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없게도 클래식에는 닿지 못했다


리멸렬하게 청운의 하늘 위로 흩어져버린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지리멸렬 : 이리저리 흩어지고 찢기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음


30년 간 이루지 못했던 꿈이 드디어 그의 눈 앞에 아른거린다


첩산중과도 같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도처럼 밀려오는 관객들의 함성을 향해 나아간다

*노도 : 무섭게 밀려오는 큰 파도


섭게 쫒아오는 동기들의 추격을 끝내 뿌리치고


능했던 그 말은 청운의 하늘을 가장 먼저 달려나갔다

*현능 : 현명하고도 재간이 있음






https://youtu.be/xBZw_-nR0bk





그 말은 바로 1998년 사츠키상과 킷카상을 우승한 '98 클래식 황금세대 중 하나인 세이운 스카이.


세이운 스카이의 마주인 니시야마 시게유키는 아버지의 목장을 물려받아 마주가 된 케이스다. 시게유키의 아버지인 니시야마 마사유키는 니시노 플라워라는 G1 3승마를 포함해 말 998두를 소유했던 어마어마한 개인마주였지만, 운이 없게도 클래식 전선에서 우승한 말은 한 마리도 없었다. 그는 나이가 들어 마주에서 은퇴하고 아들인 시게유키에게 목장과 말을 넘겼지만, 클래식에서 우승한다는 소원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채 그대로였다.


그러한 비원을 이루어 준 말이 바로 세이운 스카이. 그의 부친은 프랑스와 영국의 G1을 이긴 명마였지만, 자마들의 성적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이미 세이운 스카이가 활약하던 90년대 말에는 다른 혈통에 밀려 도태될 예정인 혈통이었다. 그러한 혈통 때문이었을까, 세이운 스카이는 활동하던 당시에 경쟁자들에 비해 그다지 강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츠키상에서 최종 직선에서의 스퍼트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세이운 스카이는 사츠키상을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클래식 매치인 더비에서는 본인이 사츠키상에서 이미 꺾었던 스페셜 위크와 킹 헤일로에게 밀려 3번 인기를 받았다. 하지만 진영에서는 세이운 스카이의 장점이 스피드가 아닌 스테미나라고 판단했고, 주전 기수였던 요코야마 노리히로와 상의해 각질을 선행에서 도주로 변경하고 킷카상을 대비한 연습 레이스로 4세 이상의 말(고마)들과 맞붙는 교토 대상전(G2, 2400m)으로 정한다. 교토 대상전에서 세이운 스카이는 무려 레이스 중반에 10마신차가 넘는 대도주극을 펼치며 자신의 각질을 확실한 도주로 각인시킨다.




https://youtu.be/YYO2kfHw2tA





킷카상에서 세이운 스카이는 초반에 엄청난 속도로 도주를 시도한다. 세이운 스카이가 무리하고 있다고 생각한 후방의 기수들은 속도를 높여 무리하게 추격하지 않았다. 후방의 말들은 거리를 유지한 채 세이운 스카이의 체력이 닳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킷카상 직전의 레이스였던 교토 대상전에서 대도주극을 펼친 세이운 스카이였지만, 마지막 구간에서는 거의 따라잡히는 모습이 나왔었기 때문이다. 2400m의 레이스에서도 버티기 힘들었다면, 3000m의 레이스에서는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최종 직선에서도 세이운 스카이는 따라잡히지 않았다. 세이운 스카이는 초반 선두를 잡은 뒤, 일부러 중반에는 속도를 늦추며 체력을 보존했다. 그러나 후방의 기수들은 여전히 세이운 스카이가 엄청난 하이페이스로 도주를 시도하고 있다고 믿었다. 결국 레이스 도중 체력을 온전하게 유지한 세이운 스카이는 최종 직선에서 밀리지 않고 1착을 따내며, 마주의 아버지가 30년간 품어왔던 클래식 레이스 우승을 무려 2회나 이루게 해준 고마운 말이 되었다. 킷카상에서의 승리는 진영의 전략적 선택의 결과였고, 동시에 세이운 스카이라는 말이 가진 능력의 결과였다.




https://youtu.be/hNBSaB4brwc





세이운 스카이의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그의 혈통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세이운 스카이의 종마로써의 가치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마주는 세이운 스카이가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부실한 종마로써의 성적에도 불구하고, 한가롭게 방목을 하며 세이운 스카이는 은퇴 이후 평화로운 마생을 보냈다.


심지어 마주는 그의 혈통이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이 소유한 명마인 니시노 플라워와 교배해 니시노 미라이라는 자마를 낳게 해주기도 했다. 이후 니시노 미라이의 손자인 니시노 데이지가 2022년 나카야마 대장해(장애물, Jpn1)를 우승하며 세이운 스카이의 혈통에서 G1을 따낸 자마가 등장하며 세이운 스카이의 혈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청운의 하늘을 달려나간 번개여, 영원하라."


마주인 니시야마 시게유키가 세이운 스카이를 추모하며 비석에 남긴 글이다. 비록 그의 혈통은 보잘 것 없었지만, 세이운 스카이는 마주의 비원을 이루어 준 위대한 말로 일본 경마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