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는 사람을 죽였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붉은 피가 분수처럼 샘솟고 싸늘한 시체가 피웅덩이 위에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손에 칼을 쥐고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버지를.

 방 안의 공기는 무척이나 후덥지근했다. 어머니께서 나를 껴안아 주실 때도 느꼈지만 사람의 체온이라는 것은 내 생각보다도 더 뜨거운 것이었다. 시선의 이끌림인가 혹은 거부인가 나는 바닥에 쓰러진 어머니를 외면하고 초췌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아버지는 그 뜨거운 피를 안면에 온통 뒤집어 쓰고도 고통스러운 기색을 내지 않으셨다. 칼을 잡은 손끝만 덜덜 떨릴 뿐이었다. 아버지의 턱 끝에 모인 핏방울이 피부를 타고 내려가더니 이내 중력을 무시하곤 솟구쳐 아버지의 목덜미에 긴 흔적을 남겼다.

 다리에 힘이 풀린 아버지는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의 몸뚱이 위로 포개어 누웠다. 그러자 나는 갑작스레 내가 마치 두 사람의 밑에 깔린 듯이 숨을 쉬기 어려웠다. 심장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짜릿한 충격에 나는 땀을 흘림에도 오한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가 틀어지기 전에 갔던 내 생에 마지막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을 탔을 때와 같았다.

 높이 올라갔다 떨어지며 세상도 내려앉는 듯한 느낌. 나는 그 느낌을 좋아했었기에 놀이공원에만 가면 바이킹만을 타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날리곤 했다. 여느 때처럼 즐겁게 바이킹을 타다 갑작스레 기구가 운행을 중지했다. 가장 희열을 느끼는 지점인 높이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도중에 멈췄기 때문에 나는 그 찝찝함에 눈을 부라리고는 담당자를 찾아 분주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주위엔 담당자는 커녕 이용객 하나 보이지 않았다.

 구름 한 점 없던 푸르른 하늘이 꺼지고 핏빛을 띄는 해일이 하늘을 덮고 나를 집어삼키려 아가리를 쭈욱 벌렸다. 바이킹의 가장 밑 쪽에 있던 나에겐 슬프게도 저항할 힘이 없어 밀려들어오는 재앙을 비명 하나 지르지도 못하고 받아들일 뿐이었다.

 장례식장에서도 나를 동정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친척들은 남은 짐덩어리를 서로에게 넘겨주기 바빴고, 내 부모를 잘 알지 못하는 조문객들은 아내를 죽이고 자살한 내 아버지를 힐난할 뿐이었다. 몇몇은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말을 하며 끝없이 공허하여 불쾌하기까지 한 나의 눈을 바라보기를 두려워했다.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레퍼토리였다. 주인공이 부모를 잃고, 남들의 조롱과 경멸어린 시선을 받으며 불행의 무저갱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어쩌면 뻔한 이야기. 하지만 나에겐 그렇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길 거부했다. 나까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실이 되니까. 아무리 수없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내 이야기가 오르내리더라도 나는 아득바득 버텼다.

 그때의 나는 바람에 흔들려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은 하나의 촛불과 같았다. 버티는 것이 안쓰러울 정도로 거의 쓰러진 상태에서 발악하며 불타오르는 불길. 소리 없는 아우성을 거칠게 울부짖으며 촉루가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나는 굉장히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부모의 유산이 없었던 것이 아니였기 때문에 당장은 먹고 살 수 있었고, 일터에서 좋은 사장님을 만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성인이 되고선 군대를 다녀와 좋은 선임들을 만나고, 전역 후엔 회사에 들어가 좋은 상사들을 만나고,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나의 아버지가 살인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 당시의 기자들은 계속해서 터지는 유명 연예인의 거대 스캔들과 셀 수 없이 많은 살인 사건들에 묻힌 나의 이야기를 깊게 들여다 보려 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나의 신변은 세상에 밝혀지지 않고 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어느 날엔 헤어진 옛 친구와 연락이 닿아 그와 술 약속을 잡았다. 옛날부터 서로 죽이 잘 맞았던 친구였기에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선 좀처럼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잔에 담긴 맥주를 들이키다 보니 자연스레 취기가 올라왔고, 친구는 제 귓볼을 붉게 물들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그 친구와 헤어질 때의 이야기였다. 나는 내 부모가 죽자마자 학교에 자퇴서를 넣었지만 조심성없는 선생이 학년실에서 동료선생과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용무가 있어 학년실에 왔던 한 학생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소문은 순식간에 전교로 퍼져나갔고, 예전부터 느낌이 쎄했다느니, 관상이 안좋았느니하며 살인자의 아들을 입방아에 올렸다. 

 친구도 나를 두려워했던 적이 있지만 세월이 지나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잘못된 생각이란 것을 깨닫고 속죄하기 위해 나를 보러왔다고 말했다. 그가 눈물이 맺힌 눈으로 나의 공허한 눈을 뚫어져라 보며 내게 용서를 갈구하였다. 내 안의 촛불이 잔잔하게 타올랐다.

 나는 더 이상 그날의 일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식을 버리고 자살한 나의 아버지를 욕해도 나는 받아들였다. 나의 삶이 뻔한 이야기라는 것도 나는 받아들였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용서를 받은 친구가 나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그 후 우리는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고자 친구와 함께 먹고 죽자는 생각으로 술을 퍼마셨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친구가 먼저 나가떨어졌고, 나는 그를 부축하며 그의 가는 길을 배웅해주었다.

 친구와의 술 약속이 있은 지 며칠 후,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사랑스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내는 평소보다 늦은 나를 타박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나 바빠 문자 보낼 시간도 없었다고 변명하면서 나는 멋쩍게 웃었다. 요즘 세상이 뒤숭숭하다느니, 이사를 갈까 고민한다느니하며 어서 빨리 집에 돌아오라 나를 꾸짖고는 전화를 끊었다.

 내 입가에 웃음이 배시시 피어났다. 나는 행복하다. 회사 직원들도 나를 인정해주고, 나의 아내도 나를 사랑해준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행복이 있단 말인가? 나는 하늘을 걷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지하철역으로 걸어들어갔다.

 지하 상가에 들러, 탈취제를 구매하는 걸 잊지 않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