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들판에 피아노가 놓여있다. 현민은 피아노 옆에 엄폐한다. 운이 좋다면 피아노는 총알을 막아줄 수 있을 것이다. 피아노의 울림판이 금속인지 나무인지 그는 사실 모른다. 아마도 금속이지 않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판이 아니라 쇠줄이라는 사실을 금방 상기하였다. 그는 피아노 내부를 들여다보았던 적이 있다. 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튀어나와 울림줄을 때린다. 건반을 떼면 해머가 천천히 줄 위에 놓이고 울림은 멈추게 된다. 현민은 피아노 옆에 불편하게 등을 기대고 앉은 채로 집중했다.

  '본질은 그 자체로 밝게 빛나기도 하지만, 어둠이 있을 때에 더 인상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그것이 너무 밝게 빛나서 형태를 알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 본질이란 물질의 특성이다. 본질 자체가 두드러지도록 하는 특정한 상황들이 있다. 한편 나쁜 상황은 본질을 흐트려놓거나 그 의미를 약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떠한 것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그것과 관여된 모든 것을 다루어서 그것을 더 본질 그 자체로서 드러나게 해야한다. 그건 마치 정제와도 같은 일이다.'

  토끼들이 뛰어노는 공원에는 총알이 날아다니지 않았다. 공원 옆 침엽수림에서 다 자란 고라니가 튀어나온다. 피아노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오는 고라니를 눈치챈 현민은 피아노로부터 달아났다. 도망하고 있는 그의 머리 위로 쟁반이 툭툭 떨어졌다. 그가 달아나고 있는 길을 따라 그의 머리맡을 아슬아슬하게 스칠 정도로 이제는 수십개는 되어보이는 쟁반들이 차례차례 떨어져 공원의 흙바닥에 떨어져 소리를 내고 있었다. 침엽수림을 마주보고 있은 공원의 다른 쪽 경계에 있는 작은 언덕에 서 있는 도로시가 그것을 보고 있었다.

 "쟁반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는.... 그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달리고 있을 뿐이다. 아까까지는 그냥 피아노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그는 불합리한 피해를 당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피해망상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가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공원에서 산책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노랫가사를 틀렸다고 믿고 있다!"

 쾅! 피아노에 부딧친 고라니는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장기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을 경우 이 생물은 오래가지 못하고 사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민은 계속 달려나갔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이 오게 되도록 그동안 노력한 물리 화학 법칙에 대해 감사를 표해야겠다. 아니면 적어도 관심을 가져주어야겠지.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고 나는 이 짧은 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거야. 민석이나 현택 모두 바보일 뿐이야. 민석은 현택만 바라보고 있고 현택은 민석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자기 세계에 빠져있지. 민석은 적어도 쓸모있을지 모르지만 현택은 진짜이지. 그리고 나는 이 바보같은 세상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 뿐이야. 그리고 나는 내 앞에 있는 이 무자비한 계단을 허겁지겁 올라가야만 해. 그런데 이건 무슨 소리지?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나오는데 저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있는걸까?'

 "현민이 공원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있다. 토끼들은 현민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 지금 그가 처해져 있는 상황은 아주 복잡하다. 이런 복잡성이 야기하게 만든 이 우주를 나는 하나의 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계를 매개하고 있는 법칙은 아마 절대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현민에게 처한 이 상황이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법칙에 대해서만 논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않은가?"

  현민은 도로시의 목소리가 마치 악마의 숨결과도 같이 꺼림직하게 느껴졌다. 그가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그에게 있어 별로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는 하염없이 어두운 심연으로 빠져가는 것 같다. 그것은 그에게 엄청난 공포를 선사했다.

 '젠장. 제기랄. 언제까지 이렇게 떨어지고 있어야 하는거지?'

  하지만 알다시피, 그는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행동을 머릿속으로 인지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어디로 가게될까요?"

  빨간색 벽돌벽을 따라 달려나가고 있다. 자동차들이 쉴새없이 지나가는 것을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감히 예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것을 꾸며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안다. 그는 자신의 주변의 사건들을 그럴싸하게 설명해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문이 열렸어. 민석의 집에 잠입을 완료했다. 그의 집의 현관은 예상하던 대로 열려있군.'

  안은 굉장히 넓다. 거실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부엌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엌에 있는 쓰레기통에서 날카로운 칼들이 나타나 발사되고 있었다. 현민은 그 칼들을 피하고 쓰레기통을 22밀리 글록으로 파괴한다. 그러자 쓰레기통 아래에 1000원 지폐 3장이 나타났다. 바로 이어 거실의 4각형 조명이 아래로 내려왔다. 그것의 위험성을 직감하고 소파 뒷편으로 몸을 엄폐하자 거실 형광등이 큰 파열음과 함께 터졌고 자글거리는 유리조각 떨어지는 소리가 파도치듯이 일렁이고 있었다. 현민은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제 양쪽으로 벽이 있다. 좀 더 서서히 들어가보니 프리지아가 담겨있는 꽃병이 있다. 그 꽃병이 흔들리더니 검은색 금이 나타났고 곧이어 (육안으로) 28조각으로 부유하며 나뉘어진 다음 민석을 향해 공격을 가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레이저와 매우 빠르게 다가오는 쇠구슬을 그는 피해야만 한다. 현민은 그것이 굉장히 위협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첫번째 쇠구슬들의 막을 피했다. 쇠구슬은 쉴새없이 날아들고 있었다. 그는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민첩하게 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쇠구슬이 그의 피부에 닿기 시작하고, 이윽고 그의 살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그는 최대한 스스로의 자세를 제어하려고 한다. 프리지아 화분은 그의 몸을 점점 깊게 꿰뚫기 시작했다. 현민은 화분을 향해 5발을 명중시켰으나 그것은 건재했다. 현민은 이제 온몸에 구슬을 관통당했으며 그는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는건가요!"

 도로시의 목소리는 공원 건너편에서 울러퍼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대형 스피커라고 해도 집 안에 있는 현민이 들을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낮은 울림 정도는 민석의 집까지 전파되어 현민의 몸을 울릴 수는 있는 정도는 되었다. 현민은 바닥에 옆으로 누워 몸을 움츠러들었다. 프리지아 화분은 미친듯이 구슬과 레이저를 발사하고 있었다.

 '저것이 민석의 집 밖으로 나간다면 분명 큰일이 일어날거야.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말 것이다. 나에게는 저것을 막을만한 재능과 힘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어. 그리고 엄청난 노력을 했고. 그리고 나에게는 서로 도와주기로 했던 맹세했던 친구들이 있어. 그들이 나를 도와주러 여기에 오기를 바라는 건 나의 너무 큰 욕심이겠지. 도로시는 내가 실패한 것을 알까?'

 현민에게 남아있는 삶의 시간은 10분이었으며 그 시간이 경과하고 나면 그는 의식을 잃게 되고 4분이 더 경과하여 그의 뇌를 포함한 몸 전체가 영구적인 손상을 입게 될 것이었다.

 도로시는 직감으로 현민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마지막에 빛나려고 했어요. 하지만 더 큰 어둠에 잠식당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민의 본질이라면, 그 본질은 확실하게 부각이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나는 이 광경을 목격한 이상 이 이야기가 배드엔딩으로 끝나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성능이 굉장히 뛰어난 야외 스피커를 통하여 증폭되어 이민시의 토끼공원과 공원 옆의 넓은 숲과 공원 옆의 주거단지로 울려퍼지고 있었다. 하늘을 보았을 때의 시각적 정보만으로 그 소리를 유추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입지좋은 곳의 상가에 비어있는 방의 한쪽 벽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방 내부의 휑한 공간과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은 하얀색 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원에서의 소동은 현택을 향한 민석의 사랑. 현택이 학교사회로부터 겪고있는 곤란함. 그리고 도로시의 형편에 34단계를 거친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