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승불조차 꺼져버릴만큼 추운 추위.

“최시의! 일어나!”

그 추위속에서 쓰러질뻔한 나를, 그녀가 차서 일으켰다. 격통이 내 등에 느껴진다. 아래에서 보니 늘 그렇듯 큰 체구와 흑색 장발의, 매와 같은 눈빛과 호랑이 같은 입으로 날 노려보는 홍립 선배가 보인다.

“아직 명화적 은신처 까지는 멀었어. 그새끼들은 더할텐데, 지금 이렇게 뻗음 어떡해?“

“죄.. 죄송함다… 박홍립 선배님…“

“다시 불이나 붙여놔. 언제 어디서 그놈들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옙!”

그말을 끝으로 홍립 선배는 나에게는 눈길 한번을 주지 않으며 주변을 경계한다. 바위에 기대어, 나는 내 얼굴에 흩날리는 눈발 때문에 모아지지 않는 정신력을 다시 집중하여, 화승에 불을 다시 붙이려 시도한다. 

한번, 두번, 세번.


망할, 틀렸다. 정신력만 소모한것 같다. 그 반동으로 편두통이 찾아온다. 머리를 감싸쥐고, 총은 떨궈지고, 몸은 눈쌓인 바닥에 쓰러지고, 들숨만이 반복된다. 눈앞이 꺼매진다. 홍립 선배의 욕지거리와 원망또한 점점 흐려진다. 몸이 약간 들어올려지는 듯한 감각을 마지막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눈앞은 여전히 검정, 하지만 소리는 들린다.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닌 머리에서 내보내는 소리가 들린다. 기쁨에 가득찬 소리다.

“시의야, 가서 잘 지내야 혀~? 우리 걱정일랑 하지 말고!“

“안돼! 할머니 싫어! 나 안갈꺼야! 엄마! 나 가기 싫어!”

둔탁한 둔기소리가 들리고, 그에 맞선 금속음이 뒤이어 들린다, 그리고 다시끔 들리는 뭉둥이 소리에 그쳐버린 환도. 

“계집년이 꽤나 반항심이 심하군. 꺾는데 꽤나 오래걸리겠어. 아무튼, 약속한대로 여기 포상이오.“

쨍그랑 거리는 엽전소리가 들리고, 철푸덕 무언가 쓰러지는게 들린다.

”아이고 감사드립니다요. 애미야! 느그 서방좀 불러와라! 이것들 어케 처리할건지 논의좀 하자꾸나! 이거, 너무 많은데 어찌….“

”그럼 이만.“

질질 끌리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리며, 귀의 감각이 서서히 돌아온다. 

“…의….끼…!“

“망….병…..년…“

홍립 선배 덕분에,


날숨이 다시 내쉬어진다.

“어으…으…”

“내가 너때문에 시발 이 고생을…. 뭐야, 일어났냐 폐급련아?! 니는 돌아가면 뒤질줄 알아라. 아니, 그냥 여기서 죽어볼래?“

선배는 쥐고있던 칼의 칼등으로 내 왼팔을 사정없이 가격한다.  감각이 없던 팔에 강제로 감각이 돌아온다. 

“…에휴, 됐다. 죽여봤자 말만 더나오지. 아이고 내신세야… 저급마도도 다 못익혀서 툭하면 기절하는 저딴 빻은 폐급련이랑 한조라니…”

선배의 내밀은 팔을 잡고 일어나 상황파악을 위해 주변을 둘러보니 사방에 온통 피와 시체뿐이다. 우리가 있는 붉은 모닥불 둘레로 두건쓴 도적들(명화적 같이 보였다)몇놈은 온몸에 피를 쏟은채, 또 몇놈은 말라비틀어진 나무 뿌리에 휘감긴채 죽어있다. 그나마 살아있는것처럼 보이는것은 나와 선배, 그리고 갈색머리의 나보다 더욱 어려보이지만 포승에 묶여있는 여자애다. 피멍이 들어있다. 


“이 여자애는 왜 잡은검까?”

“아, 그년? 걔는 니가 업어. 명화적 애들 마도소녀중 하나야. 생포해서 가지고 가야해.“

“알겠슴다.“

“돌아가자. 전투 하는동안 눈보라도 그쳤으니.”

나는 그녀를 다리를 후들거리며 여자애를 업는다. 절대적으로 보았을땐 무겁진 않지만 내 볏대같은 다리로는 역시나 버겁다.  후들후들 추위와 무게때문에 떨며, 나와 선배는 감영으로 다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