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목이 답답했다. 가위에 눌린 것일까. 승연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무거운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올린다.

흐릿하여 잘 보이지않지만, 누군가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승연은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아가며 자신의 목을 조르는 사람을 확인하려 한다.

그리고 흐려진 초점이 선명해지면서 상대방의 얼굴이 확인되려는 순간, 그의 몸은 힘이 풀리며 털썩 쓰러진다.

승연은 쓰러지는 순간에도 상대방에게 시선을 놓지않았다. 

상대는 쓰러지는 승연을 보고 크게 웃으며 입모양으로 '병신새끼' 말하고 있었다.


승연은 머리가 땅바닥에 '쿵' 닿자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책상과 의자가 많았고 멀리 칠판이 보였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각자 다른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중에는 자신과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도 있었다. 승연은 다시 고개를 돌려 천장의 형광등을 마주보더니 천천히 눈을 감는다.


잠시 후, 스마트폰 알람소리가 그를 깨운다.

승연은 번뜩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악몽이라면 악몽이었다.

그는 식은 땀을 흘리며 악몽 속에서 자신을 끄집어낸 스마트폰을 빤히 바라본다.

잘못 설정된 알람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승연은 알람을 끄고 나서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자신의 방, 거실로 나와 소파에 털썩 앉는다.

티테이블 위에 놓은 유리병에 담긴 물을 유리컵 한가득 따르고 벌컥벌컥 마시며 악몽으로 놀랐던 긴장했던 가슴을 진정시킨다.


승연은 컵을 내려놓고 소파에 등을 기댄다.

달빛이 와락 쏟아지는 창가로 고개를 돌린다. 아직 잠에 들지 못하고 불빛을 반짝이는 일산의 야경이 두 눈동자에 담긴다.


"우리, 친구잖아."


승연은 오래전에 용준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스무 살 이후부터 시달려 온 우울증이 다시 도지는지, 웅크려앉아 무릎 속에 머리를 파묻는다.



···



그 날도 승연은 애니메이션부와 함께 점심식사를 마치고, 창가에서 신작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떠들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너무나도 낯익은 목소리가 애처롭게 들리는 것만 빼면 다른 날과 다름없었다.

승연은 아이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척하며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힐끔 쳐다본다.

건너편에서 일진무리가 용준의 핸드폰을 빼앗아 창밖으로 던진다고 협박하고 있었다.

용준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잔뜩 겁에 질린 채, 자신의 핸드폰을 가지고 장난치는 일진무리를 보고만 있었다.


"무릎끓고 달라고 하면 준다니까. 빨리 해봐."


이 때, 누군가 일진무리에가 다가온다. 그리고 용준의 핸드폰을 낚아 채서 용준에게 돌려준다.

일진무리는 갑작스런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져 핸드폰을 낚아 챈 사람을 노려본다.

용준도 자신의 핸드폰을 돌려주는 사람을 보고 흠칫 놀란다.

그의 핸드폰을 일진무리에게 되찾아준 사람은 승연이었다.


"뭐 해. 빨리받아. 손 아파."

"어, 어···."


용준은 우물쭈물해하며 승연이 건네준 자신의 핸드폰을 받는다.

일진무리 중 한 명이 승연의 어깨를 툭 친다. 승연의 뒤를 돌아보며 일진과 눈이 마주친다.

일진의 눈은 승연을 잡아먹을 듯 매우 사나웠다. 


"너 뭐냐. 뭔데 우리 방해하냐?"


승연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저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일진을 바라볼 뿐이다.

이윽고 일진이 코앞으로 다가와 욕과 함께 승연에게 질문한다.


"니가 저 새끼 친구라도 되냐?"


승연이 아주 짧게 대답했다.


"어. 친구야."


승연의 대답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정적에 물든다. 일진은 잠시 당황해하는 듯 하더니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승연의 뒤에 숨어있는 용준과 승연을 번갈아보며 비아냥거린다.


"손용준 좋겠다. 이런 좋은친구둬서."


일진은 바닥에 침을 뱉곤, 자신의 무리와 함께 자리를 뜬다. 그리고 둘에게 들으라는 듯 애매한 크기의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병신새끼들. 끼리끼리 노네."


일진무리가 눈에서 사라지자 용준은 승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한다.

그러나 용준이 말을 꺼내기도 전, 승연은 언제 도와줬냐는 듯 용준의 곁을 떠나 애니메이션부 아이들 무리로 다시 합류한다.

용준은 차갑게 사라지는 승연의 태도에 무안했는지 그의 뒷모습만 보며 손가락만 서로 꼼지락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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