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그러므로, 현재 트레이너 자리가 공석인 타이신 양에게 임시 트레이너를 붙여드릴게요.]


[나리타 타이신. 오늘부로, 내가 너의 임시 트레이너다.]




신부복의 남자는 자뭇 엄숙하게 선언하며 내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




"뭔가 말할 것이 있는가? 타이신."


"...아무것도 아니야."




괜스레 입을 삐쭉이며 임시 트레이너의 말에 핀잔을 준다. 


말끔한 신부복에 죽은 표정이 디폴트인 이 남자는 한달 전 타즈나 씨의 등쌀에 떠밀려 계약한 임시 트레이너이자, 스스로를 성당교회의 대행자라 주장하는 이상한 아저씨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하야히데는 '성당교회 출신은 조심해야 해.'라며 내게 단단히 주의를 줬지만, 정작 이 남자는 경계할만한 행동은 커녕 묵묵히 자기 일만 하고 있었다.


슬쩍 곁눈길로 바라보면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서류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임시 트레이너가 보인다. 


감정 없는 로봇 같다고 해야할까. 이렇게까지 툴툴거리는데도 시선을 주긴 커녕 불만 한 마디 내뱉지 않는다.


그 숨막힐 것 같은 분위기에 결국 내 쪽에서 먼저 백기를 들었다. 




"저기, 이만 가봐도 되지? 오늘 트레이닝도 고마웠어."


"기다려라. 타이신."


"?"




오늘 트레이닝 일정은 모두 끝났는데. 아직 더 해야할게 남아있는걸까.


내키지 않는 기색으로 뒤돌아보자 한 눈에 봐도 날카로운 검날이 코 앞까지 내밀어져 있었다.




"흐앗?! ㅁ, 뭐야...!"


"늦었지만 담당과 트레이너 사이가 된 기념 선물이다. 고맙다는 말은 됐다."


"하아??"




기가 막힌 나머지 화악 귀를 뒤집고 노려보자 내색 한 번 하지않는 임시 트레이너가 이어서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너를 위한 선물이다. 반 호엔하임이 사용했던 구시대의 유물이지. 창고를 뒤져봤지만 줄만한 선물이 이것 밖에 없더군."




그렇게 말하며 굳어있는 내 손에 손잡이를 쥐어주었다.




"필요없다면, 거절해도 괜찮다."




선물을 주는 당사자가 직접 손에 쥐어주기까지 하는데 그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엎드려 절받는 느낌이긴 하지만... 선물이라 하니 일단은 받아둘까.


대답 대신 쥐어준 단검을 어떻게든 가방 안에 쑤셔넣자 그걸 본 임시 트레이너가 어색하게나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안 하느니만 못한 미소였지만, 이쪽과 친해지기위한 나름의 노력이라 생각하니 그럭저럭 봐줄만 했다.




"아. 그리고, 지금부터 뭔가 예정이 있는가."


"응? 딱히 없긴 한데..."




설마- 하야히데가 경고한대로 무언가 수상쩍은 짓을 하려는걸까. 


조금은 훈훈했던 분위기에서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좋다. 단지, 함께 식사라도 하면 어떨까싶어 물어본 것일 뿐이니."


"??"




식사라니? 갑자기...?


전혀 예상치못한 제안에 탁 하고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무심코 입이 벌어졌다.




"마침 저녘식사를 하기에도 좋은 시간이다. 뭐, 싫다고 한다면 무리하게 권하지는 않겠다만."




그렇게 말하는 임시 트레이너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도무지 속셈을 알 수 없는 제안이지만, 당장 선물도 받은 마당에 이유도 없이 매몰차게 거절하는 건 여러모로 찝찝한 일이었다.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 선선히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럼 가도록 하지."











"이곳이다."


"...여기라고?"




사이비같아 보이지만 어쨌든 성당을 다니는 신부가 대접하는 식사라길래, 분명 세련된 이테리 레스토랑 같은 곳을 떠올렸는데ㅡ...


눈 앞에 있는 것은 전형적인 중화 요리 가게의 간판이었다.




홍주연세관・태산 紅洲宴歳館・泰山




부담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중국풍의 가게 외관은 오던 손님의 발길도 돌리게 만들 것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트레센 근처에 이런 가게도 있었구나...


묘한 감상에 젖은 사이 곧바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임시 트레이너. 


하는 수 없이 쭈뼛거리며 뒷꽁무니를 따라 들어가자 싱글벙글, 가장된 웃음을 흘리는 소녀가 수상한 일본어로 인사해왔다.




"어서와라해~"




가볍게 인사를 받은 임시 트레이너가 가게 중앙의 예약석 테이블에 앉았다.




"이곳은 나의 단골 가게로, 본격적인 중화 요리를 하는 곳이다."


"흐응..."




첫인상과는 별개로 막상 자리에 앉아 가게 이곳저곳을 보자 약간이지만 기대감이 들었다. 


어쨌든 그 목석같은 임시 트레이너가 자랑하는 가게다. 흥미가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래 기다렸다해."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에 다가온 소녀가 예약했던 음식들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간의 기대를 담아 열어본 접시에는ㅡ





"......"


"우마무스메들의 식성은 대단하다지. 돈은 내가 낼테니, 원없이 먹어도 좋다."




앞에서 말하고 있는게 분명한데도, 임시 트레이너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눈과 코를 제외한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는 무언가가 접시 위에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추천하는 음식은... 바로 이 마파두부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맛을 자랑하고 있지."




[맵다]라는 개념을 넘어 [먹으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냄새.


새빨간 양념 사이로 알 수 없는 초록색 양념이 힐끗 보인다. 


양념으로 붉게 범벅된 회과육은 떨어지는 유성우처럼 작열하는 열기를 내뿜고 있었고, 그 사이에 섞여있는 마파두부는 보는 것만으로도 두 눈에 따가움을 일으켰다.


이런게, 이런게 정상적인 중화 요리 일 리가 없다...!


말문이 막혀 두 눈만 끔뻑이는 사이에 임시 트레이너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벌써 두 접시 째 마파두부를 비워내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 숟가락질을 멈춘 임시 트레이너가 이쪽을 향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먹지 않는건가."


"!!! 먹어, 먹으면 되잖아!"




서둘러 근처에 있는 마파두부 접시를 끌어당기며 숟가락을 들었다.


위험 신호라고 해야할까. 먹으면 진짜... 정말로 큰일 날 것 같지만ㅡ


뭐랄까, 어딘가 얕잡아 보는듯한 임시 트레이너의 눈빛을 보자 울컥하는 마음에 도저히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압...!"




꿀꺽.




......




"?!?!?!?!?!?!?!?!?!!!!?!?!?!?!?!?!?!?!?!!!?!?!"




한 입. 




단 한 입만 먹었을 뿐인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온 몸을 지나 정수리를 꿰뚫는다.


지옥의 겁화 속에서 불타죽는 죄인이 이런 느낌일까.




ㅡ털썩.




제대로된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나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힘겹게 눈을 뜨자, 저녘 노을에 물들어가는 트레이너실 천장이 보였다.


나, 너무 매워서 기절해버린거야...?


인간보다 강한 우마무스메가 기절할 정도라니. 그런걸 음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건가?


채 상념을 마치기도 전에 목에서 지독한 갈증이 느껴졌다. 


우선 물이라도 한 잔 마실 생각에 몸을 일으키자, 




"깨어난건가."




뒤쪽에서, 임시 트레이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힘없이 뒤를 돌아보자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인 임시 트레이너가 소파에서 일어섰다.




"태산에서 쓰러졌을 때는 정말 놀랐었다. 그렇게 피곤했었다면, 무리하게 내 제안에 응할 필요는 없었다."




...뭐라고? 피곤? 피고오오온?!


내가 쓰러진건 당신 때문이잖아!




"정신을 차린 것 같으니 나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지. 아직 성배전쟁도 남아있어서 말이지."


"으윽, 으으으...!"




반박하고 싶은데, 당신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도저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너무나도 매운 음식에 목이 나가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자 문을 열고 나가던 임시 트레이너가 이쪽을 돌아보더니





"그건 그렇고, 고작 중화 요리 한 입에 기절이라니. 나리타 타이신. 너에게 어른의 입맛은 아직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




명백한 비웃음을 띄우곤, 다시금 트레이너실을 완전히 나섰다.




끼이익... 탁.




"...!!!"


(...이 망할 사이비 신부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가방 안에 있던 단검을 꺼내들어 닫혀진 문을 향해 있는 힘껏 내던진다.




콰앙ㅡ!!




우마무스메의 괴력에 힘입어 시끄러운 굉음과 함께 정확히 문 중앙에 꽂힌 단검.


그리고 꽂혀있는 단검을 향해 양 팔을 붕붕 휘두르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으...으으...?! 으으으으!!! 으으으!!"


(본격적인 중화?! 어른의 입맛?! 웃기지 마! 우마무스메가 기절할 정도로 매운 음식이 제대로된 음식일 리가 없잖아!! 두고 봐...! 임시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반드시 모든 중화 요리를 마스터해서, 제대로된 중화 요리가 뭔지 가르쳐줄테니까! 그 때도 지금처럼 비웃을 수 있을지 보자고!!!)




이것은 3년 뒤 열도 최고의 중화 요리사가 되는 우마무스메의 이야기.


단지 그 뿐인 이야기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임시 트레이너가 나리타 타이신에게 선물로 준 단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