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연말을 맞아 이것저것 정리를 하던 중, 우연히 학창시절 만들어 봉인해놨던 보물상자를 발견했다. 그녀는 호기심에 그 상자를 열어봤다. 안에는 과거 그녀가 쓴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시와 함께 빛바랜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에 있는 인물은 오래전 잊고있던 기억을 가져왔다. 향긋한 추억을 가져왔고, 사진 속 소나무의 흰눈과 섞인 솔잎향 도 가져왔고, 사진을 찍을 때 나던 찰칵하는 소리마저도 가져왔다. 그리고 갑작스런 찌릿, 하는 느낌도 가져왔다. 그러나, 그 인물은 미처 가져오지 못했다. 사진은 빛이바래 인물의 얼굴을 거의 볼 수가 없게되었고, 뒤에 적어둔 인물의 전화번호로 보이는것은 번져서 흔적만 겨우 남아버렸다. 그래, 졸업사진, 졸업사진을 보자. 왜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찌릿한 느낌이 났을까? 그녀는 궁금했다. 미친듯이 졸업사진을 찾아봤다. 그러나 모든 학생을 다 보아도 마땅히 생각나는것이 없었다.

그녀는 사진과 같이 보관되어있던 종이쪼가리를 꺼내봤다. 종이를 조심히 펼쳐보니 시가 적혀있었다. 내용을 보아하니 그에게 보여줄 심산이었나보다. 청춘이었다. 그러나 그 시는 그에게 전달이 되지 못한 모양이였고(그에게 보여줄 시가 이 상자안에 있으니), 시의 내용 또한 중간중간 지워져 보이지않았다. 누가 지운것일까? 그렇다면 왜 지웠을까? 지난시절을 돌이켜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비슷한 기억이 있을법한 - 근처에 살아서 아직도 종종만나는- 친구들에게 수소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얘기를 듣자마자 친구들은 이야기 하기를 꺼려하는것같아, 내 선에서 그만둔게 한 두번이 아니였다. 결국 그녀는 지난 몇년간 바쁘다는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던 동창회에까지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술을 전문적으로 파는 호프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언젠가부터 술 자체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싫은 마음보다 그 인물을 알고싶은 욕구가 더 컸다. 그렇기에 그녀는 마다하지 않고 곧바로 호프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동창회가 시작하자마자 작정하고 그곳의 거의 모든 인물들에게 그 인물에 관하여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도 대게 말하기 꺼려하는 분위기였다. 동창회에서도 못찾는 것일까. 그녀는 내심 억울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술집에까지 찾아왔는데. 이대로 물러나서는 계속 두고두고 후회할듯 싶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동창들이 하나, 둘 흩어지기 시작할 무렵 한명한명에게 어떤내용이여도 좋으니 그인물에 대해 뭐라도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한 명이 마지못해 그녀에게 말했다.


그이는, 지금 세상에 없어.

그 사진을 찍고 죽었어.



아. 알것같다. 찌릿한 느낌.

그 느낌은 무언가에 치이는 느낌이다.

너무 순식간에, 세게 치여서 아픈줄도 모르고, 그냥 찌릿,

한다음에 의식을 잃어버리는 그런 느낌.

그녀와 그이는 동시에 치었지만 그이는 못버티고 숨을 거두어버렸던 그 일이 생각이, 뇌속에서 영상이 재생되는 듯 생생하게 기억나버렸다. 동창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눈물이 흐른다. 왜인지 닦을 엄두조차 내지못했다.


그대로 미친듯이 집으로 뛰어갔다. 하늘에서는 그녀의 속도 모르고 예쁜 흰눈이 천진난만하게 내리고 있었다. 그때의 날씨를 똑같이 재현하듯.


사진을 찍은 직후 사고가 났다ㅡ 음주운전자의 짓이였다. 그녀는 그이와 굉장히 친했다. 그이를 좋아했다. 풋풋한 첫사랑이였다. 그러나 그 풋풋한 향기를 피비린내나는 끔찍한 냄새로 바꾼 사건이

 그이와 여행 기념사진을 찍자마자 난것이였다. 시에서 지워진것은 그이의 이름이였다. 이제야 그이의 이름이 떠올랐다. 시에서, 그녀의 머리에서 지워진 것은 그이의 이름이였다. 그 사건 직후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이는 가고 나만 산 것이 너무 미안하고 괴로워서 시에서도 그녀의 머리에서도 그이를 지워버린 것이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보물상자를 열었다. 그러고는 종이를 곧게 펴 오랜시절 지워져있던 이름을, 그녀에게 잊혀져 외로웠을 그이의 이름을 다시 채워넣어 시를 완성했다.

 20년만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