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화 3화 4화 5화 6화(完)



"연락 늦었네?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야."
"참, 어이가 없군. 너무 뻔뻔한 거 아닌가?"


"뻔뻔한 건 내가 아니라 온힘을 다해 지상파, 뉴스, 유튜브, 인스타 각종 언론 매체로 날 생매장한 너네들이고."

"...그 이야기는 이쯤하지. 지금은 그런 사소한 일따위 거론할 때가 아니니."


냉소적인 비꼼에도 마스터는 기죽지 않고 제 할말을 이어나갔다.


"자네도 뉴스를 봤다면 알겠지. 지금 우리는 꽤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어."

"상황? 뭐가 난감하다는 거지?"


"하아. 안 본 사이에 왜 이렇게 쪼잔해졌나, 《매지컬 브레이커》?"

"그게 아니라 진짜 몰라서 묻는 거야. 누군가가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으로 어떤 마법소녀를 철저히 죽인 이후로 뉴스를 안 보게 되었거든."


"기싸움은 그만하지 않겠나? 자네의 아이같은 투정을 받아줄 때가 아니라네. 담담하게 전하고 있지만, 꽤나 촌각을 다투는 일이야. 내가 자네에게 괜히 전화를 건 게 아니지. 대의 앞에선 별볼일 없는 기싸움은 무용하다네. 자네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 맞아. 네 말에 동의해 《마스터》."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시답잖고 별볼일 없는, 협회에서 정직 처분을 받은 '애물단지'가 뭐가 좋다고 연락한 거야? 네 전화를 받으며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차라리 일개 마법소녀에게 전화를 할 시간에 한시라도 빨리 협회의 높으신 분들이랑 '생산적인 회의'를 하는게 더 낫지 않겠어?"

"......"


"그래. 아무리 정직 처분을 받고, 사회적으로 죽기 일보직전이라도 나는 마법소녀지. 아직 완전히 제명도 당하지도 않았고, 은퇴도 선언하지 않았으니까. 실질적으론 그래도, 서류상으론 분명 아니니까. 그러니까, 네 평소 일버릇대로 협회에 가줄게. 그러나 명심해 《마스터》."


목소리를 낮게 까뇌렸다. 경고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도, 마법소녀도, 공고히 만들어진 사회의 시스템도 망가뜨리고 부셔버리는 나에게 의존할 생각 마. 이제 와서 버린 애물단지 주섬주섬 챙길 생각하지 말라고."

"...알았다. 그럼, 조금 있다가 보지."


뚜욱.


여기까지가 내가 오늘 협회 건물에 들어가게 된 이유였다.


다시는 갈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건물.


그래서 그랬을까. 나는 완치가 된 줄 알았던 공황이 찾아와 결국 약을 복용하고 말았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뒤틀린다. 심장 박동이 빠르고 숨이 가빴다.


청산했다고 생각했던 과거가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과거의 무게에 다시 한번 짓눌리기 시작했다.


"어서오세요. 마법소녀 협회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용무가 있어서 왔거든요."


"용무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혹시 마법소녀이시면 마법소녀 신분증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아니요."


마법소녀 신분증은 정직 처분을 받으며 반납했던지라 수중에 없었다.


"혹시 협회 직원분가 미팅이 있으시다면, 그분의 성함이나 직책을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네. 《마스터》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 분은... 정말 그 분이 부르신 게 맞으신가요?"

"네. 27층으로 오라고 불렀습니다."


"잠시만요."


1층 로비의 안내 데스크에 어쩌다보니 묶여버렸다.


마법소녀로 활동한지 15년. 

충분히 베테랑이고, 안 좋은 쪽으로도 널리 알려져있기에 협회 입구에서부터 가로막힌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마법소녀 《매지컬 브레이커》가 아니었다.


28살 일용직 잡부 김애린이었다.


이름이 여성스럽기에 많이들 착각하지만, 나는 엄연한 성인 남성이다.


그리고 협회에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마법소녀 《매지컬 브레이커》로서 나타났지 한 번도 대한민국 시민 김애린으로 발을 디딘적은 없었다.


아무리 일부 뉴스에서 내 신상을 퍼트렸다고 한들, 관심이 깊지 않은 사람들은 내 변신 전 모습을 모른다.


그렇게 30분이 지났다.


"..."


지금이라도 변신을 할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멤돌았지만 굳이 하진 않았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였다.


나는 로비에 있는 의자에 앉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찾아오는 불안을 달래기 위해 다리를 쉬도 없이 떨었다. 

정수기에 물을 뽑아 마시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떠나고 싶다.


마법소녀를 관성적으로 할 때는 몰랐던 자유가 지난 3개월에 있었다. 나는 새장에 너무 오래 갇힌 나머지 새장 밖을 무서워한채 문이 열렸음에도 도망치지 않았던 멍청한 새였다.


그러나 새장을 탈출한 이제는 안다. 새장은 내게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시간을 들여 천천히 나를 죽여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니 내가 변신을 하지 않고 본모습으로 협회를 찾은 이유는 선언을 하기 위해서였다.


나를 죽이는 새장 안에 다시 들어가지 않겠다는, 결연한 다짐이 가득한 무언의 선언.


"저기, 당신입니까? 《마스터》님에게 용무가 있다는 사람이."

"...그런데요."

"잠깐 저희와 동행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부탁은 아닙니다. 되도록 순순히 와주셨으면 합니다."


30분을 바람 맞혀두고 내 눈앞에 나타난 건, 양복을 입은 두 명의 여성이었다.


팔뚝에 '가드'라고 적힌 두 마법소녀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연행해갈 생각인가 보다.


"밑에다 말도 안 해두다니, 녀석도 어지간하게 정신이 없나 보네."

"《마스터》님을 함부로 말하지 말아주십쇼."


"그래요. 순순히 따라갈 건데, 이거 하나만 물을 게요. 지금 협회가 난리가 났는데 가드 분들은 이럴 여유가 있나요?"


도발에 기분 나빠진 한 여성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여유가 있는지 아닌지는 저희가 판단합니다. 괜히 뉴스 보시고 저희 《마스터》에게 콩고물이나 얻어보려는 심산이신 것 같은데, 꿈 깨십쇼. 저희가 당신과 같은 사람들 한두 번 만나본 줄 압니까? 웬만해선 상대도 안 해주고 내쫓고 싶은데 저희가 많이 참는 겁니다."

"참는 게 아니라 규정이 그런거겠죠. 전에 이런 식으로 귀인 한 명 내쫓았다가 피본 적 있었잖아요?"


"......"

"아. 뒤에 서 계신 분이 누군가 했더니 그 때 제멋대로 국회의원 한 명 내쫓았다가 징계받은 분이셨네. 지금 가만히 뒤에서 선배 일하는 거 구경만 하는 걸 보니 그 뒤론 자중하기로 했나 보죠?"


"당신 지금 말 다했어?"


뒤에 있던 여성이 발도하며 내게 다가왔다.


서늘한 감각이 경종을 울렸지만 어차피 허세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다. 

마법소녀 15년 짬밥이 나를 진심으로 죽이기 위해 칼을 꺼낸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성질 머리 안 죽이고 민간인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칼 들이미는 버릇을 아직 못 고친 걸로 보아 아직 교육이 덜 되었나봅니다, 선배 가디언 《서리달》씨?"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왜 내 이름도, 후배에 대한 일도 다 알고 있는 겁니까?"


나는 짐짓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손끝이 떨리긴 했지만 과도한 억양으로 이를 숨겼다.


"내가 왜 《마스터》를 함부로 대할까, 생각한 적 있나요? 게다가 난 협회 건물의 27층을 알고 있기도 해요. 그럼 보통 사람이 아니겠죠?"

"...설마 선배님이십니까."


저자세로 돌아와 공손해지는 두 가드들.


하지만 나는 저 둘에게 굳이 정체를 알리고픈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무대뽀로 밀어붙였다.


"빨리 안내해요. 27층으로. 《마스터》가 기다리느라 목빠지겠네. 물론, 목빠져서 죽는다면 나야 좋지만 협회는 또 아닐 테니까."

"..."


"뭐해요. 빨리 안내 안하고?"

"27층으로 모시겠습니다."


후우.


이거 참. 마법소녀 《매지컬 브레이커》가 아니게 되니까 협회 들어가는게 어렵다.


나는 공황이 찾아온 걸 티내지 않고 숨기며 가드 둘과 함께 엘레베이터에 탔다.


공황을 숨기는 건 꽤나 고역이었지만, 종지부를 찍기 위해선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글 너무 오랜만에 쓰니까 내가 쓰는게 맞나? 하면서 계속 뒤돌아보게 되네


중화기 소재는 진짜 다음화쯤에 나올 예정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