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백일장 채널


인생은 톱니바퀴와 같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쳇바퀴 같은 삶.

핑크빛 로맨스도, 하늘빛 판타지도, 덮쳐오는 위험 따윈.

그런 인생을 겪은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결국 인생이란 반복의 반복이다.

그것의 다른 이름이 평화다.

평화를 바라면서, 다른 한 편으로 위험과 반전을 원하는 생물.

그것이 인간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반복되는 삶이 밋밋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안정을 원한다.

그래서 그나마 위험하지 않은 변화를 원하는 것. 그것이 여행이고 인간관계다.


일상은 결국 잘못이 아닌, 당연한 것.

그런 시각을 가지면 쳇바퀴같은 삶도 쳇바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쳇바퀴라고 해도 모두가 겪는 것이다.

무언가 어제와 다르지 않은 삶을 바라는 것은 누구나 같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쉽게 달라지지 않는 단단하고 견고한 벽과 같다.

그래서 인간은 또 후회한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힘든 오늘 때문에.



이런 생각을 반복하며 일상은 나쁘지 않다고 자기최면을 하는 나라도 결국 일상에 불만을 가진다.

학교를 거치고 학원을 거치고 거리를 거치고 집에 가는 반복.

무한반복으로 설정한 비디오와 같은 애니메이션.

회색이라는 생각 밖에 안 드는 하루하루가 계속되는 나날들.

그리고 오늘과 같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

그런 밤이 반복되어 왔다.

무채색으로 채워진 오늘의 기억을 필름을 되감듯이 돌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새벽이었다.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듯한 찝찝함.

기쁨도,슬픔도 느껴지지 않는 마음 속 한 구석을 가지게 된 듯한 기분.

회색으로, 석화된 듯한 그 한 구석을 되돌리려 해 봐도 되지 않고.

문득 내 감정을 되돌아 보니 난 이젠 기쁜 일에도, 슬픈 일에도, 충격적인 일에도 어떤 움직임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것은 충격을 받지 않기 위한 나의 자기방어일까.

아니면 그저 반복적인 일상에 익숙해져 버린 나의 한 모습일까.

더 이상 이런 불면에 시달리는 나날을 버리기 위해 음악이라도 듣기로 했다.



유투브를 키고 잠 오는 노래를 검색해 가장 위에 뜨는 곡을 틀었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그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

감미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피아노 선율과 함께 울린다.

노래가 누군지 확인해보았다.

악뮤의 이수현의 자작곡.

악뮤에서 작곡은 이찬혁이 하는 줄 알았는데,동생도 작곡을 시작한 건가.


"오늘 하루도 여전히 힘든 하루를 견디고

어제와 다르지 않은 똑같은 일상이 불안한 지금"


눈을 감고 멜로디를 음미했다.

한숨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가사다.


일상이 좋다고 아무리 나에게 최면을 걸어도 과연 이게 좋은 삶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난 인형이 돤 것 같았다.

난 부품이 된 것 같았다.

난 무생물이 된 것 같았다.

시간낭비를 하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또 새벽이 오면

가까워진 아침에 더워진 이불을 걷는다"


문득 눈에 손을 대 보니 눈물이 나고 있었다.

해는 매일 뜨고 밤은 매일 오고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확신이 없었기 떄문이다.

이대로 잠을 잔다는 것은 오늘의 나를 끝낸다는 것.

오늘의 나는 오늘의 나로써 제대로 살아왔을까.

어제와 그저께를 담습하는 나날을 살아오지 않았는가.

이대로 오늘을 끝내도 될까?


"또 잠이 오지 않아 그제서야 난 돌아본 내 맘이

까맣게 물들여질 때까지 덧칠만 하고 있었어"


마음 한 구석이 감정조차 느끼지 못하는 회색 구역이 된 기분을 항상 느껴왔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못하게 된 것 같았다.

일상의 지루함과 답답함마저 이 노래를 듣기 전엔 느끼지도 못했다.

내가 왜 그렇게 지쳤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여전히 아름다운 너이기에

오늘 밤은 좋은 꿈을 꾸길 바래"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밤에 잠이 들었다.

오늘은 어제와 달랐기 때문에 잘 수 있었던 것일까.


다음 날 아침, 상쾌하게 일어났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왜일까.

결국 오늘 있을 것도 언제나와 같은 일상이다.

그럼에도 다른 기분이 든다.

왜일까.

그것에 대한 답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비일상이 아닌 일상이니까.

반드시 소설처럼 모든 답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난 아직 어제와 오늘이 다른지 모른다.

내가 달라진 걸까.

그렇지만....

내가 달라졌다는 것부터, 비일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