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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에용!(사실바로밑에이슴)








북부의 변경백 올란타디르 가문에는 두 명의 자식이 있다.


둘은 그리 흔하다고는 할 수 없는 쌍둥이 남매 관계였는데, 그 중 동생쪽은 날 때부터 병약하여 성인이 되기 전에 죽을거라는 의사의 선고를 들을 정도였다.


부모는 그 말을 부정하며 아이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손을 썼지만 증세를 유지하는 것이 고작일 뿐, 아이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진귀한 약재와 용하다는 치유사들을 불렀지만, 병은 낫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건강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부모조차 아이의 쾌유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고, 그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던 그 때.


아이의 목숨을 구한 것은 그의 쌍둥이 누나였다.




쌍둥이 누나는 동생과는 정반대로 건강한 아이였다.


동생의 건강을 누나가 빼았었기에 저런 게 아닌가 하고 주위에서 수근거릴 정도로 그녀는 재능이 넘쳤다.


검술과 마법 양쪽에 우수한 소양이 있었고, 10살의 나이에 이미 가문의 웬만한 기사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정도였으니까.


그녀는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나서도 학생 중에서는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의 실력을 자랑하다가, 어느 날 방학 때 돌아와 이제는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도 못하는 동생의 파리한 모습을 보고는 다음날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둘뿐인 후계자 중 아들은 대를 이을 수 없을 만큼 병약한데 뒤이어 딸까지 자취를 감추자 올란타디르 가문은 발칵 뒤집혔다.


사람을 보내 대륙을 뒤졌지만 그녀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변경백 부부 사이에서는 셋째가 태어나 후계자에 대한 걱정은 한층 덜게 되었으나 실종된 첫째딸에 대한 걱정을 여전히 계속되었다.


그리고 첫째딸이 사라지고 2년 뒤, 그녀는 사라졌을 때 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다시 저택에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 마 동생. 너 이제 안 죽어."




그녀는 환상의 만병통치약이라 불리는 파믈란 꽃을 들고 돌아와 동생의 병을 고쳤다.


그날로 올란타디르 가문 사람들 얼굴에서는 그늘이 사라지고 저택은 언제나 즐거운 웃음소리가 가득한 장소가 되었다.











"어때?"




올란타디르 백작가의 장남이자 둘째인 이아니온 올란타디르는 문을 열고 나온 시녀에게 물었다.


시녀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도 대지 않은 아침 식사를 내밀어보였다.




"여전하십니다. 식사도 하지 않으시지요."


"안색은? 안색은 어떠한가?"


"건강에 큰 문제는 없어보이십니다. 마왕을 쓰러뜨릴 정도로 강건한 육체를 가지셨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겠지요."


"듣던 중 다행이로구나."




이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래도 몸만 건강하면 사람은 어떻게든 살 수 있는 법이다.


십년이 넘는 시간을 병마와 싸워왔던 그였기에 육신의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아는 사실이었다.




"일단 평소 즐겨드시던 메뉴를 옆에 놓아두고 오긴 했습니다만, 드실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알겠네. 수고했네."




시녀가 남은 음식과 식기를 처리하기 위해 주방으로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본 이안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쌍둥이 누나인 옐레나 올란타디르가 지내는 방의 굳게 닫힌 문이 눈에 들어왔다.


한참 동안 슬픈 눈빛으로 문을 쳐다보고 있던 이안은 이내 무언가를 다짐했는데 문앞으로 걸어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올렸다.


작게, 하지만 확실히 들릴 정도로 노크를 했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다시 노크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형님, 실례하겠습니다."




이안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커튼을 쳐둬서 캄캄한 방 안에는 무언가 적힌 종이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그 중 한 장을 집어 읽어보려 했지만, 마법에 대해 그리 깊은 지식은 없는 이안은 눈앞이 핑핑 도는 것을 느끼며 제자리에 종이를 내려놔야 했다.




방안에 그의 누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부자연스럽게 부풀어 오른 이불이 그녀가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줬다.


이안은 조심스럽게 의자를 끌어다가 침대를 마주보는 위치에 앉았다.




"형님...주무십니까?"




답은 없었다. 작게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다행히 그녀가 아직 살아 있다고 안심할 수 있게 해주는 증거였다.




"형님...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형. 그녀는 동생이 자신을 누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질색했다.


뭔가 소름이 돋는다나? 그렇기에 자신을 누님이 아니라 형님이라 불러줄 것을 요구했다.


그때도 그녀는 이안의 영웅이었기에, 소년은 기꺼이 그 이상한 호칭을 사용하는 일에 어울려주었다.




형. 그래. 그녀는 일반적인 누나보다는 형에 더 가까운 존재였다.


웬만한 남자들보다 괄괄한 성격을 가진 레나는 어릴 땐 머리 긴 선머슴으로 불렸을 정도였으니까.


그녀는 활력이 넘쳤고, 용기로 가득했다. 종종 동생이 누워 있는 침대로 찾아와서 자신이 오늘 무슨 일을 겪었는지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다.




그랬던 그녀가......자유로운 새와도 같았던 누나가 지금은 어째서 이렇게 생기를 잃고 방에 틀어박혀 있게 되었단 말인가.




"마왕이 저주라도 남긴 겁니까? 그놈이 형님의 몸과 영혼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새겼습니까?"




침묵.




"그때 형님과 동행했던 동료분들께 들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세상의 평화를 지키는데 보탬이 되기 위해 기꺼이 동행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서서 마왕과 홀로 싸울 수 있었던 건 형님뿐이셨다고요. 그 싸움에서...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조용히 해줘 이안."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누나의 목소리에 이안은 순간 왈칵 눈물이 나올 뻔했다.


아아, 누님. 어째서. 어째서 그렇게 약해지셨습니까. 늘 태양과도 같던 누님의 목소리가 왜 꺼져가는 잔불과도 같이 위태롭게 들리는 겁니까.




"하지만 형님, 부모님께서 걱정하고 계십니다. 게다가 형님은 마왕을 토벌한 용사가 아니십니까. 형님의 이러한 은거에 저와 같은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마왕이 용사에게 저주를 남겼다, 마왕은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하는 얘기가..."


"그게 무슨 상관인데."


"예?"


"남들이 불안해 하는 게 뭐 어쨌냐고."




레나의 말에 이안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뭐가 어쨌냐고?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그가 아는 누나는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나 완전무결하고 정의로운 사람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에게도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다. 자신의 앞에서 싫은 것들에 대해 불만을 툴툴 털어놓는 누나의 모습은 아직도 똑똑히 기억에 떠오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은 절대 영웅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누군가의 꿈을 깨고 싶진 않다며 영웅을 원한다면 영웅을 연기해주는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가면 아래를 보여주는 얼마되지 않은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에 이안은 약간의 자랑스러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형님..."




그런데 지금, 레나는 가면이 부숴져 내리고 있었다.


이안은 레나의 가면 밑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면 아래에 있는 것조차 가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사고를 근간부터 흔들어버린 어떠한 변화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절대 좋지 않은 변화가 말이다.




"형님? 아아, 그래. 내가 그렇게 부르라고 시켰지."




킥 하고 그녀는 조소를 내뱉었다.




"이제 걍 누님이라 불러. 너도 고생했다. 이런 이상한 년 변덕에 어울려주느라."


"형님!"




이안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의 우상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어째서, 지금껏 누구보다도 세상을 위해서 헌신했던 그녀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누나가, 이제야 겨우 모든 것이 끝났는데 행복이 아닌 절망에 사로잡혀야 한단 말인가.


대체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저는 한번도 그리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 ...역시 넌 정말 착하네."




누나의 입에서 나온 착하다는 말에 이안은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이 악물고 억눌렀다.


그녀는 지금껏 자신을 착하다고 생각했단 말인가. 아닌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은데.


이 못난 놈을. 한때는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고 생각하며 누나를 원망까지 했던 자신을 그녀는 이리도 호의적으로 봐주고 있었다니.


그가 누나에게 받은 은혜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평생도록 바쳐도 갚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다.




"제가...형님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없습니까?"


"네가? 나에게?"


"시켜만 주신다면...가능하다고는 확언할 수 없으나 뭐든지 최선을 다해 해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진 레나의 반응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머리 끝까지 푹 덮고 있던 이불이 스르르 내려가더니, 침대에서 그녀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 것이다.




"...뭐든지라고 했어?"




옐레나 올란타디르의 얼굴에서는 짙은 피로감이 드러났으나 시녀의 말대로 건강에는 거의 문제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녀의 하얀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 그리고 창백한 피부에 피로감이 더해지자 보는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는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형...님...?"




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안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와 코앞에서 멈춰섰다.


그녀는 손으로 동생의 뺨을 쓸어 내리더니 허리를 숙여 서로의 눈높이를 맞췄다.




며칠 째 빗지 않은 그녀의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었고, 방금 전까지 침대에 누워있던 탓에 옷차림도 가벼웠다.


허나 그 모습이 너무나도 고혹적으로 느껴져서, 이안은 순간 숨을 헉하고 들이쉬었다.


누나의 짙은 체취가 그의 콧속을 파고들었다.




"됐다. 네게 뭔 잘못이 있다고."




레나는 동생의 턱에서 손을 뗀 다음 몸을 일으켜 침대로 돌아갔다.


다시 침대에 누운 그녀는 동생에게 등이 보이도록 완전히 몸을 돌렸다.




"나가줘. 혼자 있고 싶어."




무언가 미묘하게 달라진 분위기에 이안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를 원래 위치에 돌려둔 그는 방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누나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언제나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듬직한 등과는 달리, 그 어느 때보다 작고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