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그 누가 선하단 말인가.


선하다는 건 아직 악해질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


“------!”


새빨간 서리가 유성의 머리에 앉았다. 그는 얼음장같이 차가우면서도 끓어오르는 듯한 뜨거움을 느꼈다.


“네가 아픈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


그들 사이의 대화는 없었다. 그 날 공사장 바닥엔 한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가축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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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혁이가 어젯밤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 위치는 반장한테 말해뒀으니 알아서들 가보고.”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들이 교실을 가득 채웠다. 

그 중에는 민혁의 친구들도 섞여있었다.


“이 새끼, 또 구라치네.”

“저번에는 병원이라더니, 이번엔 장례식장이야? 진짜 독하다.”


그들은 민혁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벌떡

일어나서는 유성에게 다가가 뺨을 때렸다.


“야, 너 어제 걔랑 같이 있었잖아. 왜 저러는 거 같냐?”

“... 잘 모르겠어.”


다시 한 번 뺨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대답 빨리 하라고 분명 말했었는데, 나 무시하냐?”

“아니...요.”

“그래. 앞으로도 까먹지 말고.”


그 순간 닫혔던 앞문이 다시 열렸다. 사이로 튀어나온 건 담임이었다. 


“유성이는 점심 먹고 교무실 들려~”


잠시간의 정적을 깨는 종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아이들 속에 홀로 가만히 앉아있는 남자. 그에게서 탁한 그림자가 삐져나왔다. 교실을 집어삼킬 정도로 큰 어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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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째깍


점심시간이다. 자유시간이라고도 불리운다. 말 많은 일상고 양아치들로부터 벗어나 방해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소한 자유도 그에게는 사치이자 반역이었다.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이 교무실 문 앞에서 멈췄다. 그는 가만히 서서 혼잣말로 담임이 자신을 어째서 불렀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 진짜 그놈이 죽긴 한건가?”


민혁과 유성의 일은 모두가 아는 비밀이었다. 일상고를 다니는 사람뿐 아니라 학교 앞 분식점 아주머니와 편의점 알바생들도 둘 사이에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어, 왔니. 어제 민혁이랑 같이 있었지? 여기 형사님한테 무슨 일 있었는지 다 말하면 돼.”


담임은 쌩하고 돌아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교무실에는 단 둘 뿐이었다. 


“뭔 일 있었는지 육하원칙으로 적어.”

“저... 근데 아무것도 안했어요.”


쯧쯧쯧.


노골적으로 혀를 차는 형사. 


“야, 너 잠재적 가해자야. 피해자가 죽은 장소가 공사장이고,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너인데 말 잘 해야 할거다.”

“... 죄송합니다.”


그 후 시곗소리와 펜소리만 남아 적막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참을 진술하던 유성이 잠시 숨을 돌릴 겸 고개를 들었다. 때마침 형사도 잠에서 깼고 교무실에는 그의 동료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와 있었다.


“박민혁 자살이랜다. 더 조사하지 말라고 고함을 치시는데, 어쩔 수 있겠냐.”


형사는 이유성을 슬쩍 보더니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반문했다. 


“누가 자기 머리를 벽돌로 내리쳐서 자살하냐? 무조건 타살이지.”


“-----”

“------”


그들은 몇마디 더 주고 받다가 슬슬 교무실에 교사들이 돌아올 시간임을 눈치채고는 겉옷을 챙겨 나갔다.


다음 날.


한국은 큰 변화를 겪었다.



“새해 아침부터 형법이 전면 개정되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국가의 근간이 흔들린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뉴스에서는 사적제재가 허용되었음을 공표하였다. 중점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에게만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한편 인권단체들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는 어떤 기준으로 가려내며 국가에서 처벌을 허용할 범죄자들의 신상을 공개한다는 것은 살인청부나 다름없다며 비판했다.


그 시각 이유성이 수업을 듣고 있던 교실은

이민혁이 국가가 공개한 범죄자 명단에

들어가있었다는 사실에 떠들썩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유성을 괴롭히던 무리는 혹여나 이민혁과 엮여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애들아. 미안하다.”


교탁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기 시작하는 몇몇도 보였다. 범죄자 명단은 아직도 업데이트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애들아! 이민혁 말고도 우리반에 더 있는데?”

“누구?”


그리고 세글자.


이유성.


업보란 무엇일까. 


뉴스에 나오는 악인들이 법에 의한 처벌을 받지 않고 영구적인 신체 결손 혹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고를 겪는 것.


보통의 경우에는 그런 것들을 업보라고 한다. 


“이유성이 적혀있다고?”

“하긴. 관상부터 글러먹긴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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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종이 청명하게 울렸다. 유일하다고 봐도 될만큼 모두의 동작이 일치하는 시간.


종례가 끝난 뒤 제각기 분주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팔을 모아 그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학생이 있었다.


“저 새끼 아침부터 왜 저러냐?”

“뉴스 안 봤어? 쟤 업보 거의 다 찼을걸?”


복도에서 들리는 소리에 이유성은 몸을 좀 더 움츠린채 귀를 막았다.


“벌 안 받으려고 쇼하네.”

“그러니까. 근데 뭘 했길래 업보가 쌓였나 몰라.”


뚜벅뚜벅-


반 앞을 서성거리다가 돌아가는 학생들. 그들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잦아들고 나서야 팔을 푸는 유성.


그는 다시 한번 휴대폰을 꺼내 카르마 어플을 실행했다. 새하얀 배경에 펼쳐진 수많은 정보들 중 푸른 색 게이지 바가 눈에 들어왔다.


“이걸 진짜 어떡하냐...”


아침에 한바탕 벌어진 소란에 비해 그의 신변에는 위협이 가해지지 않았다.


정부가 발표한 범죄자 명단에는 전국민이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만 적힌 게 아니라서 다행이네.”


만에 하나 적힌 이름이 이유성뿐이었어도 별다른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거 뭐, 사라지지도 않고. 평생 마음 졸이며 사는건 싫은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다음 여느 학생과 마찬가지로 가방을 챙기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초조한 마음이긴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라도 만나면 사건이 생길테고, 그렇다면 업보가 쌓일 가능성이 존재하게 된다. 


고개를 푹 숙이고 휴대폰 액정만 틱틱 두드리는 와중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글을 찾았다. 


/(rlfls12):본인 방금 업보 줄임 질문 받는다. (사진)

/ㄴ(zhRlfl91):너 왜 파란색이냐? 나만 빨간 색임?

/ㄴㄴ(roal):나도 빨간 색임. 혹시 선업이랑 악업 아니냐?

/ㄴㄴㄴ(rhdidfl):맞는 듯, 아는 사람중에 한평생 기부하신 분 있는데 푸른 색이시더라. 

/ㄴㄴㄴㄴ(rnrn38):근데 푸른 색이 무슨 색이냐? 

/ㄴㄴㄴㄴㄴ(clxk):넌 그냥 나가라


진위 여부 판단을 위해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았다. 푸른 색은 선업이며 붉은 색은 악업이라고 알려져 있는게 대부분이었다. 


“그래 역시 이게 맞지. 내가 무슨 악인이야.”


삐리릭-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티비에서 사적제재를 하는 생방송이 방영되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어깨에 칼이 박힌채 피를 흘리며 도망치는 남자가 보였다. 


한눈에 봐도 도망치는 악인의 얼굴은 나약해 보였다. 누군가 그를 구해줘야 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자막으로 나타난 본모습은 추악하기 그지없었다.


살인, 특수 폭행, 절도, 사기, 방화.


죄목이 나열되었다. 어떻게 이런 흉악범이 사회에 돌아다닐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적제재로 세상을 청소하는 사람은 누굴까하고 쫓는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털썩-


몇달 전 뉴스에 나온 연쇄살인범이었다. 술을 마신 심신미약 상태와 더불어 정신병으로 형량을 줄인 범죄자다. 그런 자가 모범수로 사회에 다시 나온다는 뉴스가 아직도 생생했다.


어지러운 기운이 가라앉지 않아 다시 신발을 신고 공원으로 향했다. 가볍게 런닝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불쑥-


“키히히, 죽어라!”


수풀 사이에서 튀어나온 남자가 망치를 휘둘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피...피피피 피해? 끼익!!”


도저히 사람이 낸거라곤 믿을 수 없는 괴성이 본능적으로 행동하도록 정신을 깨웠다.


그러나 누군가와도 싸워본 적 없었기에 그의 신체능력은 제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대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도망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뿐이었다. 그 모습은 사족보행으로 퇴화하게 된 인류를 떠오르게 했다.


쉭--!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칠 수 없었다. 공기를 찢고 날아드는 망치는 분명 무언가를 으깨기에 충분했다. 


이유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의문을 품고 눈을 살짝 떠보았다.


“어라? 이게 뭐지..”

“그르륵...”


괴한은 입에 개거품을 풀고 쓰러져있었다. 망치에는 핏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나타나는 경찰과 기자들. 셔터소리와 빛이 성가시긴 했지만 좀전의 위기와 비교하면 참을만 했다.


“아이야. 괜찮니?”

“네, 일단은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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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병원에서 나오는 이유성. 겉보기에 심하게 다친 부분은 없었지만 혹시나 하여 진료를 받았다. 


“대체 어떻게 망치를 막은거지? 눈 감았다 뜨니 쓰러져있으니 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선선한 날씨에 하늘을 보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빌딩숲을 천천히 훑었다. 대형 전광판에서는 

사건 당시 근처 시시티비에 담긴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이게 뉴스에 바로 나올 정도였나?”


전광판 속 이유성의 얼굴 아래에는 푸른 색 게이지가 80%, 범인의 얼굴 아래에는 붉은 색 게이지가 100% 차있었다. 


이어서 화면이 전환되고 아나운서가 말했다.


“잇따른 제보에 의하면 붉은 색 게이지를 가진 악인은 푸른 색 게이지를 가진 선인을 공격할 수 없다고 하는데요. 영상에 나온 것처럼 선인이 공격 당할 시 접근을 막는 특수한 에너지가 신체에서 뿜어져 나온다고 합니다.”


옆에 자리한 이상호 교수는 아나운서의 설명에 덧붙여 한가지를 강조했다.


“이건 기횝니다. 대청소를 할 시간이 찾아온거죠. 악인들을 사냥합시다. 더 나은 세상으로!”


뉴스는 갑자기 꺼졌다. 그리고 대혼란의 1개월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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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붉은 색 게이지를 가진 악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덜 선한 사람들이 그들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이유성은 외쳤다.


“더 나은 세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