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떨어트렸어? "


 느닷없이 들려 온 목소리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 보았다. 그 곳에는 아까 도다라가 소환했던 '그 담당자', 군트와 그의 동물형 사역마 돔이 노대 입구에서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군트는 그녀와 같은 사지형 지성체였다. 몸통에 팔다리가 달려 있고 어깨 위의 머리에는 두개의 눈, 두개의 콧구멍, 두개의 귀, 입, 머리카락이 달린. 난간을 향해 걷는 그의 걸음걸이에는 발 끝마다 자부심이 묻어 나왔다. 심연 특유의 검은색으로 재단한 제복을 덮은 어깨 위엔 같은 종족들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는 호감형의 얼굴이 있었다. 살짝 우수에 젖은 듯한 눈에 미소를 머금은 입술, 그리고 그 모든것을 담아 둔 둥근 얼굴형. 어떤 종족이 보아도 귀엽다 라고 느낄만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를 귀엽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꼭 그의 얼굴형때문만은 아니었다.
 군트는 그녀의 옆에 서서 돔에게 손짓을 했다. 일어서면 그녀의 키만할 회색의 거대한 표범은 그의 명령에 따라 그와 그녀의 사이에 섰다. 옆에 서자, 군트의 모습이 돔의 어깨에 가려 사라져 버렸다. 크기를 굳이 비교를 하자면, 그의 신장은 그녀의 허리쯤에 위치했던 것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군트는 돔의 목덜미를 잡고서는 재빠르게 맹수의 등을 타고 올랐다. 어느 새 군트는 돔의 등 위에 서 있었고, 그녀와 비슷한 눈높이가 되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그녀의 담당자에게 간단한 목례로 인사를 하였다.

 "그래서, 뭐라도 단서가 좀 나왔어?"

 "아뇨... 일만 하기 바빴는걸요."

 앞뒤를 모두 자른듯한 질문이었지만 그녀는 담담하게 대답하였다. 낮아진 목소리로, 한층 식은 얼굴로. 군트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그녀와 같이 광장을 바라 보았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말 없는 위로가 담겨 있었다. 죽을 때의 충격에 의한 기억상실은 모든 우주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증상이었다. 처음 심연에 올 때 아무런 이름을 대지 못하는 것은 의외로 흔한 일이었다. 아직 배치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모두들 그녀가 그런 경우이리라 생각했다. 그녀에게 이름이 없다는 것은 군트의 부서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그녀가 이 곳에 있다는 그 사실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단 두 명 뿐이었다.

 "제 생각이 짧았어요."

 군트는 침묵을 깬 그녀의 목소리에 그녀를 바라 보았다. 

 "계약일, 제가 제대로 못할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요. 말도 잘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곡물들도 덤벙대다 놓치는 걸요. 하지만 그래도 영혼들을 데려 오기라도 한다면, 하다 못해 이야기라도 나누면 뭐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건 이야기가 성립될 때의 이야기였어요."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다시 부끄러움으로 붉어졌다. 군트는 그 표정을 짐짓 못 본체 하였고, 그녀는 그런 눈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계약일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능력 있는 분들인지 이제서야 알았어요. 저는 아직 한참 더 배워야 되나 봐요. 괜히 다른 분들 일 방해만 한 것 같고...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너가 미안할 게 뭐 있어. 내가 승인한건데."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군트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렇게 하나씩 배워가면 되는 거야. 알았지?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네."

 방금 전에 홀한테 들은 것과 같은 말이었지만 그 느낌은 전혀 달랐다. 그녀의 얼굴이 다시금 붉어졌다. 그녀는 바닥에서 정면에 흘러내리는 용암으로 시선을 옮겨 조금 더 붉어진 얼굴을 감추었다.
 군트는 물끄러미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 보았다. 그 곳에는 심연의 색채와는 어울리지 않는 하얀 얼굴에 후드 아래로 흘러 내리는 듯한 긴 흑발을 가진 아가씨가 심연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외향으로 유추되는 것은 종족 정도였다. 그녀가 직전에 계약 업무를 나갔던 '최초의 별', 제 1 우주 유인행성 1 의 사지형 종족이 그녀와 비슷하였다. 군트가 그녀를 그 행성으로 보낸 것은 꼭 본인의 요청 뿐만이 아니라 그런 이유도 있었다. 그 역시 그녀의 과거를 찾는 것을 무척이나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단 자신의 생전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자, 반성회는 다 한 거지?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자. 너 이번에 수확할 때 뭐 갖고 왔다고 했더라?"

 이만 하면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군트는 분위기를 전환하기로 했다. 그는 돔의 등에 털썩 주저 앉으며 그대로 자신의 표범을 몰아 출구로 향했다. 그녀는 그런 담당자의 뒤를 말없이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