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이게 무슨..?"
 뜻밖의 서류에 부장님은 충격을 받으신 듯 그 자리에 얼어붙으셨다.
 부장님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류를 몇 번이고 다시 살펴보고서야, 이 서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달으신 듯 했다.
 "저기.. 최주혁 사원? 혹시 회사 생활에 애로사항이 있다면 가감 없이.."
 "없습니다, 부장님."
 부장님의 낯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 최주혁 사원.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금 최주혁 사원이 제출한 인사이동 신청서..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 사유는 신청서에 적어두었습니다."
 부장님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최주혁 사원. 우리 솔직해집시다. 최 사원이 요청한 부서가.. 선물 배송부요?"
 ".. 네, 그렇습니다."
 부장님은 몸을 앞으로 내밀어 말소리를 낮췄다.
 "최주혁 사원.. 아시잖습니까? 선물 배송부는.. 거긴 사실상 유배지라고요, 유배지..! 게다가.. 선물 배송부 직원 대부분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채용되는 알바인데.. 거길 가시겠다고요?"
 ".. 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선택을 하신겁니까?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는데요.."
 ".. 조금 더 다양한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실무 경험을 쌓아 회사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월급 박봉에, 다른 부서들과는 달리 연장근무를 밥 먹듯이 하고, 승진은 꿈도 못 꾸고, 사내에서 무시받는 그 부서로 자진해서 가시겠다고 하신거.. 아마 우리 기업 역사상 최초일겁니다."
 ".. 내용 상에 하자가 없다면, 허락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무슨 영문으로 이런 요청을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한번만 더 생각을.."
 "아닙니다, 부장님. 생각이 바뀔 것 같지 않습니다."
 부장님은 허탈한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으며 힘 없이 말했다.
 ".. 이만 가보시죠."
 나는 인사를 드리고 방을 나왔다. 인사이동 신청서 내용에 하자는 없었으므로, 아마도 곧 인사이동 신청서는 받아들여질 것이다.
 사실 부장님의 말씀 중 틀린 부분은 없었다. 선물 배송부가 유배지라는 사실을 모르는 직원들은 없었다.
 유배지라고 불리는 선물 배송부로 인사이동을 신청한 이유는.. 이주혜 사원 때문이였다.
 지난번 그 일을 해결한 이주혜 사원은 회사 고위 간부들에게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그녀가 곧 본사로 갈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그녀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출발선부터 달랐다. 상위 20% 안에 들어 위장 직업을 무료로 받으면서 시작한 그녀와는 달리, 나는 턱걸이로 겨우 합격한 직원이였다.
 그녀가 지난번의 그 일을 해결하고 난 뒤 돌아가는 길에, 그녀의 시선과 관심을 눈치 챘다.
 그녀는 나를 걱정하는 듯 보였다. 혹여나 내가 그녀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듯 보였다.
 만약.. 혹시라도 본사로 떠나게 될 그녀가 나로 인해 발목이 잡히지 않기를 원했다. 그녀가 나를 걱정하는 그 마음 때문에 본사행을 포기한다면, 그것만큼 나에게 부끄러운 것은 없었다.
 '남에게 피해는 주고 살지 말자.' 부모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이셨다. 나는 그 말을 어기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쩌면 이 선택도, 그 말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련지 모르겠다.
 인사이동 신청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받아들여졌다. 부서 이동을 위해 짐을 챙기는 나를 보며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내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몇몇은 내가 윗선과 모종의 거래를 하고 선물 배송부로 옮겨가는 것인지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짐을 챙기는 것에만 열중했다.
 짐을 실은 상자를 들고 빠져나오려는데, 저 멀리서 이주혜 사원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여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이제야 내 소식을 들었는지, 그녀는 얼굴이 달아오르도록 달려온 듯 했다.
 그녀가 내 앞에 멈춰서자, 나는 그녀의 눈을 피했다. 그녀가 나를 설득하려한다면 그것은 나에게도, 또 그녀에게도 피해가 되는 일이였다.
 숨을 고르던 그녀가 달려오면서 고민한 듯한 첫마디를 꺼냈다.
 ".. 이유는 묻지 않을게요, 제가 생각한거.. 맞죠?"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우리 두 사람이 출발선이 다르다고 생각하세요? 절대로.. 무슨 동료나 친구로서 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세요?"
 "동료나 친구도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직급이나 계급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가 크지 않다면 관계는 유지되지만.. 아니라면 어차피 깨어질 관계죠."
 "다른 분한테 그런 아픔을 겪으신 것 같은데.. 저는.."
 "다른 분이 아닙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네..?"
 그녀가 놀란 듯 되물었다.
 "대학교나 스펙, 뭐든지 평균 이하였던 저한테 이 회사에 입사할 수 있는 천금같은 기회가 생겼고, 저는 가까스로 그 기회를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고 나선 제 주변의 취업을 못 한 친구들과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고요."
 "..."
 "그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 차이를 신경쓰지 않고 원래의 관계를 유지하려하지만, 그 벌어진 차이는 절대 관계를 유지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와 이주혜 사원은 출발선이 달랐음에도.. 지금까지 잘 버텨왔습니다. 그러니.. 이쯤하면 충분한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마지막 인사를 하고 그대로 그녀를 지나쳐 걸었다.
 처음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을때와는 달리 복잡한 마음이 들어 선물 배송부로 가는 길 내내 그 생각을 떨쳐내려 애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