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


「정상에서 기다려라.」


제목: 정상인 너에게

작가: 이시린

태그: #현대 #인방 #게임 #프로게이머

링크: https://novelpia.com/novel/91863



2. 소개


「유연우는 올해 스물 하나다. 데뷔는 커녕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1화 中


이 소설은 ACE라는 가상의 e스포츠 게임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게임의 형식과 입지가 롤과 유사한 관계로 롤의 VR 버전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주인공 '유연우'는 ACE 프로게이머 지망생입니다.


하지만 실력이 미진하여 은퇴할 나이가 되어서도 데뷔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정상까지 함께 가기로 한 절친 '강지훈'과의 약속마저 저버리고 꿈을 놓아주기로 결심합니다.


문제는 꿈을 포기하고 지훈에게도 손절당한 그날 '사고'로 TS 당해버립니다. 그리하여 정신적 충격으로 수 개월을 폐인처럼 지내던 연우는 어느 날 우연히 ACE의 정상급 선수가 되어 있는 강지훈을 보게 됩니다.


그 사실에 병적으로 자극받은 연우가 정신병을 이겨낸 끝에 폐인에서 정상인으로, 정상인에서 정상을 노리는 프로게이머 지망생으로 돌아가는 전철을 밟으며 재능을 개화해 나간다는 게 정상인 너에게의 골자입니다.



3. 장점


「빈 잔에 술을 따르면서 유연우는 상념에 잠겼다. (중략) 어린아이가 현실의 잔혹함을 깨닫고 자신의 꿈을 놓아주듯이. 그 역시 그런 절차를 밟아가고 있었다. 유연우라는 사람의 꿈을 낳는, 낭만이란 기관을 거세하는 과정을.」 1화 中


가장 눈에 띄는 장점은 '표현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 필력이 좋은 편이셔서 문장이 다채롭고 안정적이에요. 또한 심리묘사에 강점을 보이셔서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 예컨대 등장인물이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각성하는 장면에서 상당한 뽕맛을 자랑합니다.


「팬은 선수에게 응원과 신뢰를 보낸다. 실수하더라도. 잠깐 기복이 생기더라도. 그들이 다시 멋진 모습을 보여주리라고 믿고 기도한다.」 49화 中


두 번째 장점으로는 'e스포츠식 드라마'를 꼽을 수 있겠네요.


말 그대로 e스포츠의 드라마적인 측면을 잘 살렸어요. e스포츠계의 생태, 재능 없는 프로게이머 지망생의 설움, 팀의 명운을 짊어진 에이스의 심정 등이 글에서 절절하게 묻어납니다.


「"그, 그, 그걸 나한테 입히겠다고?"」 24화 中


그 밖에 볼만한 점으로는 'TS 요소'와 '가내수공업 삽화'가 있습니다.


누나(언니)의 옷 갈아입히기 인형이 된다거나, 유명 ACE 스트리머에게 퐉스짓을 한다거나 하는 여타 TS 인방물에서 기대할 법한 요소들도 쏠쏠한 재미를 자아낼뿐더러 작가님이 해당 상황을 묘사하는 삽화를 직접 그려 넣으시는 편이세요.



4. 단점 or 호불호


「나는, 이렇게 가는 팔이, 이건, 이 몸은, 부푼 가슴이, 얇은 턱선이, 매끄러운 목이, 있어선 안 될 곡선이, 그걸,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가 않아서, 내가 세상에서 사라져서, 내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지가 않아서, 내가 무엇이었는지 떠오르지가 않아서──」 3화 中


취향에 따라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요소들도 존재하긴 합니다.


가장 먼저 '피폐한 도입부'를 꼽을 수 있겠네요.


시작부터 꿈을 포기하고, 절친에게 손절당하고, 정신적 충격으로 폐인이 되는 암울한 전개를 5화 내내 보여줘요. 물론 특유의 표현력과 심리묘사로 높은 몰입감을 자아내기에 피폐씬 내지 무게감 있는 감정묘사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장점일 요소입니다.


「적에게 달려가 궁극기, 최후 발도를 사용한다. (중략) 소드 댄서는 쇄도하는 칼끝을 바라보며 반격 강화 - 칼날 흘리기로 응수한다. 하지만 이것은 페인트다. 여기에 속아 넘어가면 승부 반전의 효과로 최후 발도의 데미지를 입는 건 강지훈 쪽이 된다.」 5화 中


그리고 '자작 게임 설정'도 호불호가 갈리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무슨 맵이 어떻고, 어느 구간에 뭐가 있고, 승리조건은 무엇이며, 어떤 캐릭터가 무슨 스킬들을 지녀서 뭘 할 수 있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때그때 설명으로 들어야 알 수 있거든요.


하지만 작가님께서 글을 쉽게쉽게 잘 풀어쓰시는 편이고, 게임의 설정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맛도 있는 데다, 가상의 게임인 만큼 실재하는 특정 게임을 몰라서 글을 이해하지 못할 일도 없으니 이 부분 또한 피폐씬처럼 양날의 검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ㅜㅜ 2월 말까지만 이렇게 가겠습니다...!」 작가후기


무엇보다 큰 진입장벽은 '비정기연재'라는 점이겠지요.


작가님께서 현생이 바쁘기도 하시고 완벽주의 성향도 지니고 계셔서 업로드 텀이 긴 편이에요. 그 대신 한 화 한 화의 완성도가 높다는 점이 위안거리라면 위안거리겠네요.



5. 총평


「프로게이머의 문은 높다. 평균 데뷔 연령 18.7세. (중략) 유연우는 올해 스물 하나다.」 1화 中


겉으로는 늦게나마 재능을 개화한 프로게이머가 라이벌이 기다리고 있는 정상을 향해 날갯짓하는 여정을 그려낸 소설입니다.


정상의 자리를 놓고 천외천의 강자와 겨루는 일류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천재물 내지 먼치킨물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주인공이 일정선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정상에 집착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소설은 잘 쓰지 못하면 공감을 얻기 어렵거든요. 한낱 일반인인 독자가 이미 구름 위를 거닐고 있는 천재의 병적인 욕심에 공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러나 저는 대다수의 독자가 연우의 행적과 심정에 절절하게 공감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을 가져봤을 테고, 그 꿈을 가로막는 재능의 벽 앞에 좌절해봤을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벽 위로 날아가는 자신을 상상해봤을 테니까요.


연우 역시 그렇거든요.


「날고 싶다. 그 누구보다 높고 멀리 날고 싶다.」 69화 中


꿈을 꾸다, 지쳐 쓰러지지만, 다시 일어서서, 힘껏 뛰기 시작합니다.


강지훈이 기다리는.


「이미 한 번 포기한 몸이지만. 이미 한 번 어긴 약속이지만.」 69화 中


정상을 향해.


「정상에서 기다려라.」 69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응원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더라구요.


이처럼 누구나 공감하고 응원할 수 있는 한 소녀의 레이스를 밀도 있게 연출한 작품이 '정상인 너에게'라고 생각합니다.


재밌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