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님. 행님은 범이 무섭소, 아님 일본 순사랑 친일파들이 무섭소?"


 인호가 총신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내게 물었다.

 독립군에 들어오기 전의 인호는 호랑이를 사냥하는 조선 왕실의 착호갑사였다. 때문에 인호의 사격 쏨씨는 백발백중이라 불러도 시원찮을 지경이나, 자신의 착호갑사 시절에 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이야기 하기를 피했다.

 그런 그가 먼저 이런 말을 함에 놀란 나는 탄식을 내뱉으며 답했다.


 "나는 그 둘보다,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 민족의 얼이 모두 뽑혀나가는 것이 두렵구나."

 "그게 친일파 놈들이 하는 짓이지예, 안 그렇습니까? 형님. 형님은 말이오, 그 돌려말하는 버릇 좀 고쳐야 혀. 나 같이 못 배워 먹은 사람은 배운 사람들의 알량한 말에 담긴 깊은 속뜻을 못 알아듣는다니께."

 "그럼 너는 무엇이 제일 두려우냐?"

 "나는 말이지예, 범보단 일본 쪽 놈들이 무섭습니데이."

 "그럼 계속 호랑이나 잡지, 왜 독립군에 들어왔나?"

 "아따, 행님. 거 조선 왕조가 완전히 망해부렸는디 착호갑사 벼슬살이 해봤자..."

 "쓰읍, 이놈이."

 "아이 거 거 참. 글만 읽은 사람이 왜 이리 손부터 올라가? 그리고 내가 호랑이 안 잡아도 일본 놈들이 어련히 알아서 다 잡습니데이. 그리고 내 독립군 들어온 건 그런 이유가 아입니더."

 "그러면?"

 "음. 일단 제가예, 호랑이 잡겠다고 나선 이유는 여자 땜시 그랬습니더. 꽃분이라고, 동래에 제일 가는 기집애가 하나 있는디 갸 어무이가 호환(虎患)을 입었다 카더라고요. 글서 야가 가마이 있으면은 죽여주는디, 호랑이 소리만 들린다카면 게거품 물고 발작을 하더래이. 근디 사냥꾼이 호랑이 가죽들고 관아에서 곤장질 맞는 소리 들리면 또 미친 듯이 좋아혀. 그 웃는 꼬락서니가 또...그 뭐라냐. 하여간에 이뻤습니더. 그거 보고 싶다꼬 혼자서 사냥꾼 노릇하다 몇 번 뒤질 뻔도 했고, 곤장도 여러 대 맞고 그러다 본께네 착호갑사도 들어가고..."

 "어지간히 좋아했나 보구만."

 "뭐, 지금은 친일파 부잣집 놈한테 시집갔습니더. 어쨌든, 그 호랑이가 있잖아예? 괜히 산군(山君)이 아닙니더. 막 그 눈 딱 마주치면, 몸이 얼어붙어서 안 움직입니데이. 야가 또 귀는 얼매나 밝은지 뒷구녕에서 슬금슬금 걸어가도 소리를 막 질러대는디, 우레가 따로 없습니더. 그리곤 막 달려드는디, 한 번에 십 척을 훌쩍 뛰넘더니 앞발로 나무 몸통을 빡 치니께 이 나무 속살이 다 드러나더래? 와, 이건 사람이 잡을게 못 된다 싶었지예. 글서 장정 몇 명이서 조총 쏘면서 힘들게 잡지 않습니까. 그르케 막 잡고 다니는디, 어느 날은 오랜만에 뒤질 뻔 한 일이 생겼습니더. 뭔 총탄 맞고도 버티더니, 막 발악을 카면서 우리 동료들을 막 죽이려 들대요? 그럼 어캅니까? 총구 올리고 놈 머리에 조준했지예. 제가 또 사격 실력은 끝내준다 아입니까...근디, 그 호랑이 뒤로 뭔가 보이는기라. 처음 봤을 땐 그기 황토 위에 양귀비 꽃이 핀 줄 알았는디 자세히 보니께 새끼 범 시체였더래. 그러고 어미 범이랑 눈 딱 마주치니께, 눈을 돌리게 되더래요. 살기가 너무 그득해서 그런게 아이라, 오히려 그게 무언지 몰라서 눈을 피했습니더. 도대체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내가 알 수가 없어서 그랬습니더. 내가 시간이 멈춘 듯이 가마이 있으니께네, 뒤에서 누가 호통을 치더래. 난 깜짝 놀라서 방아쇠에 올려둔 손꾸락을 그만 움직여 버렸지예. 내 동료들이 막 낄낄 웃으면서 커다란 어미 가죽에 눈이 쏠렸을 때, 내는 그 작은 새끼 범한테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데이. 나는 내가 호랑이 잡으면서, 사람들을 구원해주는 영웅이 된 기분이었습니더. 근데 알고 보니까 내는 인간이 아니라 호랑이었습니더. 사람들 물어 죽이는 호랑이었다 말입니더."


 인호가 말을 끝마치곤 고개를 푹 숙인 채 침묵에 빠졌고, 나 또한 할 말을 찾지 못해 잠시 그에 동조하다 머리가 번뜩여 그에게 물었다.


 "한데, 왜 범보다 일본 놈들이 더 무섭다는건가?"

 "그야 당연한 거 아입니까? 그 일본 놈들은 같은 인간이 아입니더. 자식 보는 앞에서 어미를 윤간하고, 어무이 앞에서 자식 총으로 쏴 죽이는 게 그게 어떻게 같은 사람 새낍니까? 그래서 내가 독립군 하는 겁니더. 갸들은 내가 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이잖소."

 "힘들진 않은가?"

 "무어가 힘든데예? 내는 하나도 안 힘듭니더. 오히려 설렙니데이. 내가 내일 아가리에 똥을 쳐 박아 놓은 그 친일파 새끼를 쏴 죽일 수만 있다면 거서 총 맞아 뒤져도 나는 미련 없습니더. 그래도 내일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이야기는 꼭 독립신문에 실어달라 말 좀 해주이소. 뒤져서도 내가 한 짓거리 실린 신문 보고 배꼽 잡고 웃는 놈 옆에서 같이 웃구로."


 나는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웃을 뿐이었다.

 인호는 그날 죽었다. 어미 범이 죽었던 백두대간에서 새끼 범과 마주보며 죽었던 것이다.

 자신이 영웅이라는 치기 어린 꿈을 가짐을 한탄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껍데기 밖에 남지 않은, 내가 보았던 마지막 모습에서 인호는 혼비백산하여 어지러운 군중들 속에서 일본 순경들이 총칼을 들이밀기 전까지 홀로 하염없이 하늘만을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