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게임과 세계관 설정이 다를 수 있음, 말투가 다를 수 있음



따뜻한 봄날, 모의 레이스가 열렸다. 수많은 우마무스메가 제각각 저마다의 감정을 가지고 트레이너의 눈에 띄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달리는 그런 레이스.

물론 제대로 공부한 적도,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한 적도 없는 그런 아이들이지만 각 지역에서 한 달리기 한다는 소리 좀 들었던 아이들이 모였으니 나름 치열한 경기다.

모의 레이스에서 훌륭한 성적을 받으면 담당 트레이너와 계약할 수 있다.

오직 본인만을 생각하고 위하는 그런 트레이너. 모든 우마무스메가 원하는 첫번째 목표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거의 모든 우마무스메들이 담당 트레이너 없이 데뷔전을 치를 것이다. 그나마도 운이 좋으면 별볼일 없는 트레이너한테 배정받거나. , 제대로 트레이닝을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런 우마무스메들은 둘 중 하나로 나뉜다.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닳고 일찍 포기하거나 혼자 힘으로 좋은 성적을 받아서 다시 한 번 트레이너를 배정받겠다거나.

전자의 경우는 오히려 낫다. 다른 직업을 찾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후자는 대부분 이도저도 아닌 인생이 되고 만다. 심지어 늦게 탈출할 수록 더더욱.

레이스를 나갈 수도 이제 와서 다른 직업을 찾기도 힘든 그런 인생.

 

그리고 나도 그렇다. 8명 중에서 7. 말 그대로 최악.

벌써부터 1착이나 2, 때때로 3착을 한 녀석까지도 많은 트레이너들이 에워싸서 계약서를 내밀며 계약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 이하의 아이들에게는 싸늘한 눈빛만이 가해진다. 그 흔한 동정심도 없다.

신경 쓸 가치도 없다는 것이겠지.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숙소로 돌아가려는 순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뭐야? 길 막지 말라고.”

 

망했다. 잘못 말했다.

눈 앞에 있던 건 트레이너였다. 신입 트레이너라는 배지가 있기는 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게 아니다. 7착의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말이 너무 세게 나가버렸다.

이제라도 저자세로 나가야하나?

하지만 트레이너는 미소를 잃지 않고 계약서 한 장을 내밀어 주었다.

아니, 이건 계약서 따위가 아니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다.

주변에서 하위권들의 질투와 부러움의 눈빛이 느껴졌지만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신입 트레이너라서 못 미더우려나? 하하... 그럼 만약 내년 6월 전반까지 G1에서 우승을 못 시켜주면 계약 해지를 하도록 할게. 그러니 계약해줄래?”

...당연하지! 나중에 말 바꾸지 말라고?!”

그럼 잘 부탁해? 다이와 스칼렛?”

 

그렇게 그와 처음 만났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참 웃긴 트레이너였다. 대부분의 우마무스메들이 G3에서 우승을 못하고 G2에서 우승한 우마무스메들도 손에 꼽는다. 그런데 G1 우승?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나도 알았고. 어쩌면 트레이너는 나를 단순히 스펙 요소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트레이너가 생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다음날, 트레이너와 간단한 테스트를 했다.

테스트의 결과를 본 트레이너는 뭔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설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재능이 없었나?

바로 계약 해지를 하지는 않겠지?

그건 안 돼! 더 열심히 뛰어야 해!

그렇게 계약 해지를 당하지 않기 위한 치열한 테스트가 끝났다.

 

그 다음날, 트레이너실로 들어가자 열심히 고민하고 있는 트레이너가 보였다.

 

! 어서와. 다이와 스칼렛. 여기 앉을래?”

 

트레이너는 환한 미소로 맞이하더니 의자 하나를 건네주었다.

살짝 본 그의 노트에는 빽빽하게 적힌 글씨와 다양한 트레이닝 계획이 적혀져 있었다.

저 노력이 나를 위한 것이라니...

고작 7착한 나를 위해...

그때 트레이너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설마... 안 돼! 어떻게 온 기횐데!

 

...저기 계약 해지만큼은...!”

 

급한 마음에 책상을 내려치자 살짝 금이 간 것 같았다.

트레이너도 깜짝 놀란 것 같았지만 금세 미소를 되찾았다.

 

걱정 마. 다이와 스칼렛. 이건 그냥 너의 테스트 결과야. 계약 해지를 할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

 

다시 진정하고 종이를 확인하자 정말 어제한 테스트 결과가 적혀져 있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다리가 풀리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선 물어볼 게 있는데. 왜 단거리 선입으로 달린거야?”

단거리가 빨리 끝나고 선입은 그냥?”

...그렇구나? ...좋은 이유네. 근데 고칠 필요가 있겠어.”

 

트레이너가 종이를 가리키자 스태미나라고 적힌 부분에 단거리 칸보다 조금 높게 솟아있었다.

 

보면 넌 마일이나 중거리가 더 잘 어울려. 그리고 스피드는 확실히 빠르고 파워도 준수하니까 도주나 선행이 좋겠어. 빨리 끝나는 게 좋다고 했으니까 마일 도주로 하는 거 어때?”

..그래! 괜찮네!”

 

사실 하나도 안 괜찮다. 무슨 소린지 하나도 이해 못 했으니까. 사실 이 정도로 열심히 해줄 줄 몰랐다.

담당이라고 해봤자. 트레이닝 종류만 던져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동이었다.

 

그럼 다이와 스칼렛, 트레이닝 하러 갈까? 미리 예약했으니까 가자.”

? 지금 시간은 예약하기 어려웠을 텐데?”

그래도 난 네 트레이너니까. 이 정도는 해줘야지.”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 사람을 위해 모든 걸 해내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그리고 반드시 우승을 해내 그를 웃게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스칼렛이라고 불러.”

? 뭐라고?”

다이와 스칼렛 말고. 스칼렛이라고 불러. 그게 더 나으니까.”

그래. 스칼렛 가자.”

 

그렇게 걸어가는 그의 등을 보니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G1 우승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강한 믿음이 생겼다.

 

그래. 가자.”

 

******

 

보드카, 압도적인 달리기로 데뷔전을 제패합니다!”

다이와 스칼렛은 2착으로 마무리합니다.”

 

졌다. 정말 노력했는데...

눈물이 핑 돌고 그동안의 노력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순간, 트레이너가 다가왔다.

걱정이 덮쳤다. 실망했으면 어쩌지? 괜찮을까? 끝인가?

그 순간, 수건 한 장이 머리를 덮었다.

 

잘했어! 스칼렛! 전보다 기록이 더 빨라졌는데? 정말 대단해!”

 

그가 한 것은 구박도 실망도 아닌 칭찬이었다.

어째서? 1착이 아닌데? 실망해도 되는데?

하지만 트레이너는 여전히 웃으며 바라보았다.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다.

 

왜 실망하지 않는 거야? 고작 데뷔전에서도 우승을 못했는데?”

그거야 전보다 빨라졌으니까? 걱정마, 스칼렛. 넌 충분히 대단하니까, 자신감을 가져!”

 

그 말이 마음 속 무언가를 건드렸다.

그게 뭔지는 지금도 모르지만 하나 확실한 건 나는 그때를 기점으로 달라졌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한 단계 성장한 그런 느낌이었다.

 

******

 

다이와 스칼렛! 미승리전에서 우승을 차지합니다!”

 

미승리전부터

 

다이와 스칼렛이 5마신 차이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G3

 

격차가 점점 벌어집니다! 주력이 쇠하지 않습니다!”

~~! 다이와 스칼렛 6마신 차이로 따돌리고 튤립상을 제패합니다!”

대단합니다! 최근 엄청난 행보를 보이고 있어요! 정말 G1을 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G2까지

말 그대로 파죽지세였고 기적이었다.

모의 레이스에서 7, 데뷔전에서 2착이었던 그런 우마무스메가 G2에서 우승을 차지해냈다.

정말 엄청난 일이고 때문에 성장의 다스카나 힘숨다 정도로 불렀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트레이너, 오늘은 저기 가자.”

그래. 오늘은 스칼렛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아싸! 각오해? 오늘은 정말 마음 놓고 놀 거니까!”

 

이렇게 경기가 끝나고 트레이너랑 같이 놀러 가는 것이다.

흠흠...꼭 데이트 같지만 아직은 아니다. 후후...아직은.

 

우와, 혹시 다이와 스칼렛이랑 트레이너세요? 혹시 나중에 제 트레이너 해주실 수 있어요?”

...저도요!”

 

하지만 꼭 이런 달달한 분위기를 망치는 애들이 있다. 특히 트레이너를 노리는 녀석들. 트레이너가 뛰어난 건 알아가지고.

그렇지만 트레이너는 거절을 잘 못해서 몇 분 동안 잡혀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는 안 되지. 지금은 소중한 시간이거든.

팔짱을 끼고 꼬리로 다리를 감싼다. 그러자 앞에 있던 아이들도 눈치챘는지 뻘뻘대며 돌아갔다. 물론 우리 눈치 없는 트레이너는 당황한 것 같지만.

 

트레이너, 지금은 나한테 집중해. 얼마 안 되는 소중한 시간이니까.”

하하, 알겠어, 알겠어.”

 

그러면서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아까의 기분이 풀리네.

좋아. 다음 레이스도 화이팅 해볼까?

 

******


다이와 스칼렛. 4착으로 마무리합니다.”

 

G1의 벽은 높았다. 지금이 5월 전반이니 앞으로 남은 기회는 단 한 번. 그 순간 예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럼 만약 내년 6월 전반까지 G1에서 우승을 못 시켜주면 계약 해지를 하도록 할게.’

정말 해지하지는 않겠지? 아닐 거야. 그래, 무려 G2 우승까지 해냈는데 그럴 리 없을 거야. 계약을 하기 위한 말이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긴장이 조금 풀렸지만 혹시 모른다. 다음 레이스에서만큼은 우승을 해야만 한다.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안 된다.

 

트레이너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