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서



용준은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평소처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복도를 걷고 있었다. 창가에는 애니메이션부 아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용준은 그들을 슬쩍 훔쳐본다. 승연이 애니메이션부 사이에 없으니 어색하다고 느끼면서도 지금의 승연이 저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은 상상이 되질 않았다. 


이 때 용준의 뒤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가 눈치 채기도 전에 손에 들려있던 핸드폰이 사라진다. 

그의 핸드폰은 흔히 일진이라 불리는 명호의 손에 들려있었다.

명호는 용준의 핸드폰을 이리저리 살핀다. 핸드폰은 오래되어 낡아있었다. 그는 같은 무리의 아이들에게 낡은 핸드폰을 보여주며 용준을 비웃는다.


"주인이 거지새끼라 핸드폰도 거지같네."


용준이 작은 목소리로 돌려달라 말한다. 명호는 겁먹은 용준을 보고 씨익 웃더니 창가로 걸어간다. 그리고 핸드폰을 창밖으로 내민다. 용준은 명호를 말리려고 그에게 다가가지만 명호의 무리 중 한 명이 "새끼가 미쳤나."라는 욕설과 함께 용준의 배를 힘껏 걷어찬다.

용준이 짧은 신음소리를 내며 튕겨나가듯 바닥에 쓰러진다. 복도에 있는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일진무리와 용준에게 향한다.

명호는 배를 부여잡고 벽에 몸을 기대어 일어나는 용준의 앞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의 눈 앞에 핸드폰을 흔들거리며 말한다.


"핸드폰 너무 오래됐다. 내가 대신 버려주면 너도 새로 바꾸고 좋지 않냐?"


용준은 겁먹은 눈빛으로 명호를 쳐다본다. 명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잔뜩 성난 목소리로 말한다.


"이 새끼는 도와준다니까, 눈을 재수없게 뜨네."


그 때였다. 언제 나타났는지 승연이 순식간에 명호가 들고 있는 용준의 핸드폰을 빼앗는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명호와 일진무리 그리고 용준까지 모두 어안이 벙벙해져 승연을 바라본다.

승연은 되찾은 핸드폰을 용준의 후드집업 주머니 속에 넣어준다.


"너 뭐냐."


이를 지켜보던 명호가 승연의 어깨를 잡는다. 승연은 자신의 어깨를 잡은 명호의 손을 잡더니 아래로 내친다. 

그리고 뒤돌아 명호와 마주본다. 명호를 바라보는 승연의 눈빛은 살벌했다.


"넌 뭔데 가만히 있는 얘를 괴롭혀."


승연이 위압감 짙게 배인 낮은 목소리로 명호에게 질문을 되돌려준다.

명호는 승연의 시선을 피하며 낮게 읊조린다.


"시발···."

"너 뭐라고 했냐?"


승연이 명호의 어깨를 툭 치며 묻는다. 명호는 승연을 째려보며 주먹을 꽉 쥐지만, 왠지모르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용준도 승연을 말리고는 싶었지만, 처음보는 모습에 감히 말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승연이 살짝 앞으로 다가오자 명호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친다.


"뭐라고 했냐고 개새끼야. 사람이 묻잖아."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져갔다. 누군가 불을 붙인다면 금방이라도 주먹질이 오고 갈 것 같았다.


"명호, 가자. 쟤 광현이 친구잖아."


사태를 종료시킨 건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명호의 무리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둘의 눈치를 보다가 틈이 생기자 아주 자연스럽게 명호를 감싸고 나간다. 명호는 그와중에도 자존심을 챙기기 위해 자신을 챙기고 나간 무리에게 "놔 봐. 놔 보라고." 말하지만 아무 소용없이 끌려간다.

명호가 그 무리가 사라지자 복도는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다시 자기들만의 이야기 꽃을 피우며 시간을 보낸다.

승연은 배를 맞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용준을 부축한다. 그리고 함께 반으로 돌아가며 그에게 몸상태를 묻는다.


"배는 괜찮아?"

"으응···."


용준이 짧게 대답했다. 

승연의 부축을 받고 용준은 자리에 도착한다. 그는 의자에 털썩 앉으며 자신의 옆자리에 앉는 승연을 힐끔 보더니 조심히 그를 부른다.


"저기, 승연아."

"어?"

"아깐 고마워."

"뭘···."


승연은 용준의 대답을 듣고 멋쩍은지 괜히 다른 곳을 바라본다.



···



방과 후 하굣길. 승연은 학원에 가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용준과 함께 그의 집으로 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승연과 용준의 집은 서로 반대 방향이라 용준의 집에 가까워질수록 승연에게 손해였다. 용준은 군말없이 자신을 따라오는 승연을 보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용준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승연에게 말했다.


"너 학원 안 가도 돼?"


승연은 싱긋 웃으며 "하루 정돈 빠져도 돼." 대답했다. 그리고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바뀌더니 학원을 용준이 사는 동네로 옮기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학원 옮겼어. 다음 주 부터 여기에 있는 곳으로 다녀."

"왜? 너희 동네가 훨씬 더 좋잖아."


용준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승연은 말없이 미소만 짓는다. 

얼마나 걸었을까, 승연은 잠깐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골목길 한 켠에 나란히 놓인 빈 의자 세 개를 찾는다.

그는 가장 왼쪽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용준을 보며 가운데 의자에 앉으라는 듯 손으로 쿠션을 탁탁 친다.

용준은 승연을 따라 가운데 의자에 앉는다.


의자에 앉자 골목길 사이로 일산 구시가지의 풍경이 펼쳐졌다.

나름 장관이라면 장관이었다. 이윽고 승연은 용준이 자신에게 했던 질문을 되물었다.


"아까 학원 왜 옮겼냐고 물어봤잖아."

"응."


용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냥, 여기 풍경이 예뻐서."

"그게 뭐야. 시시해."


용준이 픽 웃는다. 승연도 자신의 대답이 웃겼는지 용준을 따라 큭큭 웃는다. 

한참 웃던 승연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용준을 부른다. 용준도 웃음을 멈추고 승연의 부름에 "왜? 대답한다.


"나 부탁 하나만 하자."


용준이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러자 승연의 표정은 금새 진지해진다. 이윽고 승연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만약에 나한테 무슨 일 생기잖아. 그러면 모르는 척 해."


용준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눈빛이다. 


"뒤에서 도와줄 생각도 하지말고, 그냥 너만 생각해."

"왜? 친구끼린 서로 돕는 거잖아."


용준이 승연에게 반문했다. 승연은 그저 의미 모를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정면의 구시가지를 바라보며 아주 낮게 속삭인다.


"그냥 지금처럼 옆에만 있어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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