로 바뀌어 요괴를 향해 날았다.


용맹히 날던 밧줄은 그러나, 도중에 허무하게 추락하고 말았다.


날개가 없어서는 아니였다.



'퍼엉'



밧줄이 원래의 댕기로 돌아갔다.


아슬아슬하게 괜찮으리라 판단했는데, 속단이었나.


소 요괴는 도주를 재개하였다.



"어떻게 된 게냐?"


"술법이 풀렸소. 도력이 부족해서 그렇소."


"활! 활을 쏘거라."



멍하니 있던 총잡이 여인이 "나 말여?" 라 했다.


총잡이 여인이 활을 잡아들고 소 요괴를 겨냥했다.


요괴의 도주로는 직선적이라 화살로 노리기엔 안이했다.


하지만 총잡이 여인의 손은 쉬이 활시위를 놓지 못했다.


이번에도 떨고 있었다.



"엠벵... 떨리믄 안 되는디.

침착허게... 침착허게 허자, 응?"



총잡이 여인의 뜻모를 자기암시는 결실을 맺었다.


화살은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파앙-!'


위치는 성공적이지 않았다.


화살은 요괴에게 맞지 않았다.



"하압."


'파앙-!'



한번 더 활시위를 놓는 소리가 울렸다.


나리가 활을 쏜 것이었다.



[머어, 머어엇!]



이번 건 명중이었다.


화살에 맞은 소 요괴는 엎어졌다.


"무얼하는 게냐!" 라며 나리가 꾸짖었다.


총잡이 여인은 지쳐서인지 망연자실한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총잡이 여인은 그러곤, 나리의 나무람을 받아냈다.


제정신이냐는 둥, 이런 실력이 아니지 않냐는 둥, 나리의 꾸중은 길게 이어졌다.


내가 끼어들었다.



"그쯤 하시오. 반성 중이지 않소."


"자칫 떼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느니라. 두둔하지 말거라."



그런 거구나.


나리가 진심으로 화를 내는 건 이 다사다난한 여행 동안 이걸로 총 두 번을 봤다.


두 번 모두, 우리에게 큰 위험이 들이닥칠 뻔한 때였다.


이번에도, 나리의 주장은 안전이었다.



"심정은 이해하겠소.

그래도 보시오. 지쳤잖소."



거짓이 아니라, 총잡이 여인의 몸짓 하나하나에 피곤한 기색이 서려있었다.


그 '피곤' 이 육체에서 비롯된 피곤이 아니란 건 명징했지만.


나리는 총잡이 여인을 쏘아보았다.



"두렵느냐?"


"... 그려. 두려워

두려운디, 두렵기 싫은디, 두려워."



총잡이 여인은 설명했다.



"봤잖여.

에린애가 괴물이 되는 거.

인간을 쭉정이맨치로 만드는 거.

피골이 달라붙어가 해골이 살아움쥑이는 형상이었잖여."


"부엉이 사냥 땐 그런 기색은 없었잖느냐."


"부어이 잡을 때꺼정은 뻐드러질 수도 있단 걸 어렴풋이만 알았으니께. 

금번엔 죽어가는 모습을 생생히 봐부렀고."


"낙호가 본래 우리의 목적지였잖소.

이제 산실에서 태어나는 요괴들만 버티면 되는 게요."


"그라지. 나도 그리 마음먹었는디... 왠지 여기는 시간도 오지게 안 가드라고."



시간이 잘 안 간다라. 난 체감 안 되는데.


'하루밤, 무당 여인과 은밀한 데이트를 즐겨서 그런 걸까'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졌다.


참. 무당 여인.


나리가 총잡이 여인의 고민을 들어주고 있었다.


이제 다투진 않겠지 싶어 무당 여인이 있던 방으로 돌아갔다.


아니나다를까. 머리카락만큼이나 희게 새어버린 안색이었다.



"머리라도 쥐어뜯었소?

바닥에 검은색 흰색 머리카락이 수놓여있구려."


"저 어쩌죠 도사님."



못 들은 척했다.


뭘 묻는지도, 무슨 대답을 갈구하는지 알면서도.



"분명히 지팡이님이 다 해준다고 했는데... 안 했어요."


"그랬지. 나도 봤소."


"못 하시나봐요. 해주."


"...."


"정말 이거 밖에 없는데. 전 지팡이님만 믿었는데."



내게 가능한 건 겨울철 공기에 식은 찬 손을 잡아주는 정도였다.


그리 하였다.


달리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


빠르면 다음화... 엔딩....

그나저나, 출산씬은 대체 어떻게 쓰는 거임
뭔가 출산하고 출산씬은 다른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