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붉게 타오르네


 파문(波紋) 하나 없이 잔잔하던 호수는 어디가고


 나를 집어삼킬 듯 맹렬히 타오르는 업화의 불길만 남았는가



 나의 열정은 이미 다 타버린지 오래인데


 어째서 나의 세상은 이리도 밝게 타오르는가


 전신의 화상이 나를 난자하는구나



 괴로움에 몸을 웅크리고 가만히 있었네


 얼마 안가 불길이 멎고 빛이 사그라드니


 찾아오는 어둠에 불쾌한 익숙함을 느끼는 내 꼴이 우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