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멋대로 하는 삼국지 모음집

왕윤(137~192)

자는 자사, 태원군 기현 출생. 

문무를 겸비한 엘리트 관료. 고결하고 강직한 한의 충신.

그러나 너무 강직한 성격은 그와 한나라의 명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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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량이 말했다.


"손견은 이미 죽었고 그의 자식들은 모두 어립니다. 이런 허약한 때를 이용해 신속하게 진군한다면 북 한 번 두드리고 강동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일 사신을 돌려주고 군대를 철수한다면 그들이 힘을 키우는 것을 용인하는 것으로 형주의 우환이 될 것입니다."


유표가 말했다.


"황조가 저들 군영에 있는데 어찌 잔인하게 그를 버릴 수 있겠는가?"


"지모 없는 황조 하나를 버리고 강동을 취하는데 어째서 안 된다는 겁니까?"


"나와 황조는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 사이인데 그를 버리는 것은 의롭지 못한 일이다."


결국 환계를 군영으로 돌려보내고 손견의 시신과 황조를 맞바꾸기로 약속했다. 손책은 황조를 돌려보내고 손견의 영구를 영접하자 군대를 철수하고 강동으로 돌아가서 곡야의 평원에 장사 지냈다. 장례를 마친 후 군사를 이끌고 강도에 정착하여 현자를 초빙하고 인재를 받아들이며 자신을 굽혀 겸손하게 남을 대접하니 사방의 호걸들이 점점 손책에게 모여든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한편, 장안에 있던 동탁은 손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말했다.


"내 마음속의 큰 우환거리 하나가 없어졌구나!"


그러고는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이가 몇이냐?"


누군가 대답했다.


"17세입니다."


그 말을 들은 동탁은 마침내 마음에 두지 않았다. 이때부터 더욱 거만하고 난폭해져 스스로 '상보'(주 무왕이 강태공을 부르던 말. 즉 자신이 황제보다 위라는 소리다.)라 부르고 드나들 때는 천자의 의장을 초월했으며 아우 동민(董旻)을 좌장군 호후로 봉하고, 조카 동황(董璜)을 시중으로 임명하여 금군을 통솔하게 했다. 동씨의 종족이면 나이가 많고 적음을 묻지 않고 남자는 모두 후에 봉해졌고 여자는 읍군에 봉했다.

그리고 장안성에서 250리 떨어진 미에 별도로 성체를 축조했는데 25만 명의 인부를 부려 건설했다. 그 성곽의 높이와 두께는 장안과 같았으며 안에는 궁궐을 지었고 창고에는 20년 치 양식을 쌓아놓았다. 민간에서 소년과 미녀 800명을 선발해 그 안을 채웠고 황금과 옥, 채색 비단, 진주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쌓아두었다. 또한 가솔들을 모두 그곳에서 살게 했다. 동탁이 보름 혹은 한 달에 한 번 장안을 왕래했는데 그때마다 공경들 모두 횡문(장안성 북서쪽 문) 밖에서 배웅했다. 동탁은 항상 길에 장막을 설치하고 공경들을 모아 함께 술을 마셨다.


어느 날, 동탁이 백관의 전송을 받으며 횡문을 나간 뒤 길에서 주연을 베풀었다. 마침 량주 북지군에서 투항한 포로 군졸 수백 명이 도착했다. 동탁은 즉시 명하여 술자리 앞에서 어떤 자의 손발을 절단하기도 하고 어떤 자의 눈알을 파내기도 했으며 어떤 자의 혀를 잘라내기도 하고 어떤 자는 솥에 넣어 삶기도 했다. 통곡하는 소리가 하늘을 진동했고 백관은 두려워 벌벌 떨며 젓가락을 떨어뜨렸으나 동탁은 먹고 마시고 담소하며 태연했다. 또 어느 날은 동탁이 성대에서 백관을 모아놓고 연회를 열었는데 모두 두 줄로 늘어앉았다. 술이 몇 순배 돌았을 때 여포가 들어오더니 동탁의 귀에다 몇 마디 속삭였다. 동탁이 웃으면서 말했다.


"과연 그랬군."


그러고는 여포에게 명하여 술자리에 있던 위위 장온을 잡아 대청 아래로 끌어내게 했다. 백관의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종이 붉은 쟁반에 장온의 머리를 받들고 들어와 동탁에게 바쳤다. 백관의 영혼은 몸에 붙어있지 않았다. 동탁은 웃으면서 말했다.


"공들께서는 놀라지 마시오. 장온이 원술과 결탁하여 나를 해치려고 했소. 원술이 사람을 시켜 편지를 보냈는데 내 아들 봉선에게 잘못 전해졌기 때문에 그를 때려 죽였소. 공들은 관련 없으니 놀라 두려워할 필요 없소." *


백관은 "예, 예"하며 흩어졌다.


사도 왕윤은 부중으로 돌아와 그날 연회 자리에서의 일을 깊이 생각하니 마음이 초조해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 밤이 깊어 달이 밝하지자 지팡이를 짚고 후원으로 들어가 도미나무 받침대 곁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때 문뜩 누군가 모란정 주변에서 거듭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살금살금 걸어가 엿보니 다름 아닌 부중의 가기 초선(貂蟬)이었다. 그 여인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왕윤에게 거둬져 부중에 선발되어 노래와 춤을 배웠는데 이제 막 16세로 미모와 재주를 고루 갖추고 있어 왕윤이 친딸처럼 대해줬다. 이날 밤 왕윤이 한참 듣다가 크게 소리쳤다.


"천한 것에게 연정이라도 생겼느냐?"


초선이 깜짝 놀라 무릎 꿇고 대답했다.


"천첩에게 어찌 감히 사사로운 정이 있겠습니까!"


"네게 사사로운 정이 없다면 어찌하여 밤이 깊었는데 여기에서 길게 탄식한단 말이냐?"


"첩의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감추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보거라."


"첩은 일찍 부모를 잃었으나 대인의 은혜와 보살핌을 받아 노래와 춤을 배웠고 게다가 특별한 대접까지 받았으니 첩이 비록 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부서질지라도 만분의 일도 갚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대인의 양미간이 근심으로 가득하신 것을 보니 틀림없이 나라에 큰일이 있는 듯했으나 감히 여쭙지 못했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다시 초조해하시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길게 탄식했습니다. 대인께서 보고 계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첩을 쓰실 데가 있으시면 만 번 죽어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왕윤이 지팡이로 땅을 치며 말했다.


"한나라 천하가 네 손에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구나! 화각(채색 도안이 화려한 누각)으로 따라 오너라."


초선이 왕윤을 따라 화각으로 갔다. 왕윤이 소실들을 큰 소리로 꾸짖어 내보내고는 초선을 자리에 앉히더니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했다. 초선이 깜짝 놀라 바닥에 엎드려 말했다.


"대인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이러십니까?"


"너는 한나라의 천하 백성을 가련하게 여겨다오!"


말을 마치자 눈물이 샘물처럼 솟았다. 초선이 말했다.


"방금 천첩이 말씀드렸듯이 시킬 일이 있으시면 만 번을 죽더라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왕윤이 무릎을 굻고 말했다.


"백성은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위급한 상황에 처했고 군신들은 쌓아놓은 계란처럼 아주 다급한 상황이니 네가 아니고서는 구할 수가 없구나. 역적 동탁이 황위를 찬탈하고자 하나 조정의 문무백관에게는 그 어떤 대책이나 방도가 없구나. 동탁에게는 성이 여, 이름이 포인 대단히 용맹하고 날랜 양자가 있다. 허나 두 사람 모두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무리라 이제 '연환계'를 써서 먼저 너를 여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허락한 후에 동탁에게 바치려한다. 너는 그들 중간에서 방법을 찾아 기회를 틈타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죽이게 하여 커다란 악행을 끊도록 해야 한다. 사직을 다시 지탱하고 강산을 바로 세운다면 모두 너의 힘일 것이다. 네 뜻이 어떤지 모르겠구나."


초선이 말했다.


"첩은 대인께 만 번 죽어도 사양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바라건대 첩을 즉시 저들에게 바치소서. 첩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일이 누설된다면 우리는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다."


"대인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첩이 대의에 보답하지 못한다면 1만 자루의 칼날에 맞아 죽을 것입니다!" **


왕윤은 절하며 감사했다.


이제 일은 어떻게 될까?


* 동탁과 장온: 연의에서는 그야말로 갑자기 장온을 끌고 가 참수하였으나, 실제로는 장온과 동탁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아 동탁이 장온이 원술과 결탁했다는 누명을 씌워 때려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초선: 알다시피 초선은 가공인물이다. 고대 중국에는 초선관을 관리하는 관직을 초선이라 불렀는데, 실제 역사에서 여포가 동탁의 시녀와 사통하여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이를 바탕으로 민간설화를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초선이 왕윤의 수양딸 격이라는 이야기도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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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인물이지만 경국지색 중 하나가 된 초선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