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담당자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알았다는 담당자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문을 닫고 물러 나왔다.


 보고는 모두 끝났다. 집으로 가려면 내려가는 계단을 타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항상 답답할 때나 무언가 고민이 생길 때면 반드시 가는 곳이 있었다. 홀 역시 이미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 파악한 듯, 출구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녀를 보고서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녀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모든 심연의 사신들의 집무처, 제령의 탑. 심연 정중앙에 있는 가장 높은 건물. 일명 '끝없는 어둠'. 그 이름을 들은 모두가 민망함에 소름을 느끼지만, 그 외관을 보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바로 그 이름. 심연 정 중앙을 바늘처럼 찌르듯이 솟은 검은 탑은 마치 그 안으로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그 암흑의 탑에서 일반 사신들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노대.

 그 곳에서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붉은 빛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시선은 탑 바로 위, 심연의 하늘 정 가운데로 향해 있었다. 하늘 저 높은 곳에서는 심연을 밝히는 부글거리는 용암이 끝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그녀를 노리고 들이붓듯이. 하지만 용암은 그녀에게로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투명한 무언가에 막힌 듯, 하늘 정중앙에서부터 여러갈래로 뻗어져 나가 심연의 가장자리로 뻗어 흘러 내려갔다. 사신 집체교육 때에 영혼들이 발하는 힘이 모인 역장으로 인해 용암은 일정 수준 이상을 침투할 수 없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듯도 했지만, 그녀는 어려운 것은 모두 잊어 버리는 여자였다. 그저 그녀는 자신을 덮고 있는 우산이 있다고 단순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새빨갛게 자신을 물들이는 용암 줄기를 응시하였다.
 

 "홀."


 그녀와 같이 하늘에 흐르는 싯누런 용암의 줄기를 쳐다보고 있던 홀은 딱히 시선을 돌리지 않고 대답하였다.


 "왜 부르나."


 "어떻게 하면 영혼들과 계약을 잘 할 수 있을까요? 고개 돌리지 마시구요."

 

 "와, 저기 봐봐. 사람들 많다. 그치?"
 

 홀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원론적인 답이 아니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대답이 곤란한 질문에 아예 그녀를 등져 버린 그의 시선은 이제는 탑 아래로 향했다. 그녀는 얄밉게 말을 돌리는 그녀의 사역마를 째려보았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시선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해골바가지를 보며 다시 한번 한숨을 쉬고서는,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지 라고 자조적으로 되뇌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탑 아래 광장을 내려다 보았다.

 제령의 탑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광장으로 둘러 싸여 있다. 재미있는 것은 조형물들이 대부분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 반해, 바닥은 모두 새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심연의 역사에 따라 하나 둘씩 더해지는 하얀 바탕에 검은 예술품들은 마치 눈 덮인 숲과 같았다. 어떤 것은 나무마냥 길게 뻗은 모습을 하고 있고, 혹은 언덕의 일부가 아닌가 싶은 정도로 거대한 것들도 비일비재했다.  심연의 빛은 유동적이었기에, 조형물들은 움직이지 않는데도 그림자들은 하얀 바닥 위에서 춤을 추듯 너울거렸다. 그 사이를 다니는 티끌같이 작은 사람들의 행렬이 더해지면 마치 길거리는 스스로 꿈틀대는 듯 하였다. 몇 번이고 올라온 곳이지만, 새삼 기괴한 광장의 조형이 용암 대신 그녀의 시선을 빼앗았다. 그녀는 그 형상에 시선을 놓아 두고 자신이 이 일을 하는 이유를 다시금 곱씹어 보았다.


 모든 생명체는 영혼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생명 기능의 정지 - 죽음으로서 영혼은 육체와 분리가 된다. 영혼은 죽음을 맞은 그 때부터 아주 짧은 순간동안 현세에 머물고 소멸하는데, 이 순간 안에 사망자가 존재하는 현세의 공간에 영계의 시간대를 동기화시키면, 그 영혼을 잠시 잡아둘 수 있게 된다. 사신과 천사들은 이 동기화 기술을 '영계 치환'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이 기술을 사용하여 소멸 직전의 영혼을 짧은 시간동안 잡아 두고, 계약을 통해 심연 또는 천국으로 인도한다. 계약을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영혼들은 원래 그들이 향하던 곳 - 무로 돌아가게 되고, 계약에 동의한 영혼들은 살아 생전의 기억을 그대로 들고 각 영계에서 사신 혹은 천사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이 영계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원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 원리가 맞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계약상 약관이라던가 영계 치환과 같은 부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살아 생전의 기억을 그대로' 라는 부분을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는 죽기 전의 기억이 없었다. 아무것도.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