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하려고 화장실에 들어와, 화장지를 뜯으려 했다. 문뜩 내려다 보니 하이얀 벽 타일에 기다랗게 핏자국이 보인다. 안경을 벗으면 앞이 잘 안 보이는 편이라, 냄새를 맡아 보았다. 철ー녹슨 쇠창살에서 날 것 같은 비린내. 누구의 피일까. 어젯밤의 면도는 거울 앞이지 변기 쪽이 아니었는데. 화장실에 CCTV가 달려있었다면 어땠을까.

CCTV는 누가 보고 있을까? 나인가, 거울 너머의 나인가, 그 너머의 제 3자인가. 샤워기를 틀어 지우려 해도 어지간히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 CCTV가 이미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러면 누군가는 나의 보잘것없는 나신을 관음하는 것인가. 관음인가. 감시인가.

감시라면 나는, 언제부터 감시당한 것일까. 누가 감시를 하는가. 혹 감시자가 흘린 피인가. 그렇다면 감시자도 인간인가. 그것보다 나는, 인간인가ー

물이 드디어 적정 온도에 맞추어졌다. 우선 샤워부터 하고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