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멋대로 하는 삼국지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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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은 병이 완치되자 정사를 의논하러 조정에 들어갔다. 여포는 창을 잡고 뒤따라 들어갔다가 동탁이 헌제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는 그 틈을 이용해 창을 들고 내문을 나와 말을 타고 상부로 달려갔다. 말을 부중 앞에 매어놓고 창을 들고는 후당으로 들어가 초선을 찾았다. 초선이 말했다.


"당신은 후원 봉의정 옆에서 기다리세요."


여포는 창을 들고 들어가 정자 아래 구부러진 난간 곁에 서 있었다. 한참 지나서 초선이 꽃을 헤치고 버들가지를 가볍게 스치며 걸어오는데 과연 월궁 선녀가 따로 없었다. 흐느끼며 여포에게 말했다.


"제가 비록 왕사도의 친딸은 아니지만 친딸과 마찬가지로 대해주셨어요. 장군을 만나 뵙고 첩이 되기로 약속되어 저는 이미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지요. 그런데 태사께서 불량한 마음을 갖고 첩을 더럽힐 줄은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첩은 바로 죽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으나 장군에게 한 번이라도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기에 욕을 참고 구차하게 살아남았어요. 지금 다행히 만나 뵈었으니 첩의 소망도 다 끝났어요! 이 몸은 이미 더럽혀서 다시는 영웅을 섬길 수 없으니 장군님 앞에서 죽어 첩의 뜻을 밝히겠습니다."


말을 마친 초선은 구부러진 난간을 잡더니 연꽃 핀 연못으로 뛰어들려 했다. 여포가 황망히 껴안고 흐느끼며 말했다.


"나도 네 마음을 안 지 오래되었다! 함게 이야기할 수 없음이 한스러웠지!"


초선이 손으로 여포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첩은 이승에서 장군의 아내가 될 수 없으니 내세에 다시 만나기를 기약합니다."


"내가 이승에서 너를 아내로 삼을 수 없다면 영웅도 아니다!"


"첩이 하루를 1년같이 보내고 있으니 장군께서는 가엾게 여기시어 구원해주세요."


"내가 지금 짬을 내어 왔기에 늙은 도적이 의심할까 두려우니 발리 가야하네."


초선이 그의 옷자락을 끌며 말했다.


"장군께서 이처럼 늙은 도적을 두려워하시니 첩신은 밝은 세상을 볼 수 없겠군요!"


여포가 멈춰 서서 말했다.


"내가 천천히 좋은 계책을 마련하겠네."


말을 마치고 창을 들고 가려 했다. 초선이 말했다.


"첩은 깊은 규방에 있으면서 장군의 명상을 우렛소리같이 크게 들어 당대에 유일한 사람이라 여겼는데, 도리어 다른 사람의 제약을 받으리라고는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말을 마치더니 비 오듯 눈물을 쏟았다. 여포는 온 얼굴에 부끄러운 빛을 띠고 다시 창을 기대놓고서 몸을 돌려 초선을 두 팔로 껴안으며 좋은 말로 위로했다. 두 사람은 바짝 몸을 붙이고 차마 서로 떨어지지 못했다.

한편 대전에 있던 동탁이 고개를 돌리자 여포가 보이지 않았다. 마음에 의심이 생겨 얼른 헌제에게 하직하고 수레에 올라 승상부로 돌아오니 여포의 말이 승상부 앞에 매여 있는 것이 보였다. 문리(문지기)에게 묻자 대답했다.


"온후는 후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동탁이 소리쳐 좌우를 물리고 곧바로 후당 한가운데로 들어가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이에 초선을 불렀으나 역시 보이지 않았다. 급히 시첩에게 묻자 대답했다.


"초선은 후원에서 꽃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동탁이 후원으로 들어가니 마침 봉의정 아래에서 여포와 초선이 얘기하는 것이 보였고 화극은 한편에 기대어 있었다. 동탁이 노하여 크게 호통치자 동탁이 온 것을 안 여포는 깜짝 놀라 몸을 돌려 이내 달아났다. 동탁이 화극을 잡고서 그 뒤를 쫓았지만 여포의 걸음이 빨라 뚱뚱한 동탁이 따라잡을 수가 없자 화극을 던져 여포를 찌르려 했다. 그러나 여포는 극을 쳐서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동탁이 극을 주워 다시 쫓았으나 여포는 이미 멀리 달아난 뒤였다. 동탁이 후원을 나가려는데 한 사람이 나는 듯이 달려와 동탁의 가슴에 부딪혔고 동탁은 땅바닥에 자빠지고 말았다. *


동탁이 자세히 보니 바로 이유였다. 이유가 즉시 동탁을 부축해 일으키고는 서원으로 모셔 자리에 앉혔다. 동탁이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여기에 왔느냐?"


이유가 말했다.


"제가 승상부 문 앞에 왔을 때 마침 여포를 만났는데, '태사께서 나를 죽이려 한다'고 말을 하기에 제가 화해시키려 황급히 후원으로 들어가다가 뜻하지 않게 실수로 부딪힌 것입니다."


"그 역적 놈을 참을 수가 없다! 내 애첩을 희롱했으니 맹세코 그놈을 죽이리라!"


"실수하시는 겁니다. '절영지연(絶纓之宴)'이라 하여 옛날 초나라 장왕은 연회 중 애첩을 희롱한 장수의 잘못을 묻지 않았기 때문에 후에 진나라에 대패하여 위태로울 때 그가 죽을힘을 다해 구원하여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초선은 한낱 여자에 불과하지만 여포는 바로 태사님의 심복 맹장입니다. 태사께서 이번 기회에 초선을 여포에게 하사하신다면 여포는 큰 은혜에 감격하여 틀림없이 죽음으로써 태사께 보답할 것입니다. 태사께서는 청컨대 심사숙고 하십시오." **


"네 말도 맞구나. 내가 생각해보마."


이유가 감사하며 물러났다.

동탁이 후당으로 들어가 초선을 불러서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여포와 사통했느냐?"


초선이 흐느끼며 말했다.


"첩이 후원에서 꽃을 구경하고 있는데 여포가 갑자기 다가왔습니다. 제가 놀라 피하려는데 여포가 '나는 태사의 아들이니 피할 필요가 있겠느냐?'라고 말하더니 극을 들고 봉의정까지 쫓아오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그 마음이 불량한 것을 보고 욕을 당할까 두려워 연못으로 뛰어들어 자진하려고 했는데 도리어 이놈이 저를 끌어안고 말았습니다. 막 죽느냐 사느냐 하는데 마침 태사께서 오셔서 목숨을 구해주신 것입니다."


"내가 지금 너를 여포에게 주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초선이 깜짝 놀라 소리 내어 울며 말했다.


"첩신이 이미 귀인을 섬겼는데 지금 갑자기 집 노비에게 하사하신다면 차라리 죽을 지언정 욕을 보이진 않겠습니다!"


말을 끝내고 벽에 걸린 보검을 들어올리더니 스스로 목을 베어 자결하려 했다. 당황한 동탁은 검을 빼앗아 껴안으며 말했다.


"내가 너를 잠시 희롱한 것이다!"


초선은 동탁의 품으로 쓰러지면서 얼굴을 파묻고 통곡하며 말했다.


"이는 필시 이유의 계책입니다! 이유는 여포와 교분이 두터워 이런 계책을 쓴 것이지만 태사의 체면이나 천첩의 목숨은 소중히 여기지도 않는겁니다. 첩이 그놈의 살덩이를 생으로 씹고 말겠습니다!"


"내가 어찌 잔인하게 너를 버리겠느냐? 내일 너와 미오로 돌아가서 함께 유쾌하게 보낼 것이니 걱정하거나 의심하지 말거라."


이튿날 이유가 들어와서 말했다.


"오늘이 길일이니 초선을 여포에게 보내시지요."


동탁이 말했다.


"여포와 나는 부자의 구분이 있으니 주는 것은 마땅치 않다. 다만 내가 그 죄는 더 이상 따지지 않겠으니, 네가 내 뜻을 전하고 좋은 말로 위로해주거라."


"태사께서는 여자에게 현혹되시면 안 됩니다."


동탁이 안색을 바꾸며 말했다.


"그럼 너는 네 처를 기꺼이 여포에게 주겠느냐? 초선의 일은 다시 여러 말하지 말거라. 또 말한다면 반드시 참수하겠다!"


그날로 동탁이 미오로 돌아가겠다고 명령을 하달하자 백관이 모두 나와 절하며 전송했다. 수레 위에 앉아 있던 초선은 여포가 많은 사람 틈 속에서 자신이 탄 수레를 간절하게 쳐다보는 것을 보았다. 초선은 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치 통곡하는 듯 시늉을 했다. 여포는 말고삐를 늦춘 채 낮은 언덕에 올라 사라져가는 수레 뒤의 먼지를 바라보고 탄식하며 아쉬워하다 동탁을 원망했다. 누군가 등 뒤에서 물었다.


"온후께서느 어째서 태사를 따라가지 않고 여기서 멀리 바라보며 탄식만 하시오?"


여포가 돌아보니 바로 사도 왕윤이었다.


"늙은이가 요사이 잔병치레하느라 두문불출하여 오랫동안 장군을 만나지 못했소. 오늘 태사의 수레가 미오로 돌아간다기에 병든 몸을 견디며 나와 전송했는데 기쁘게도 장군을 만났구려. 초선은 잘 지내오?"


여포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일일이 왕윤에게 설명했다. 왕윤은 얼굴을 위로 젖히고 발을 동동 구르며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태사가 이런 금수 같은 행동을 하다니 뜻밖이구려!"


여포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잠시 내 집으로 가서 상의해봅시다."


왕윤은 여포를 밀실로 안내하여 술상을 차리고 정성껏 대접했다. 여포는 다시 봉의정에서 초선을 만난 일을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왕윤이 말했다.


"태사는 내 딸을 간음하고 장군의 아내를 빼앗았으니 참으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소. 하지만 태사가 아니라 이 윤과 장군을 비웃을 것이오! 이 윤이야 늙고 무능한 무리라 말할 가치도 없겠지만, 절세의 영웅인 장군게서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한다니 참으로 애석할 따름이오!"


여포는 분노가 하늘로 치솟아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왕윤이 급히 말했다.


"이 늙은이가 실언한 것이니 장군은 화를 가라앉히시오."


"맹세코 이 늙은 도적을 죽여 이 치욕을 씻고야 말겠어!"


왕윤이 급히 그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장군은 그런 말씀 마시오. 이 늙은이까지 연루될까 두렵소."


"대장부가 천지간에 태어나 살면서 어찌 답답하게 남의 밑에서 오래 지낼 수 있겠나! 내가 늙은 도적놈을 죽이고 싶지만 부자의 정 때문에 후세 사람들의 비난을 불러일으킬까 두려워서 못할 뿐이지."


왕윤은 미소를 지었다.


"장군의 본래 성은 여씨이고 태사는 동씨외다. 게다가 이미 창을 장군게 던졌는데 어찌 부자의 정이 있다고 하겠소?"


여포가 기세 좋게 말했다.


"사도의 말이 아니었다면 스스로를 그르칠 뻔했소!"


왕윤은 여포가 뜻을 굳혔음을 보고 바로 말했다.


"장군이 한실을 지탱해준다면 바로 충신으로 청사(사적)에 명성을 떨치고 그 향기가 영원히 전해질 것이나, 장군이 동탁을 돕는다면 바로 반역한 신하로 그 오명이 역사에 실려 역겨운 냄새가 대대로 전해질 터이니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오."


여포가 자리를 비껴 일어나 절하며 말했다.


"내 뜻은 이미 정해졌으니 사도께서는 의심하지 마시오."


왕윤이 말했다.


"그러나 혹시라도 일이 성공하지 못해 도리어 큰 재난을 초래할까 두렵소."


여포가 차고 있던 칼을 뽑아 팔을 찌르더니 피를 흘리며 맹세했다. 왕윤이 무릎을 꿇고 감사하며 말했다.


"한나라의 향화가 깜빡거리지 않는다면 모두 장군이 주신 것이오. 절대 누설하지 마시오! 기일이 되어 계책이 서면 서로 알리기로 합시다."


여포가 승낙하고 돌아가자 왕윤은 즉시 복야 사손서와 사례교위 황완을 청해 상의했다. 사손서가 말했다.


"지금 주상께서 병환에 걸렸다가 완쾌하셨으니 말 잘하는 사람을 미오로 보내 의논할 정사가 있다고 동탁을 불러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천자의 비밀 조서를 여포에게 넘겨주어 조문(궁전 정문) 안에 무장한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동탁을 이끌고 들어오면 그대 죽이는 것이 상책이오."


황완이 말했다.


"그런데 누가 감히 가려고 하겠소?"


사손서가 말했다.


"여포와 같은 군 출신인 기도위 이숙은 동탁이 관직을 올려주지 않아 몹시 원한을 품고 있소. 이 사람을 보낸다면 동탁이 틀림없이 의심하지 않을 것이오."


왕윤이 여포를 청해 함께 의논했다. 여포가 말했다.


"지난날 내게 정건양(정원)을 죽이도록 권한 자가 바로 이 사람이었지. 이번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내가 먼저 그를 베어버리겠다."


사람을 시켜 몰래 이숙을 오게 했다. 여포가 말했다.


"이전에 네가 나에게 정건양을 죽이고 동탁에게 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동탁은 위로는 천자를 기만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가혹하게 학대하니 그 죄악이 가득 차서 신과 사람 모두 분노하여 원망하고 있다. 네가 미오로 가서 천자의 조서를 전달하고 동탁을 입조하게 해라. 병사를 매복시켰다가 그를 죽이고 한실을 힘껏 지탱하여 함께 충신이 되자. 네 생각은 어떤가?"


이숙이 말했다.


"나 또한 이 도적을 제거하려고 한 지 오래되었으나 마음을 함께할 사람이 없어 한스러웠을 따름이오. 지금 장군의 뜻이 그렇다면 이것은 하늘이 내리신 것이니 이 숙이 어찌 감히 두 마음을 품겠소!"


바로 화살을 꺾어 맹세했다. 왕윤이 말했다.


"공이 이 일을 잘해낼 수만 있다면 높은 관직 얻는 것쯤이야 무슨 근심이겠소?"


이튿날 이숙은 기병 10여 기를 이끌고 미오로 갔다. 천자의 조서가 왔다고 보고하자 동탁이 불러들이게 했다. 이숙이 들어가 절하자 동탁이 말했다.


"천자께서 무슨 조서를 내렸느냐?"


"천자의 병환이 갓 완쾌되시어 미양궁에 문무백관을 모아 태사께 선위하는 문제를 의논하고자 이 조서를 내리셨습니다."


"왕윤의 뜻은 어떠한가?"


"왕사도는 이미 사람을 시켜 '수선대(제위를 선양하기 위해 쌓은 대)'를 쌓게 하고 주공께서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탁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지난밤 꿈속에서 한 마리 용이 나를 감더니, 오늘 과연 이런 기쁜 소식을 받는구나."


즉시 심복 장수 이각, 곽사, 장제, 번조에게 군사 3000명으로 미오를 방비하게 하고 자신은 그날로 장안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레를 준비시켰다. 동탁이 이숙을 돌아보며 일렀다.


"내가 황제가 되면 너는 집금오를 맡도록 해라."


이숙은 절하며 감사드리고 스스로를 '신(臣)'이라 칭했다. 동탁은 안으로 들어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어머니의 나이는 이때 90여 세였는데 동탁에게 물었다.


"내 아들이 어디로 간다고?"


동탁이 말했다.


"아들이 한나라 천자의 자리를 양위받으러 가니 어머니께서는 조만간 태후가 될 것입니다!"


"내가 요 며칠 살이 떨리고 심장이 놀라 두근거리니 좋은 징조가 아닌 것 같아 두렵구나."


"장차 국모가 되실 텐데 어지 놀랄 징조가 미리 없겠습니까!"


즉시 어머니에게 작별하고 미오를 떠나려 수레에 오르자 앞에서는 막고 뒤에서는 에워싸 호위하며 장안을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30리를 못 가서 타고 있던 수레의 바퀴 하나가 갑자기 부러지는 바람에 동탁은 수레에서 내려 말을 타게 되었다. 다시 10리도 못 가 그 말이 포효하며 소리 높여 울부짖더니 고삐를 당겨 끊어버렸다 동탁이 이숙에게 물었다.


"수레바퀴가 부러지고 말이 고삐를 끊는 것은 무슨 징조인가?"


"태사께서 한나라 제위를 선양받으시니 마땅히 옛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라는 것으로, 장차 옥련(천자가 타는 수레)에 타고 황금 안장에 오르실 징조입니다."


동탁이 기버하며 그 말을 믿었다. 이튿날 한참 가고 있는데 별안간 광풍이 휘몰아치더니 어두컴컴한 안개가 하늘을 뒤덮었다. 동탁이 이숙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징조인가?"


"주공께서 황위에 오르시니 틀림없이 붉은빛과 자줏빛 안개로 황제의 위엄을 웅장하게 보이려는 것입니다."


동탁이 또 기뻐하며 의심하지 않았다. 장안성 밖에 당도하자 벌써 백관이 모두 나와 영접했다. 이유만이 병으로 집에 있었으므로 나와서 맞이할 수 없었다. 동탁이 성으로 들어가 승상부에 이르자 여포가 들어와서 축하했다. 동탁이 말했다.


"내가 구오(황제)에 오르면 네가 천하의 병마를 통솔해야 하느니라."


여포는 절하며 감사했고 장막 앞에서 묵었다. 이날 밤 10여 명의 아이들이 교외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장막 안까지 들려왔다.


천리에 뻗은 풀이 어찌 푸르고 푸르리오

열흘도 못 넘겨 살 수 없다네

千里草 何靑靑

十日卜 不得生

(千里草=童, 十日卜=卓. 즉, 동탁은 곧 죽는다.)


노랫소리가 비통하고 애절하여 동탁은 이숙에게 물었다.


"저 동요는 어떤 길흉을 예시하는가?"


"이 또한 유씨가 멸망하고 동씨가 흥기한다는 의미입니다."


이튿날 해 뜰 무렵에 동탁이 의장과 호위 수행원을 늘어세우고 황제를 알현하러 갔다. 갑자기 푸른 도포에 흰 두건을 쓰고 손에 긴 장대를 든 한 도인이 나타났는데, 장대 위에는 1장 길이의 배로 만든 천이 묶여 있었고 위아래로 각각 구(口)자가 적혀 있었다. (위아래로 달린 口=여(呂), 배(布, 포)=여포. 동탁이 여포에게 죽는다는 뜻)동탁이 이숙에게 물었다.


"저 도인이 하는 짓은 무슨 의미인가?"


"미친놈입니다."


장병들을 불러 쫓아냈다. 동탁이 알현하러 나아가자 군신들이 각자 조복을 갖춰 입고 길에서 영접하며 배알했다. 이숙은 손에 보검을 쥐고 수레에 붙어서 걸었다. 북쪽 액문에 당도하자 군병은 모두 문밖에서 저지당하고 수레를 모는 20여 명만 함께 들어가게 했다. 동탁이 멀리서 왕윤 등이 각자 보검을 잡고 궁전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놀란 얼굴로 이숙에게 물었다.


"칼을 잡고 있는 것은 무슨 뜻이냐?"


이숙은 대답하지 않고 수레를 밀어 곧장 들어갔다. 이때 왕윤이 크게 소리쳤다.


"역적이 여기에 왔다. 무사들은 어디 있느냐?"


즉시 양쪽에서 100여 명이 나오며 극과 삭(기병용 장창)을 잡고 동탁을 찔렀다. 동탁은 도포 안에 부드럽고 질긴 호신용 갑옷을 입고 있어 창에 찔리지 않았고 팔만 다친 채 수레에서 굴러떨어지며 크게 소리 질렀다.


"내 아들 봉선은 어디 있느냐?"


수레 뒤에서 여포가 나오며 엄하게 꾸짖었다.


"역적을 치라는 황제의 조서가 있었다!!"


"여포 네가…"


여포가 극으로 단번에 동탁의 목을 찌르자 이숙이 재빨리 머리를 잘라 손에 들었다. 여포는 왼손에 극을 잡고 오른손으로 품속의 조서를 꺼내 들고 크게 소리쳤다.


"조서를 받들어 역신 동탁을 쳤으니 나머지 사람에겐 죄를 묻지 않겠다!"


문무관원들이 만세를 불렀다.


필자는 논한다. 동탁은 황실을 집어삼킨 역적이고, 죽어 마땅할 악인이었다. 앞으로의 난세는 이 자에게서 시작되었다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 창을 던진 동탁: 초선은 가공인물이지만, 여포와 동탁이 동탁의 첩을 두고 갈등한 것은 사실이듯 동탁이 초선 때문에 여포에게 창을 던진 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이다. 실제 동탁은 수틀리기만 하면 여포에게 창을 집어 던졌고 그때마다 여포는 창을 피한 다음 사죄하여 동탁의 분노를 가라앉혔으나 원한을 품었다고 전해진다.


** 절영지연(絶纓之宴): 춘추시대 때 초나라의 장왕이 전쟁에서 이긴 기념으로 문무백관을 모아 성대한 연회를 했다. 한창 즐기고 있는데 바람이 불어서 등불이 다 꺼졌다. 그래도 다들 꽤 취해서 그러려니하고 놀고 있는데 왕의 애첩이 비명을 지르더니 장왕에게 가서 '누군가가 어둠을 틈타 저의 가슴을 만지고 희롱했습니다. 제가 그 남자의 갓끈을 뜯어 표시를 해두었으니 등불을 켜고 갓끈이 없는 자를 잡아주세요' 라고 호소했다. 그러자 장왕이 다들 격식차리지 말고 편하게 즐기자며 모두 갓끈을 풀게 한 뒤에 등불을 켜서 결국 범인은 찾아내지 못한 채 연회가 끝났다. 왕의 후궁을 추행 했으니 범인이 밝혀졌으면 목이 달아날 정도의 큰 일이었고, 왕의 위엄에 흠을 주는 큰 사건이었지만 장왕은 술자리에 후궁을 부른 자신의 경솔함 때문이라고 범인을 용서한다. 몇년뒤에 진나라와 초나라가 전쟁을 했는데 초나라가 져서 장왕도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 한 장수가 목숨을 걸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장왕을 구했다. 그때 장왕이 묻기를 '내가 그대에게 특별히 잘해준 일이 없는데 어찌하여 죽음을 재촉하며 싸웠는가?'하자 그 장수가 3년 전 폐하의 애첩을 희롱했던 남자는 자기였으며 그때 장왕의 은덕이 아니었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기에 이후로는 목숨을 바쳐 은혜에 보답하려 했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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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